대지를 깨우는 함성,
고창에서 마주한 1894년의 봄
글: 이영은, 사진: 김동민
추운 겨울이 물러난 자리에 연둣빛 보리 새싹이 돋았다. 고창의 붉은 황토 위로 비로소 봄이 찾아온 것이다. 가벼워진 외투를 챙겨 입고 고창으로 향했다. 이번 주말, 130여 년 전 봄꽃 향기 대신 민초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던 고창의 길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보국안민의 첫 깃발, 고창 무장 기포지

고창 무장의 동학농민군 지도자 고창주의장 추모비
위치 전북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590
설명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 곳
주요 볼거리
· 갑오동학농민군 고창주의장 추모비
· 소나무 세 그루
· 동학농민혁명포고문비
· 동학농민군 훈련장 표지석
가장 먼저 발걸음이 멈춘 곳은 130여 년 전 그날의 외침이 울려 퍼진 고창 무장 기포지다. 이곳은 고부 지역에서 시작된 농민 봉기가 전국적으로 확대된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1894년 봄, 구수마을 들판에 모인 동학농민군은 무장포고문을 통해 혁명의 대의를 세상에 알렸다. 고부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가 비로소 ‘보국안민’의 깃발 아래 전국적인 항쟁으로 타오른 순간이었다. 푸릇해진 들판을 따라 걸어가면 민초들이 꿈꿨던 세상을 새긴 포고문비와 동학농민군이 전열을 가다듬던 훈련장 표지석이 나란히 서있다. 곁에 세워진 추모비 앞에 서면 시대를 앞서갔던 민초들의 숭고한 희생이 피부에 와닿는다. 이 땅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뜨거운 투지가 여전히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온해 보이는 들판 곳곳에 남은 흔적들이 그날의 결의를 짐작게 한다.
쉼표와 여운을 담은 넓은들 학원농장

고창의 봄을 이야기하면서 청보리밭을 빼놓을 수 없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약 15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들녘은 청보리와 유채꽃이 어우러져 연둣빛 물결로 일렁인다. 고창의 옛 이름인 ‘모양(牟陽)’이 보리에 내리쬐는 햇살을 뜻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눈앞의 풍경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름 그대로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는 보리밭 사이를 느릿하게 걷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은 비워지고 그 자리엔 기분 좋은 여운만이 남는다.
에너지를 채우는 맛, 선운산풍천장어거리
위치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624
설명 선운사 인근 인천강 하구에 풍천장어 식당들로 형성된 거리
주차 식당 앞 주차장 이용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여정의 중간, 잠시 숨을 돌리며 기운을 채울 차례다. 선운사 어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인천강 하구의 힘을 담은 풍천장어는 고창의 명물이다. 거친 물살을 이겨낸 장어는 육질이 담백하고 쫄깃하기로 유명하다. 숯불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장어 한 점에 고창의 에너지를 몸속 가득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선다.
※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로, 실물과 다를 수 있습니다.
들녘을 품은 성벽, 무장현 관아와 읍성

위치 전북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 149-1 외
설명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점령하였던 곳
주요 볼거리
· 진무루
· 무장객사(송사지관)
· 무장동헌
· 송덕비
여정은 바로 무장현 관아와 읍성으로 이어진다. 기포지에서 전열을 가다듬은 동학농민군이 가장 먼저 당당히 발을 들인 역사의 현장이다. 당시 동학농민군이 큰 교전 없이 관아를 장악했다는 사실은 동학농민군의 기세가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읍성의 정문인 진무루를 지나 성안으로 들어오면 관아의 위용을 간직한 객사 송사지관과 동헌 취백당이 자리한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을 민중이 점거했다는 것은, 억눌려 살던 이들이 비로소 이 땅의 주인임을 선포했음을 뜻한다. 여정의 갈무리는 성벽 길이다. 성곽에 오르면 고창의 평온한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130여 년 전 그들이 목숨 걸고 지키고자 했던 삶의 터전이다. 성벽을 스치는 바람 속에 그날의 뜨거운 열망이 여전히 녹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