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 3년 1월 14일 기안 대신 협판 형사국 제1과 주임 형사국장 형사과장 아래에 제시한 문건을 베껴 보내는 것이 어떠할지, 이에 재결을 바랍니다. 안(案) 제4호 의정부 찬정 법부 대신 신(臣) 이(李)는 삼가 상주(上奏)합니다. 이달 2일에 유학 신 국재남(鞠在南) 등이 상소하였는데, 비지(批旨)에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아비를 위하여 복수한 것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에서 그런 것이니, 법부로 하여금 다시 재결하도록 하겠다.”하고 명(命)을 내리셨습니다. 삼가 성지(聖旨)를 받들어 국재봉(鞠在奉), 국재준(鞠在俊) 등의 재결안(裁決案)을 별지에 적어서 삼가 상주합니다. 광무 3년 1월 14일 성지를 받듦니다. (臣) 이(李) 별지(別紙) 고등재판소에서 심리(審理)한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의 살옥죄인(殺獄罪人) 국재봉(鞠在奉), 국재준(鞠在俊) 등의 사건을 다시 조사했습니다. 지난 갑오년(甲午年, 1894) 8월 3일에 국재봉의 아비 국홍묵(鞠弘黙)이 비도(匪徒) 김형순(金亨順), 김문화(金文化) 등에게 살해되었는데 두 김가 놈들이 그대로 도망가 버려서 복수를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음력 금년 1월 22일에 김형순이 전라남도 암행어사에게 체포되어 담양군으로 압송되어 왔습니다. 국재봉 등이 군수에게 복수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담양군수는, “암행어사에게 체포된 죄인을 군수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다.”고 말하고 호장청(戶長廳)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김형순이 국재봉 등에게 말하기를, “내가 체포되었다는 것을 만약 정인악(鄭寅岳)이 알게 되면 필시 도주할 우려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국재봉이 정인악을 붙잡아 와서 가두어 놓고서 담양군수에게 알렸더니 군수가, “마땅히 조처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수교(首校)로 하여금 간수(看守)하게 했습니다. 국재봉이 김형순에게,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김형순이 말하길, “갑오년 7월에 동학 무리들이 와서 약탈할 때 정인악이 나를 불러서 ‘국홍묵을 제거하여야 훗날의 염려가 없을 것’이라는 뜻으로 부탁하였습니다. 같은 해 8월에도 송내춘(宋乃春)을 통해 전언(傳言)하기를, ‘국홍묵이 동학 무리의 집강(執綱)을 도모하여 장차 용귀동(龍歸洞)의 접(接)을 도륙하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통문(通文)을 발송하여 무리를 모아 사정(射亭)에서 포살(砲殺)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음력 금년 1월 24일에 전라남도 관찰부에서 담양군에 훈칙하여 김형순 및 그가 모집한 여러 놈들을 모두 압송하라고 했습니다. 당시 정인악도 압송되었는데, 담양군 불월루(拂月樓) 아래에서 국재봉 등이 마음대로 정인악과 김형순 두 사람을 대질시켰습니다. 이때 김형순이 정인악에 대해 지난번과 같은 말을 하자 국재봉이 정인악의 답변을 듣지도 않고 노상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국재봉이 칼로 정인악의 배를 갈랐고 국재준은 칼로 머리를 찍었습니다. 대개 정인악이 교사(敎唆)했다는 것은 비록 본인이 자복(自服)하지는 않았으나 송내춘(宋來春)이 입으로 전한 것이나 김형순이 귀로 들은 것 등 모두 정확하므로, 국재봉 형제들이 정인악을 살해한 것을 고살(故殺)로 처단해서는 안 됩니다. 해당 범인 국재봉은 『대전회통(大典會通)』 살옥조(殺獄条)의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되어 옥사가 이루어졌는데 조사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함부로 원수를 죽이면 사형을 감하여 정배(定配)한다.”라고 한 율을 적용하여 종신징역에 처하되, 아비를 위해 복수하였으니 마땅히 정상을 헤아려 참작해야 하므로 본율(本律)에서 1등을 감해야 합니다. 또한 작년 11월 28일에 ‘비록 6범 내에 들더라도 본래의 정상을 참작하여 용서할 여지가 있는 자는 1등을 감한다고 윤허(允許)하신 말씀을 받들어 한 번 더 1등을 감하여 징역 10년에 처해야 합니다. 국재준은 동율(同律)로 헤아리고 『대명률(大明律)』 「명례(名例)」 공범죄분수종조(共犯罪分首從條)의 “가인(家人)이 공동으로 죄를 범하여 죄가 타인의 재산이나 신체에 피해를 입히면 일반인의 수범(首犯)과 종범(從犯)으로 논한다.”고 했으니, 수종한 형률에 의하여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비를 위하여 복수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 것과 크게 다릅니다. 두 아들을 함께 징역 받게 하는 문제는 죄수 처리를 신중하게 처리해야 하는 의리로 놓고 볼 때 참작하여 용서할 근거가 없지 않은 만큼 특별히 가벼운 쪽으로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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