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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법부 형사국 기안 法部 刑事局 起案
일러두기

광무 2년 12월 21일 기안 광무 2년 월 일 시행 대신 협판 형사국 형사과 주임 형사국장 형사과장 고등재판소에 지령하는 건 아래에 제시한 문건을 베껴 보내는 것이 어떠할지, 이에 재결을 바랍니다. 안(案) 제152호 귀 고등재판소의 질품서 제14호를 받아보니, “본 고등재판소 검사의 공소(公訴)에 따라 피고 국재봉(鞠在奉), 국재준(鞠在俊), 송내춘(宋乃春)의 안건을 심리(審理)했습니다. 피고 국재봉과 국재준은 그의 아비 국홍묵(鞠弘默)이 지난 갑오년(1894) 8월 3일 같은 군(郡) 용귀동(龍歸洞)의 비괴(匪魁) 김형순(金亨順), 김문화(金文化) 등에게 피살을 당했으나, 김형순, 김문화 등이 바로 도피하여 아비의 원수를 갚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음력 금년 1월 22일에 전라도에 파견된 어사(御史)가 동(同) 비괴 김형순을 정읍(井邑) 지역에서 체포하여 담양군(潭陽郡)으로 압송하였습니다. 그러자 피고 국재봉 등이 아비의 복수를 하기 위해 담양군수에게 고(告)했으나 어사에게 잡힌 죄인이라 지방관이 함부로 처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호장청(戶長廳)에 갇혀 있는 김형순이 피고 국재봉에게 말하기를, ‘내가 붙잡혔다는 것을 정인악(鄭寅岳)이 알게 되면 도망갈 우려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국재봉 등이 자신들의 종제(從弟) 국기동(鞠基同) 등을 보내어 정인악을 붙잡아 와서 호장청에 가두고 관아에 고했습니다. 군수가 ‘마땅하게 조치하겠다.’고 하고 수교(首校)에게 명하여 간수(看守)하게 한 후 관찰부(觀察府)에 갔습니다. 피고 국재봉이 김형순에게 그의 아비를 살해한 이유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갑오년 7월경에 정인악이 본군(本郡) 훈련청(訓鍊廳) 앞 재인(才人)의 집에 와서 만났을 때, 그리고 우도(右道)의 동학 무리들이 정인악의 집에 와서 약탈할 때 자신을 요청하여 맞이해서 부탁하기를 ‘국홍묵을 제거하여야 훗날의 염려가 없을 거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같은 해 8월 2일에 송내춘을 그 집 문 앞의 길가에서 만나 거듭 부탁하기를, 동학 무리의 국홍묵이 집강(執綱)을 도모하여 용귀동 접(接)을 도륙하려 한다고 하기에 통문을 돌리고 무리를 모아서 그다음 초3일에 사정(射亭)에서 포살(砲殺)하였다고 했습니다. 음력 금년 1월 24일에 광주부(光州府)에서 순검(巡檢)을 파송하여 김형순과 공초한 여러 놈들을 모두 압상(押上)하라는 훈칙(訓飭)이 있어서 정인악도 압상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피고 국재봉 등이 순검에게 정인악, 김형순 두 사람을 여러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한 차례 질문하기를 부탁하여 해당 군의 불월루(拂月樓) 아래에서 대질하였습니다. 여기서 김형순이 정인악에 대해 지난번과 똑같은 말로 설명하자, 피고 등은 정인악의 답변에 질문을 하지도 않고서 홍살문[紅箭門] 노상으로 끌고 가서 국재봉은 칼로 배를 가르고 국재준은 칼로 목을 찍었습니다. 피고 송내춘은 갑오년 8월 2일에 담양군의 장시(場市)에 가는 길에 정인악을 그 집 문 앞 길가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국홍묵이 동학 집강(東學執綱)을 도모하여 읍포(邑包)를 도모하고 용귀동 접을 타파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시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이러한 일의 기미를 용귀동 집강에게 가서 전하여 미리 예방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가서 전했더니 해당 집강 김형순 등이 그다음 날 사정(射亭)에 모두 모이자는 뜻으로 통문을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다음날 해당 무리 수백 명이 사정에 모여서 국홍묵을 붙잡아 와서 즉각 포살(砲殺)하였습니다. 당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이 사건을 보았고, 피고 등이 진술하여 자복(自服)하였고, 해당 도(道)의 순교(巡校) 문진원(文振元)이 증언한 진술이 있으니 그 사실은 명백합니다. 그러므로 피고 국재봉은 『대전회통(大典會通)』 「살옥조(殺獄條)」의 “그 아비가 피살되어 옥사가 이루어졌을 경우, 사건을 수사하기 전에 멋대로 그 원수를 죽인 자에 대해서는 사형을 감하여 정배(定配)한다.”는 율로 ‘태 100, 징역 종신’에 처했습니다. 피고 국재준은 동조동율(同條同律)과 『대명률(大明律)』 「명례(名例)」 공범죄분수종조(共犯罪分首從條)의 “가인(家人)이 공동으로 죄를 범하면 타인의 재산이나 신체에 피해를 입히면 일반인의 수범과 종범으로 논한다.”는 율과 동조(同條)의 “공동으로 죄를 범하면 수종자(隨從者)는 1등급을 줄인다.”는 율을 적용하여 ‘태 100, 징역 3년’에 처했습니다. 피고 송내춘은 동율(同律) 「인명편(人命編)」 모살인조(謀殺人條)의 “무릇 살인을 모의하되 따라 가공(加功)하지 아니한 자”에 대한 율을 적용하여 ‘태100, 징역 종신’에 처했습니다. 이러한 판결이 어떠할지 이에 질품하오며 일체의 서류를 함께 올립니다. 밝게 조사하여 지령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조사했습니다. 피고 국재봉, 국재준 등은 그 아비가 피살당한 후 범인이 잡혔으면 관(官)에 고하여 법에 따라 사형에 처해야 하는데 멋대로 살인을 자행함은 불법입니다. 하물며 김형순이 총을 쏘아 죽인 것은 명백하고, 정인악이 고의로 사주했다는 것은 애초에 자복(自服)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김형순이 자신에게 닥친 화(禍)를 넘겨씌울 계획으로 정인악을 부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김형순과 정인악을 대질하는 장소에서 정인악의 대답을 채택하지도 않은 채 그를 원수로 지목하여, 삽시간에 형은 배를 가르고 동생은 머리를 찍는 공격을 가했습니다. 사람으로서 흉악함이 어찌 이에 이를 수 있습니까? 국씨 형제들이 정인악을 죽인 행위가 원수 갚음이었다는 것에 대해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으니, 귀 재판소에서 평의한 바는 합당하지 못한 듯합니다. 피고 국재봉은 『대명률(大明律)』 「인명편(人命編)」 투구급고살인조(鬪敺及故殺人條)의 “고의로 살인한 자”에 관한 율을 적용하고, 피고 국재준은 국재봉을 처벌한 본율(本律)에서 “수종은 1등을 감한다.”는 율을 적용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 아비가 억울하게 죽자 서둘러 복수하려다가 이러한 죄를 이루게 된 것은 착오로 인한 일입니다. 그 정상을 참작하여 본율에서 각각 1등을 감하여 피고 국재봉은 태 100 징역 종신에 처하고, 피고 국재준은 태 100 징역 15년에 처하기 바랍니다. 피고 송내춘의 경우, 정인악이 부탁한 말에 비록 살인을 모의한 실정(實情)이 없었다 해도 아름답지 못한 말을 함부로 전한 책임이 없지 않습니다. 해당 범인은 『대명률(大明律)』 「잡범편(雜犯編)」 불응위조(不應為條)의 “무릇 응당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는데 사리(事理)가 중(重)한 경우”의 율을 적용하여 태 80에 처한 뒤 풀어주고, 도망친 김형순은 해당 재판소에 훈칙(訓飭)하여 특별한 방법으로 탐문하여 체포하게 하기 바랍니다. 이에 훈령합니다. 광무 2년 12월 26일 의정부 찬정 법부 대신 윤(尹) 고등재판소 재판장 윤(尹) 각하 추신 : 일체의 서류를 반환하오니 조사하여 수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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