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 2년 7월 19일 기안 대신 협판 형사국 제1과 주임 형사국장 형사과장 고등재판소에 지령하는 건 아래에 제시한 문건을 베껴 보내는 것이 어떠할지, 이에 재결을 바랍니다. 안(案) 제73호 귀 고등재판소의 제12호 질품서(質稟書)를 받아보니, 본 고등재판소 검사의 공소(公訴)에 따라 피고 최시형(崔時亨), 피고 황만기(黃萬己), 피고 박윤대(朴允大), 피고 송일회(宋一會)의 안건을 심리하였습니다. 피고 최시형은 병인년(丙寅年, 1866)에 간성(杆城)에 사는 필묵상(筆墨商) 박춘배(朴春瑞)라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이른바 동학(東學)을 전수받아서, 선도(善道)로 병을 치료할 수 있으며 주문(呪文)으로 신(神)을 내리게 한다고 칭하면서 여러 군(郡)과 도(道)를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라는 13글자로 된 주문,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為大降)”이라는 8글자의 강신문(降神文), 그리고 동학원문(東學原文)의 제1편 포덕문(布德文), 제2편 동학론(東學論), 제3편 수덕문(修德文), 제4편 불연기연문(不然其然文), 궁궁을을(弓弓乙乙)의 부적으로 인민을 선동하여 미혹하게 하고 도당(徒黨)을 체결했습니다. 또한 형벌을 받아 죽은 최제우(崔濟愚)가 지은 “만년 묵은 가지 위에 꽃이 피어 천 떨기요, 사해의 구름 가운데 달 솟으니 한 개의 거울일세(萬年枝上花千朶 四海雪中月一鑑)”라는 시구를 높이 사모하며 법형(法兄), 법제(法弟)라는 호칭의 높임을 따라 법헌(法軒)이라고 호칭하였습니다. 그리고 해월(海月)이라는 인장을 새겨서 교장(敎長), 교수(敎授), 집강(執綱), 도집(都執), 대정(大正), 중정(中正) 등의 두목들을 각 지방에 임명하였습니다. 또한 포(包)와 장(帳)이라는 회소(會所)를 설치하여 무리를 모은 것이 1,000만으로 헤아릴 정도였습니다. 법의 처벌을 받은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어준다고 하며 지난 계사년(癸巳年, 1893)에 그 신도 수천 명을 데리고 대궐 문앞에 나아가 집단으로 상소하였다가 곧 해산하였습니다. 또 보은(報恩)의 장내(帳內)에 많은 무리를 모았다가 순무사(廵撫使)의 선유(宣諭)를 받아 각자 해산하였습니다. 갑오년 봄에 이르러 피고의 도당(徒黨)인 전봉준(全琫準)이 고부(古阜) 지방에서 같은 패거리들을 불러모아 기미를 틈타 세찬 바람처럼 일어나서 관리들을 살해하고 성진(城鎭)을 함락시켜 충청도와 전라도 두 지역이 썩어 문드러져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피고는 이에 대해 사주하거나 호응한 일이 없다고 하지만, 소란 전반의 단계와 재앙의 근원을 궁구해 보면 피고가 주문과 부적으로 대중들을 미혹시킨 데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피고 황만기(黃萬己)는 지난 갑오년 5월에 동학 무리 임학선(林學善)의 협박을 받아 동학에 입도하였다가 곧바로 귀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작년(1897년) 7월에 또다시 임학선의 말을 듣고서, 도(道)를 숭상하는 입장에서 대종선생(大宗先生, 최시형)을 의리상 만나보지 않을 수 없다고 하여 도망 중인 최시형을 방문하여 만나 생선을 바쳤습니다. 피고 송일회(宋一會)는 갑오년 4월에 동학에 투탁하여 들어가서, 최시형이 청산(靑山) 지방에 있을 때 한 차례 방문하여 만나보았습니다. 그 후 금년(1898년) 정월에 이르러 친하게 지내는 동학 무리 박윤대(朴允大)로부터 최시형이 이천(利川) 지방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옥천(沃川) 사람 박가(朴哥)가 있는 곳에 그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리하여 경무청(警務廳) 관리에게 체포되어 박윤대와 함께 동행하여 길잡이 역할을 하면서 원주(原州) 지방으로 가서 최시형을 포획하였습니다. 피고 박윤대는 동학에 투탁하여 들어가서 최시형의 사위 김치구(金致九)의 집에서 고용살이하다가 경무청 관리에게 체포되어 송일회와 함께 길잡이 역할을 하여 원주 지방에서 최시형을 포획한 후 이 때문에 석방되었습니다. 귀가하는 길에 친하게 지내는 동학 무리 박치경(朴致景)을 우연히 만났는데, 박치경의 부탁을 받고 엽전(葉錢) 20냥을 휴대하고서 서울에 가서 최시형의 식비를 도와주려고 경무청에 왔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피고들의 진술에 명백합니다. 따라서 피고 최시형은 『대명률(大明律)』 「제사편(祭祀編)」 금지사무사술조(禁止師巫邪術條)의 “일체의 좌도(左道)로 정도를 어지럽히는 술법을 부리거나, 도상(圖像)을 은밀히 보관하거나, 향을 피워 무리를 모으거나, 밤에 모였다가 새벽에 흩어지거나, 겉으로는 착한 일을 하는 척 꾸미고 인민(人民)을 부추겨 현혹시키는 수범(首犯)”에 관한 율로 교수형에 처해야 합니다. 피고 황만기, 박윤대, 송일회는 「동편(同編)」 동조(同條)의 “종범(従犯)이 된 자”에 관한 율을 적용하여 각각 ‘태 100, 징역 종신’에 처할 만합니다. 그러나 피고 송일회, 박윤대는 최시형을 포획할 당시 길잡이를 한 공로가 없지 않으니 마땅히 감등할 만합니다. 아울러서 이에 질품하오며 일체의 관련 서류들을 첨부하여 올립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조사해 보니, 최시형은 죄악이 가득 찼으니 잠시라도 용서할 수 없으므로 원의율(原擬律)에 따라 선고한 후 보고하기 바랍니다. 황만기는 임학선의 지시를 기꺼이 받아서 동학을 숭상하겠다는 뜻으로 최시형을 방문하여 만나봤으니 수종에 관한 율을 벗어나기 어려우므로, 이 죄인도 원의율에 따라 처판하기 바랍니다. 박윤대, 송일회도 수종에 관한 율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나 최시형을 포획할 때 길잡이를 했던 공로가 있으니 귀 고등재판소에서 논의한 감등이 진실로 타당합니다. 하지만 박윤대는 최시형에게 식비를 제공하려 한 행동거지가 지극히 놀라우니 원의율에서 1등을 감하여 ‘태 100, 징역 15년’에 처하고, 송일회는 2등을 감하여 ‘태 100, 징역 10년’에 처하기 바랍니다. 이에 지령합니다. 광무 2년 7월 19일 의정부 찬정 법부 대신 조(趙) 고등재판소 판사 주석면(朱錫冕) 각하 추신 : 일제의 서류를 반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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