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 2년 7월 2일 기안 대신 협판 형사국 제1과 주임 형사국장 형사과장 전라남도 재판소에 훈령하는 건 아래에 제시한 문건을 베껴 보내는 것이 어떠할지, 이에 재결을 바랍니다. 안(案) 제33호 귀 전라남도 재판소의 제14호 보고서를 받아보니, “부(府)에서 특별히 순검(巡檢)을 파송하여 정읍(井邑), 태인(泰仁) 등지에서 비류(匪類) 10명을 체포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정절(情節)을 엄하게 샅샅이 파악하여 공초(供招)를 올려보냅니다. 지금 이 열 놈들 중 김형순(金亨淳)은 비괴(匪魁)로 인명(人命)을 함부로 해치고 돈과 재물을 약탈하는 등 허다하게 행패 부리는 짓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전에 이미 법망을 빠져나갔었는데, 지금 또 범죄의 자취가 드러났으니 그야말로 죄악이 가득 차서 더 이상 늘어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비록 무리를 일으킬 소굴이 있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더러움에 물든 사설(邪說)로 어리석은 백성들을 거짓으로 꾸며 속였으니, 이와 같은 부류들은 잠시라도 살려둘 수 없습니다. 다만 율을 시행하여 경책하고 격려하는 것은 오직 법부의 처판에 달려 있습니다. 그 나머지 심도풍(沈道豊), 임몽기(林蒙基), 조진옥(趙辰玉), 강도련(姜道連)은 모두 갑오년 동학의 여당(餘黨)들로 속으로 사악한 뜻을 품고 여전히 수상한 자취를 밟아서 결국 사람들의 지목을 받아 이렇게 수색하여 붙잡았으니, 그들이 저지른 바를 규명해 보건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내형(李乃亨), 김재원(金在元), 조대집(趙大集), 한용기(韓用基), 최동골(崔同骨)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실을 확인했으나, 현재 숨긴 것을 잡아낼 만한 것이 없으니 억지로 죄명을 덧씌울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19호 보고서에서는 “비류 10명의 공초(供招)는 이미 보고하였습니다. 그 10명 중 거괴(巨魁) 김형순(金亨淳)은 예전에 이미 법망을 빠져나갔다가 지금 겨우 체포하였으니 만약 그놈이 살기를 추구하더라도 절대로 살려둘 수 없습니다. 조진옥(趙辰玉)은 김형순의 와주(窩主)가 되었는데, 동학 관련 문서를 그놈에게서 찾아냈으므로 어찌 감히 ‘무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심도풍(沈道豊)은 거짓으로 꾸며대는 말들을 달게 받아들여서 ‘그 도(道)를 닦으면 재앙과 질병이 없다’고 하며 부적을 받아 주문을 외웠으니, 비류로 지목되는 것을 어찌 면할 수 있겠습니까? 임몽기(林蒙基), 강도련(姜道連), 이내형(李乃亨), 김재원(金在元), 조대집(趙大集), 한용기(韓用基), 최동골(崔同骨) 등 일곱 놈의 경우 3개월 동안 가두어놓고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실을 확인했으나 현재 숨긴 것을 잡아 낼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죄명을 더해서는 안 되겠으나, 회답지령이 내려오기 전에 죄인들을 부(府)에서 함부로 석방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암행어사가 있는 곳에서 기찰하여 체포해 온 자들의 경우 어리석은 백성들이 서로 눈을 흘기면서 각자 남들을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서 안도(安堵)하지 못하고 있는데 비적으로 체포했다는 유언비어가 날로 늘어나고 있어서, 이미 귀화한 백성들로 하여금 혹시 잘못된 방향으로 빠지지나 않을까 한탄하게 하는 일들이 자주 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을 어루만져 편안케 하는 도리에 있어서 마땅히 권경(權經)의 기술을 적절히 써야 하므로, 수감된 죄수 중 김형순, 조진옥, 심도풍은 엄히 목에 칼을 씌워 가두고, 그 나머지 임몽기, 강도련, 이내형, 김재원, 조대집, 한용기, 최동골 일곱 놈은 부정(府庭)에서 엄히 징계하고 밝게 타일러서 생업으로 돌아가라는 뜻으로 모두 풀어주었습니다. 이미 보고한 죄인들을 회답지령이 내려오기 전에 석방을 천단(擅斷)하여 두려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 연유를 이에 보고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32호 보고서에서는 “총순(總廵) 신광희(申光熙)의 보고에, 수감된 죄수 김형순에게 진술을 받은 후 격식을 갖춰 가두었는데, 해당 범인이 사람들이 조용한 밤을 틈타 가추(枷杻)를 열어 빼내고 목에 씌운 칼을 부수고 차꼬 자물쇠를 절단한 뒤 벽을 뚫고 도주하였다고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34호 보고서에서는 “총순 신광희의 보고에, ‘본 감옥에 수감된 비류 죄인 심도풍이 질병으로 인하여 사망하였습니다.’라고 하기에, 관례에 따라 검험(檢驗)하게 하였더니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확실하므로 시신을 내주어 매장하게 하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조사해 보니, 김형순은 법을 무릅쓰고 행패를 저지른 것에 대해 그가 스스로 자복(自服)하였고 또 감옥에 갇힌 죄수로서 몸소 먼저 도망하였으니 지극히 통탄스러우니 계속해서 기찰하고 탐문해야 합니다. 심도풍은 저지른 정절이 김형순과 똑같은데 미처 법의 처벌을 받기 전에 사망하였으니 더욱 개탄스럽습니다. 조진옥은 공안(供案)을 조사하여 살펴보니 죄가 될 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고, 책자(冊子)를 찾아낸 문제의 경우는 바로 김형순이 맡겨놓은 것이라 하므로 이내형 등과는 마땅히 달라야 합니다. 조신하고 행동을 삼가서 죄에 빠지지 말라는 뜻으로 특별히 밝게 신칙해서 풀어주기 바랍니다. 이에 훈령하니 이대로 시행하기 바랍니다. 광무 2년 7월 12일 의정부 찬정 법부 대신 조(趙) 전라남도 재판소 판사 민영철(閔泳喆)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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