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양 2년 3월 23일 기안 건양 2년 월 일 시행 대신 협판 형사국 제1과 주임 유학주(俞鶴柱) 형사국장 제1과장 제2과장 고문관 전라북도 재판소에 훈령하는 건 아래에 제시한 문건을 베껴 보내는 것이 어떠할지, 이에 재결을 바랍니다. 안(案) 제13호 귀 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 동하면(東下面) 시우동(時雨洞)에 사는 정인현(鄭寅賢)의 고소(告訴)에, “고소인은 갑오년(1894) 동요(東擾) 때에 집안의 재산과 살림 도구들을 빼앗겼습니다. 동요가 진압된 후에 살림 도구들을 잃었던 사람들 대부분이 추심(推尋)을 하기에 고소인도 추심하려고 김치경(金致景)의 집에 갔더니, 공교롭게도 김치경의 아들이 비괴(匪魁)로서 자신의 죄를 스스로 알고 이미 목을 매어 죽어 버려서 하나의 물건도 되찾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김치경이 멸구(滅口)할 목적으로 도리어 저희를 모함하여, 고소인의 조카 정치모(鄭致模)는 재작년 무렵에 홍천군(洪川郡)에 정배(定配)되었고 고소인의 아들 정세모(鄭世模)는 강진군(康津郡)에 정배되었다가 작년 무렵에 모두 해배(解配)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작년 5월 무렵에 고소인의 아들 정세모를 본 전주부(全州府)로 잡아 올려서 불문곡직하고 징역형에 처했으니, 어찌 지극히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그 사실은 전의 소장(訴狀)에 비춰보면 명백하므로, 이에 고소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조사해 보니, 정세모, 김두봉(金斗奉), 고동업(高同業), 박두술(朴斗述), 김봉주(金奉柱) 등을 징역형으로 환처(換處)한 후 그 죄상(罪狀)을 소상에게 적어서 보고하라는 일로 건양 원년(1896) 3월 24일에 훈령을 보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형식적인 문구로만 여기고서 아직까지 보고를 지체하고 있는 것인지, 그 거행을 살펴보건대 매우 놀랍습니다. 그 당시의 관찰사는 이미 체임되어서 논경(論警)할 수 없었으나 이제 장차 논경할 것입니다. 이 훈령이 도착하는 즉시 위 5명의 죄명을 상세하게 조사하여 신속하게 보고하여 그 기록을 심리(審理)할 수 있게 하기 바랍니다. 이에 훈령하니 이에 따라 시행하기 바랍니다. 건양 2년 3월 23일 의정부 찬정 법부 대신 서리 의정부 찬정 조(趙) 전라북도 재판소 판사 윤창섭(尹昌燮)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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