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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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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관찰사 이건하 보고서 1897년 4월 6일 제41호

본부(本府)에서 관할하는 지역들에 소위 동학이라고 칭하고 갑자기 이루어진 무리들의 행동거지가 수상합니다. 목천(木川)・진잠(鎭岑)・연산(連山)・문의(文義) 등지가 더욱 심하고 공주(公州) 산내면(山內面) 상리(上里) 상소전리(上蘇田里)와 하소전리에는 도적의 소굴을 이루었다는 소문이 낭자하였습니다. 과연 그런지 명령이 도착한 즉시 형편을 소상히 조사하여 하루빨리 보고하는데, 만약 지나쳐 버려서 후일에 폐해가 불어나는 경우에는 그 책임이 돌아갈 것이라고 하신 내부의 비훈(秘訓)을 받아서, 위의 각 군에 번역하여 비칙한 사유는 이미 보고하였습니다. 목천 등 4군의 경우는 아직 수상한 흔적이 없다고 연속 보고가 왔습니다. 공주 군수 서옥순(徐玉淳)의 경우는 순교(巡校)와 서기(書記)를 파송하여 비밀리에 조사한 건기(件記)를 적어서 올렸습니다. 순검 10인, 청사(廳使) 2명을 보내서 15명을 체포해 왔고, 진술한 말은 별지에 적어 놓았습니다. 류몽석(柳夢石)・이봉여(李鳳汝) 등의 경우는 다른 곳으로 가 버려 잡지 못하였고, 김여실(金汝實)의 경우는 역시 수비대에서 병사를 파송하여 해당 부대에 붙잡아 두었고, 아직 진술을 확보하지 못한 연유를 내부(內部)에 보고하고 이에 베껴서 보고하오니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건양 2년(1897) 4월 6일

충청남도 관찰사 이건하

의정부찬정 법부대신 임시서리(臨時署理) 의정부찬정 조병직(趙秉稷) 각하

별지

건양 2년(1897) 3월 28일 동비 양판복(梁判卜)

문(問) 너의 나이는 얼마인가? 어디에서 사는가? 누구에게 수학(受學)하였는가? 갑오년(1894, 고종31)에 어떻게 병폐를 일으켰는가? 지난번 체포에서 벗어났는데 어째서 마음을 고치지 않고 지금 또 무리를 모아서 다시 무엇을 하려 한다는 소문이 낭자하여 서울에서 훈령이 있기에 이르렀다. 또 신문(新聞)에 게재된 내용에, 지난번 금산군에서 총 10여 자루를 탈취하여 집 안에 숨겼고, 무리에 들어오지 않는 자는 속된 사람이라고 지칭하였다고 한다. 전후 사정을 이실직고하라.

공(供) 나이는 41세입니다. 사는 곳은 공주군 산내면 상소전리입니다. 갑오년에 온 세상이 모두 동학이 좋다고 하여, 저희 마을에 사는 류몽석에게 수학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돌아와 버렸고, 하나도 행패 부린 것이 없기에 목숨을 보존하였습니다. 음력으로 지난해 12월에 저희 마을에 사는 김선학(金善學)이 와서 어머니의 면장(緬葬)하는 일로 석교리(石橋里)에 사는 지관(地官) 김여실을 우리 집으로 청해 오자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어 보니 산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영(靈)과 통하고 도술을 행하는 것을 잘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김여실에게 가서 물어보니 답이 소문과 같아 이에 배움을 청했습니다. 진실로 금년 정월 초3일에 저희 마을에 사는 류몽석, 이봉여, 이원보(李元甫)와 같이 석교리의 김여실의 집으로 가니, 제사 용품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주인과 손님 5명이 보문산(寶文山) 상봉(上峰)에서 밥과 떡, 어물, 과일을 차리고 절을 했으며 끝나고는 종이를 태웠습니다. 김여실이 축언(祝言)을 암송한 후에 산에서 내려와 각기 돌아갔고, 다시 만나서 산에서 제사 지낸 일은 없습니다. 또 총을 탈취한 일도 도인(道人)과 속인(俗人)을 나누어 지칭한 일도 없습니다.

같은 날 이원보(李元甫)

공(供) 나이는 39세입니다. 상소전리에 살고 있습니다. 갑오년 옥천(沃川) 서화리(西化里)에 사는 김치옥(金致玉)에게 수학하였습니다. 하나도 병폐를 일으킨 것이 없습니다. 음력 지난해 12월에 조부를 산에 면례(緬禮)할 때에 지관 김여실을 오도록 청했습니다. 일이 끝난 후 김여보가 말하기를, 하나같이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면 재앙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정말로 올해 정월 초3일 저희 마을에 사는 양판복・류몽석・이봉여와 함께 김여실의 집으로 가서 주인과 손님 5명이 함께 보문산 상봉에 올라갔습니다. 제사 물품을 차렸는데 떡 한 시루, 밥 세 공기, 과일 세 종류, 북어 세 마리였습니다. 한밤중이 되기 전 순서가 향을 태우고 초를 꽂는 것이었습니다. 각기 네 번 절을 한 것 같습니다. 각기 한 장의 종이를 태운 후 김여실이 좌우로 뛰면서 입으로 여러 가지 소리를 내었는데 미친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때 입으로 낸 말은 지금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보기에 해괴하여 다시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금산에서 총을 탈취한 것과 도인과 속인을 나누어 칭한 것은 애초에 없었던 일입니다.

같은 날 권금봉(權今奉)

공(供) 나이는 30세입니다. 상소전리에 살고 있습니다. 갑오년에는 옥천 서화리에 사는 김치옥으로부터 입도하라는 압박을 받았지만 달리 병폐를 일으킨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몸과 목숨을 보존하였습니다. 그 후에 애초부터 무리를 모은 일은 없습니다. 지금 체포당한 것은 절절하게 애매한 것입니다.

같은 날 류한강(柳漢康)

공(供) 나이는 25세입니다. 상소전리에 살고 있습니다. 갑오년에는 비록 부득이하게 본군(本郡) 유등천면(柳等川面) 유천리(柳川里)에 사는 김관일(金官日)에게서 수학했습니다만 하나도 행패를 부린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성과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그 후 생각지도 않았던 것인데 지금 이렇게 체포당하니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억울합니다.

같은 날 양영보(梁永甫)

공(供) 나이는 53세입니다. 상소전리에 살고 있습니다. 갑오년에 온 집안이 시령(時令)으로 생사가 위급하여서 다행히 동학에 물드는 것을 면했습니다. 그 후에 더 어떤 이유로 범행을 저지르겠습니까? 지금 무리에 섞여 잡혔으니 매우 간절하게 억울합니다.

같은 날 류재손(柳在孫)

공(供) 나이는 40세입니다. 상소전리에 살고 있습니다. 갑오년에는 옥천 서화리에 사는 이름을 모르는 오가(吳哥)에게 비록 억지로 수학당하였지만, 이름을 넣어서 화를 면하려는 계책이었습니다. 만약 털끝만치라도 행패를 부렸다면 오히려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때에 그 잘못됨을 알았습니다. 지금 체포당한 것은 진실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직 분명하게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같은 날 박승춘(朴升春)

공(供) 나이는 31세입니다. 공주군 산내면 골남리(骨南里)에 살고 있습니다. 갑오년에 옥천 땅에 사는 목수(木手) 오승서(吳升西)에게 입도하였으나 속내가 어떠한가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몸을 보호하려는 계책으로 그 무리들을 보기만 하면 억지로 접장(接長)이라고 칭하였습니다. 목불식정(目不識丁)이라 동학이 어떠한 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날 일이 없게 된 것은 반드시 지난번에 욕을 당한 사람이 감정을 품고 고을을 멸하려는 계획일 것입니다. 지난 갑오년에 호남에서 행패를 부린 무리가 오지 않은 적이 없어 상하(上下) 소전리를 점거하였습니다. 인근의 양반들이 많이 수모를 받아서 반드시 모함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조사하여 처분하시어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것을 면하도록 해 주십시오.

같은 날 문백권(文白權)

공(供) 나이는 23세입니다. 골남리에 살고 있습니다. 갑오년에는 어리석은 소치로 영동(永同) 땅에 사는 김순석(金順石)에게 명목상으로는 비록 입도하였지만 오로지 화를 피하자는 계책이었습니다. 때문에 이웃 고을에 집회가 있으면 나는 영동접에서 모인다 칭탁하고, 영동에서 오라고 청하면 백방으로 탈이 났다고 하면서 한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행패를 부린 일은 오히려 논할 것이 없습니다. 지난번 잠시 이름을 들였던 때가 있어서 스스로 마음속으로 부끄러웠으니 다시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있겠습니까? 분명하게 조사하여 털끝이라도 진정으로 도적질한 것이 있으면 만번 죽어도 억울함이 없겠습니다.

같은 날 박승운(朴升雲)

공(供) 나이는 52세입니다. 공주 산내면 신대리(新垈里)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번 갑오년에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도인(道人)이라고 하는데 홀로 아니라고 하면 모욕과 화가 메아리처럼 이를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방으로 탐색하니 유천리(柳川里) 밖에서 비록 설포(設包)라 하나 실은 그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세운 것으로 김관일을 접주로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김관일의 포에 들어갔으나 잠시 몸을 지킨 것으로 달리 꼬투리는 없다는 것을 마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주문을 외우고 치성을 드린 것은 지난번에 진실로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지금 어찌 한가하게 논하겠습니까?

같은 날 김수산(金水山)

공(供) 나이는 17세입니다. 하소전리에 살고 있습니다. 털도 나지 않아서 지난번부터 지금까지 동학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같은 날 김사범(金士凡)

공(供) 나이는 35세입니다. 신대리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번 갑오년에 잠시 집안을 보존하기 위한 계책으로 거짓으로 유천(柳川) 김관일의 접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해당 접주는 본래 스스로 거짓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한번도 집회에 가지 않았고 오라고 청한 것도 없습니다. 근래에 다시 모인다는 말은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밀고자를 대질시키면 무고하다는 것을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날 박승렬(朴升烈)

공(供) 나이는 51세입니다. 하소전리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 갑오년에 때마침 몸에 병이 들어서 다행히 동학을 면하였습니다. 이미 물든 자도 오히려 후회할 것인데, 물들지 않은 자가 지금 범행을 생각하려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같은 날 이흥서(李興西)

공(供) 나이는 28세입니다. 공주 산내면 신촌리(新村里)에 살고 있습니다. 갑오년에는 압박을 받아 부득이하게 도인으로 자처하였습니다. 남이 혹시 물어보면 재빨리 옥천 서화리 오 접장(吳接長) 포에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오가(吳哥)의 얼굴도 모르고 그 이름도 모릅니다. 그 이름을 빙자하여 화를 면한 것이었고 진정한 마음이 아니었다면 근래에 다시 힘쓴다는 것은 실로 전혀 그러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같은 날 이명옥(李明玉)

공(供) 나이는 41세입니다. 신촌리에 살고 있습니다. 갑오년에는 누가 동학인이 아니었겠습니까? 소요가 진정된 이후에는 누군들 유도인(儒道人)이 아니겠습니까? 지난번 진품(眞品) 동학의 무리는 홀로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다고 하였지만, 이 농토의 생산으로 가난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없어 밤낮으로 기대어 사는 자가 어찌 한가하게 그것을 생각하겠습니까? 다시 조사하여 분명히 밝혀 주십시오.

같은 날 강광숙(姜光叔)

공(供) 나이는 34세입니다. 신촌리에 살고 있습니다. 갑오년에는 유천 김관일의 포에 칭탁하여 동학접주라고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진짜 동학도는 아니고 빙자하여 가탁한 것입니다. 스스로 밝혀질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오늘 이렇게 무고를 당하니 진실로 생각지도 못한 것입니다.

주석
면장(緬葬) 무덤을 옮겨서 다시 장사를 지내는 일이다.
시령(時令) 때에 따라 유행하는 상한병(傷寒病)이나 전염성 질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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