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05-156
광서 20년(1894) 5월 23일 해시(亥時, 21~23시)
조선 주재 원세개에게 보냄
좀 전에 섭지초 군문이 전보를 보내어 아뢰기를, “현승 사용운(史龍雲)이 탐문하여 보고하기를, 부안현의 보고에 의하면, 17일에 교비가 태인 인근 경계에서 각각 총과 칼을 들고 발포했고, 두 길로 나누어 마병과 보병 약 300~400명이 정읍(井邑)으로 들어가 민가를 훼손한 뒤에 장성(長城)으로 갔다고 합니다. 또 무관 유보기(劉寶基)가 탐지하여 말하기를, ‘대군이 곧 물러간다는 소식을 비적이 듣고 다시 창궐하여 유령(覦靈)에서 고부에 이르는 모두 9개 현에서 교비가 모여드는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데 무장(茂長)과 장성이 더욱 심합니다. 금구(金溝)와 범인(泛仁)은 왕래의 요충지인데 이미 겹겹으로 교비들에게 점거되어 공문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교비의 불꽃이 날로 세차게 일어나 은위(恩威)를 병용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전라도 지방관이 진군하여 체포하는 것을 가로막고 또 길 안내인도 없는데, 조선 군대는 아직 토벌하러 나오지도 않아 고립된 군대가 깊이 들어가면 토벌과 철수가 모두 어려워집니다. 원세개가 이미 위촉하여 조선 조정에 재촉하도록 했지만, 현재 온 나라가 미친 듯하여 힘써 따르게 함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금 청컨대 전보를 보내 원세개로 하여금 힘써 재촉하게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조정의 뜻이 교비 토벌을 매우 중하게 여기고 있으니, 설사 일본이 동시 철병을 받아들인다 해도 반드시 내지를 깨끗이 일소해야 할 것이다. 힘써 조선에 재촉하여 파병하여 토벌을 협조토록 하고, 네가 참작해서 길 안내인을 보내 속히 가도록 해서 섭지초와 상의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이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