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연락처
기념재단
TEL. 063-530-9400
박물관
TEL. 063-530-9405
기념관
TEL. 063-530-9451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사료 아카이브 로고

SITEMAP 전체메뉴

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이홍장전집 李鴻章全集
  • 기사명
    부전: 섭지초 군문이 보내온 전보[광서 20년(1894) 5월 22일 신시(申時, 15~17시)]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일러두기

G20-05-140

광서 20년(1894) 5월 22일 신시(申時, 15~17시)

부전: 섭지초 군문이 보내온 전보

섭사성 총병을 파견하여 교비를 토벌하도록 하였습니다. 또 현승 사용운(史龍雲)의 탐지 보고를 받았는데, ‘전라도 김(金)이 백방으로 전진을 가로막아 토비를 얻지 못하고 왜병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조선 조정은 비록 원세개 도대를 통하여 토벌을 재촉했지만, 전에 비적을 토벌하러 출정한 병사를 이미 되돌려 왜병을 대비토록 하여, 나아가 토벌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확실한 소식이 없습니다. 아군의 소부대는 조선 지방관의 길 안내가 없어 진위를 판단하기 어려워 감히 깊이 들어갈 수 없으며, 만약 왜병과 공동으로 토벌한다면 분쟁 도발이 더욱 걱정이 됩니다. 전주에서 잠시 주둔하며 기회를 보아 대처하도록 할까 합니다. 섭사성 총병은 일본의 일이 긴박하여 잠시 머물고 있습니다. 좀 전에 탐지 무관의 전보를 받았는데, 다시 왜병 3,000명이 인천에서 한성으로 출발해서 용산과 한강 일대에 군대를 나누어 주둔했고, 이미 수원에서 한성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았다고 합니다. 인천과 한성의 요지(要地) 각처에 왜병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중국과 조선의 소식이 모두 차단되고, 왜병이 때때로 아산에 와서 사정을 엿보고 있습니다. 좀 전에 ‘해정(海定)’에서 병사를 내렸는데, 왜선(倭船) 1척이 왔고, 또 왜병 10여 명이 연발총을 가지고 상륙해서 순찰을 돌았습니다. 우리가 참으면 참을수록 저들은 어지러이 날뛰니, 대군을 추가로 파병하여 위세로 으르지 않으면 악창을 키워 병을 만들어 한번 무너지면 수습하기 어렵게 될까 걱정이 됩니다. 제(섭지초)가 목도한 정황으로는, 교비의 토벌과 왜병의 방어는 모름지기 완급을 나누어 왜병의 방어를 잘 대비하면 교비의 토벌은 도리어 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교활하고 강하여 중병으로 조선의 도성과 내지로 들여보냈으니, 우리가 중병을 추가하더라도 일본 또한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섭지초)가 지금까지 꾹 참아서 일의 형세가 실로 긴박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는데, 잘못을 장차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중당(中堂, 이홍장)에게 힘써 청하여 주관해서 철저한 정황을 총리아문에 전송하여 속히 대군을 동원하여 큰 환난(患難)을 막기 바랍니다. 한편, 제(섭지초)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아산에 병사를 주둔시켰는데, 연일 일본이 작은 기선을 보내 물길을 시험하고 산의 정상에서 땅을 측정하고 있습니다. 수원의 전로(前路)가 이미 막혀 저(섭지초)는 현재 군대를 양성(陽城)으로 옮기려 합니다. 아산에서 북으로 10리이고, 수원과의 거리는 50리인데, 진퇴가 모두 유리하여 실기(失機)에 이르지 않는 곳입니다. 한편, 파견한 군함이 정박한 곳은 왜선(倭船)과의 거리가 모두 멉니다. 또한 조사해 보면 평양의 해구(海口)는 우리가 육지로 진군하는 요로(要路)이니, 마땅히 속히 군함을 보내 주둔시켜서 왜선이 선점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섭지초. 21일 해시(亥時, 21~23시).

이 페이지에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는 재단이 되겠습니다.

56149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 TEL. 063-530-9400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문화체육관광부 전라북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