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05-089
광서 20년(1894) 5월 16일 사시(巳時, 9~11시)
총리아문에 보냄
원세개가 15일 전보를 보내어 아뢰기를, “저(원세개)와 오오토리가 약정하기를, 중국은 추가로 파병하지 않고 일본은 뒤를 이어 보낸 병사가 조금 휴식을 취한 뒤 즉시 돌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지금 행장을 풀고 난 뒤 배가 돌아갔으니 그 뜻은 장차 오래 머무르려는 것입니다. 또한 조선의 나머지 교비들은 수백 명의 병사로도 없앨 수 있는데, 어찌 5,000명의 병사가 오래 머물 필요가 있겠습니까? 조선인은 번갈아 공법(公法)과 조약(條約)으로 힐난하고 논박했고, 각국의 사원(使員) 또한 번갈아 힐난했지만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오직 공사관을 보호한다고만 말하니 당연히 교활한 거짓일 뿐입니다. 각 양인(洋人)들 또한 말하기를, ‘중국이 응당 미리 대비해야지 일본을 믿을 수 없다’고 하니, 청컨대 대비책을 강구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15일 술시(戌時, 19~21시)에 전보를 보내어 아뢰기를, “현재 한성의 인심이 들끓어 막을 수 없으며, 중국이 왜병을 막아 물리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만약 인천에 머물고 있는 왜병 4,000명이 다시 한성에 오게 되면, 한성은 필히 시민들이 피난하여 텅 비게 될 것이고, 조선 국왕도 또한 북으로 도주할 듯합니다. 한성은 듣기에 이미 세밀하게 도주할 준비를 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게 되면 반드시 큰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15일 해시(亥時, 21~23시)에 전보를 보내어 아뢰기를, “번갈아 힘써 오오토리를 저지하여 신병(新兵)이 한성에 오지 못하도록 했는데, 오오토리는 이미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앞의 말을 다 식언했는데, 뒤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일본 조정의 뜻은 조선을 협박하는 데 있는데 오오토리는 스스로 주관할 수 없으므로 그와 언쟁하기 어려우니, 응당 먼저 남북의 수사(水師)를 동원하여 신속하게 와서 삼엄히 대비하고 계속해서 육군을 준비시켜야 할 듯합니다. 한편으로는 왕성 주일공사에게 전보를 보내어 처리 방법을 협상토록 하고, 아울러 총리아문이 참작해서 중국 주재 각국 사신에게 조정해 주기를 청하거나 혹은 갑자기 분열에 이르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좀 전에 정여창(丁汝昌) 제독에게 전보를 보내 몇 척의 배를 추가로 인천에 보내어 성세(聲勢)를 돕도록 하였는데, 나머지는 청컨대 조사ㆍ참작해서 지시를 내려 주시면 그에 따르겠습니다. 이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