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05-059
광서 20년(1894) 5월 11일 진시(辰時, 7~9시)
총리아문에 보냄
원세개가 10일에 전보를 보내어 아뢰기를, “좀 전에 조선 정부의 공문을 받고 열어 보니, ‘전에 남도(南道)의 토비(土匪)가 창궐하였기 때문에 천병(天兵)이 와서 대신 토벌해 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이에 토비들이 이러한 정황을 듣고는 곧 간담이 떨어져 잇따라 도망간 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이에 폐국(弊國)의 각 병사와 인민들은 모두 담력과 용기가 크게 진작되어 번갈아 길을 막고 토벌하여 참수하고 체포한 경우가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젯밤 또 승전보를 접했는데, 나머지 토비들이 대군이 배에서 내려 상륙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 도망갔고, 전주성은 곧 수복되었습니다. 현재는 속히 지방 관리로 하여금 전주성으로 들어와 안정시키고 위무토록 했고, 아울러 각 군대로 하여금 각자 체포하고 토벌토록 하여 잔당을 고립시켜 조만간 평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모두 천위(天威) 및 중당(中堂, 이홍장)의 성원에 힘입어 이룬 바입니다. 해동(海東)의 사민(士民)들이 감격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허락하신다면 곧 우리 전하께 아뢰어 분별하여 상주문과 자문(咨文)을 보내어 감사의 마음을 펼쳐 보이기를 청하겠습니다. 대군이 한번 도착하니 거대한 구적(寇賊)도 곧 제거되어 싸우지 않고서도 이겨서 신무(神武)가 밝게 드러나게 되었으니, 현재 감히 다시 수고스럽게 천병이 전진하도록 할 수 없습니다. 또한 토비들이 흩어져 깊숙한 데로 숨어 들어갔지만 폐국의 병졸만으로도 쉽게 체포할 수 있으니, 상국(上國)의 사졸(士卒)들이 이러한 책임을 감내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다시 위기가 생기면 특별히 정황을 알리겠습니다. 일본은 천병이 토벌하러 왔다는 것을 백방으로 꺼리고 의심하여 일전(日前)에 갑자기 500~600명의 병사를 보내어 우리 도성에 주둔시켜, 누차 외서(外署)에서 논박하여 저지했지만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그 뜻은 반드시 천병이 철수해야 비로소 같이 철수하려는 듯합니다. 전문(傳聞)에 의하면 여전히 수천의 병사가 뒤를 이어 온다고 하니, 저희 도성의 경비가 평소 느슨하여 강적이 나쁜 마음을 품고 들어와 요충지를 차지하고 있으면 해동의 신민(臣民)들은 순식간에 위태로움이 닥쳐와 하루를 보내는 것이 1년처럼 느껴져 인심이 크게 요동됨이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할 것입니다. 다행히 토비들이 이미 제거되어 화를 면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곧 귀 총리(總理, 원세개)가 신속하게 중당께 전보로 품문(稟文)을 올려 사정을 헤아려 주시길 간청하지만, 폐국이 감히 번잡하게 구원을 청할 바는 아닙니다. 만약 시종 비호해 주시는 은혜를 바랄 수 있다면 바로 시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정황이 급박하여 바라마지 않는 바입니다’라고 운운하였습니다. 조선이 누차 군대를 늦출 것을 원했지만 아직 윤허를 받지 못했는데, 지금 전주를 수복하고 토비가 해산되자 우리에게 청하여 속히 철수해서 일본으로 인한 위기를 풀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오토리는 다시 중국이 철병하면 그들 또한 같이 철병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다행히 조선 군대가 조금은 능히 스스로 진작할 수 있어 남은 무리들을 수색ㆍ체포하는 것과 뒷수습은 마땅히 힘써 할 수 있는 바이니, 오래 머물러 다른 사단이 생기게 하는 것은 좋지 않은 듯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저(이홍장)는 전보로 섭지초 등에게 진군을 늦추고 잠시 주둔하면서 돌아올 행장을 정리하도록 했고, 한편으로는 원세개와 오오토리가 약정해서 피차간에 동시에 철병하면 다시 상륜(商輪)을 보내어 바다를 건너 돌아오는 것을 가서 맞이하도록 하였습니다. 대신 상주(上奏)하기를 청합니다. 이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