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05-053
광서 20년(1894) 5월 10일 오시(午時, 11~13시)
총리아문에 보냄
원세개가 9일 전보를 보내어 아뢰기를, “좀 전에 오오토리가 와서 장장 2시간 동안 담론했는데, 견지하여 말하기를, ‘실로 공사관을 지키기 위하여 온 것이며 아울러 기회를 보아 조선을 도와 교비를 저지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원세개)는 완곡하게 상의해서 서로 약정하기를, ‘지금 인천에 도착한 800명의 병사가 한성에 오면 잠시 머물렀다 곧 철수하고, 현재 한성에 있는 수사(水師) 병사는 그 800명을 기다렸다가 곧 회선(回船)하며, 뒤를 이어 오는 병사들은 상륙시키지 말고 원래 선박 그대로 일본으로 돌아가고, 아직 출발하지 않은 병사들은 곧 전보를 보내어 막도록 한다. 중국 또한 군대를 한성으로 추가 파병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저(원세개)는 오오토리에게 14척의 배에 병사를 몇 명 실었는지 물었습니다. 답하기를, 1대부대[大隊]에 800명으로 모두 3대(隊)인데, 각 대부대에 잡역(雜役) 및 수행하는 자들이 또한 다수라고 하였습니다. 저(원세개)는 말하기를, ‘조선의 사건이 이미 점차 평정되었으니 우리 군대는 조기에 철수해서 혹서와 장마를 피하려 하는데, 듣자하니 일본에서 대병(大兵)을 보내고 장차 추가로 병사를 보낸다고 한다. 서로 방어하다가는 반드시 의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만약 조선에 주재하는 양인(洋人)들이 틈을 보아 농간을 부리거나 양인 또한 군대를 다수 보내어 어부지리를 노린다면 조선이 위험할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또한 반드시 손실이 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화목하면 아시아 전체 국면을 담보할 수 있지만, 만약 의심이 생기면 다만 스스로를 해칠 뿐이다. 우리들이 명을 받들어 출사(出使)했으니, 응당 전체 국면을 총괄하여 자국의 이익을 꾀하여야 하는데, 어찌 무부(武夫)가 다사(多事)를 행운으로 여기는 일을 본받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반드시 이익이 없을 것임을 탐지한 까닭에 아직 한 명의 병사도 한성으로 보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오오토리가 답하기를, ‘매우 옳으니, 똑같은 견해다. 내 나이가 육순을 넘었으니, 어찌 일이 생기기를 원하겠는가! 즉각 전보를 보내 뒤를 이어 오는 각 선박의 병사들을 막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원세개)는 다시 ‘귀하의 뜻은 한성 주둔 병사를 줄이고, 그들을 나누어 인천에 머물도록 권하는 것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오오토리는 답하기를, ‘우리 조정이 원래 파견한 것은 실로 800명에 그치지 않는데, 하물며 1대(隊)와 1장수가 나뉘어 인천에 주둔하는 것은 곤란하다. 조선의 교비가 귀국의 군대가 도착한 소식을 듣고 비록 도망가고 흩어졌지만, 병사는 여전히 아직 해산하지 않았으니, 일이 확정되기를 기다려 곧 완전히 철수하는 데 필히 오래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오오토리는 또 말하기를, ‘천진에서 보내온 전보를 받았는데, 듣자하니 중국에서 병사 2,000명을 보내 장차 한성에 온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피차간에 철수하는데 또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저(원세개)는 답하기를, ‘우리나라에서는 너희가 대군을 보냈고 장차 추가로 병사를 한성으로 보낸다고 들었는데, 과연 당신이 뒤이어 오는 병사를 막을 수 있다면 나 또한 전보를 보내 추가 파병을 중지시킬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오오토리가 말하기를, ‘우리 두 사람이 바로 내가 800명 외에는 모두 막고, 당신 또한 전보로 추가 파병을 막기로 약정해서, 우리 두 사람이 이곳에서 필히 성심성의껏 상의하여 처리하는 게 좋겠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저(이홍장)는 본래 추가로 파병하려 하였으나, 원세개의 전보를 접하고는 곧 중지했고, 아울러 전보를 보내 섭지초와 섭사성에게 잠시 공주와 아산에 주둔하면서 전주 일대의 적정(賊情)을 확실히 탐지한 뒤에 다시 전진 여부를 살피도록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