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개가 전보를 보내어 아뢰기를, “장문선(張文宣) 진장(鎭將)이 한성에서 인천으로 돌아갔는데, 며칠 기다려 동학 교비가 완전히 해산하면 즉각 상의하여 먼저 돌아가 방비토록 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홍장.
주석
장문선(張文宣)
장문선(張文宣, ?~1895) : 字는 德三으로 安徽 合肥 출신이다. 張氏 집안과 李鴻章 집안은 通婚으로 중첩되어 매우 가까운 관계였다. 특히 李鴻章 형제는 讀書와 결혼 및 官界 진출 방면에서 張氏 집안의 도움을 받았다. 1871년 張文宣이 武進士가 되어 兩江의 守備로 파견되었다가 당시 慶軍總兵 吳長慶의 추천으로 哨官이 되었다. 1880년 겨울에 李鴻章은 張文宣을 불러 旅順에서 砲臺를 수축하도록 하였다. 1887년에는 威海로 옮겼는데, 특히 親軍 正ㆍ副 두 營을 거느리고 劉公島에 주둔토록 하였다. 이후 5개의 砲臺를 수축하는 등 威海는 海防의 重鎭으로 변모하였다. 1894년 淸日戰爭이 발발하자 張文宣은 劉公島에서 日軍을 격퇴하기도 했으나, 다음 해 결국 日軍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