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19-04-010
광서 19년(1893) 4월 3일 오시(午時, 11~13시)
총리아문에 보냄
원세개가 2일 전보를 보내 아뢰기를, “동학 교비가 여전히 아직 해산하지 않자 현 조선 국왕이 다시 칙지(勅旨)를 내려 거듭 타이르는 것이 매우 엄준하고 절실하여 교비들이 마땅히 두려워합니다. 또 좀 전에 일본 중의원(衆議院) 의원 코우노 히로나카(河野廣中) 및 스즈키 만지로(鈴木萬次郞)가 찾아와서 일본이 조선을 대하는 것이 응당 엄준하고 절박해야 조선이 비로소 강해질 것을 생각하기 마련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저(원세개)는 일본이 포학하게 대하면 조선은 장차 도와줄 국가를 찾을 터인데, 중국이 도와주면 화국(和局)이 손상되고, 도와주지 않으면 서구인을 끌어들일 것이니 특히 좋은 계책이 아닐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변론을 한참 하니 두 명 모두 크게 납득하였는데, 그들이 하는 말을 살펴보니 오오이시(大石)는 반드시 오래 일을 맡기 힘들 것 같았고, 배상 안건은 쉽게 결말이 날 것 같았습니다. 한편 일본의 전보가 최근에 불통되어 일단 답신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금일 정오에 오오이시가 외서(外署)에 가서 협의해서 금일 밤 내로 논의한다고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