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19-03-044
광서 19년(1893) 3월 29일 술시(戌時, 19~21시)
총리아문 및 여순의 정여창 등에게 보냄
원세개가 29일 전보를 보내 아뢰기를, “좀 전에 전보를 받았는데, 교비들이 여전히 관망하면서 아직 즉각 해산하려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조선 국왕은 이미 친군(親軍) 창대(槍隊) 400명과 포대(炮隊) 200명을 보내 청주(淸州)로 빨리 달려가서 성세(聲勢)를 북돋도록 하였습니다. 저(원세개)는 다시 조선 국왕에게 권하여 대장에게 명하여 행장(行裝)을 정비해서 2,000명의 병사가 뒤를 잇는 모양을 가장하고, 아울러 사람을 시켜 깨우쳐 타이르도록 한다면 혹 속히 해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듣자하니, 일본 공사(公使) 오오이시가 한성 주재 일본 상인과 장정(壯丁)들로 하여금 관내(館內)에서 간편한 복장을 하고 모여서 대오(隊伍)를 지어 훈련토록 하니 마치 단련(團練)의 모습과 흡사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