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19-03-031
광서 19년(1893) 3월 26일 진시(辰時, 7~9시)
총리아문에 보냄
원세개가 전보를 보내어 아뢰기를, “좀 전에 박제순(朴齊純)이 와서 말하기를, ‘사교(邪敎) 비적(匪賊) 수만 명이 끝내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것이니, 단연코 말로 타일러서는 해산시킬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한성의 사민(士民)들은 대부분 정부를 원망하여 반란을 생각하는 자가 10에 8~9나 됩니다. 그 교비(敎匪)들 또한 한성 도성 안에 많이 잠복하고 있으니, 만약 한성을 침범하게 되면 원근에서 향응하게 될 것입니다. 그 교비들의 기호(旗號)에 ‘토왜(討倭)’, ‘척이(斥夷)’ 등의 글자가 적혀 있는데, 만약 양인들에게 피해가 미치게 되면 외국의 침공이 이를 빌미로 이르게 될 것이니 장차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제(원세개)가 가서 초무(招撫)하기를 바라지만, 조선 국왕은 지척(咫尺)의 매우 가까운 곳에서 변고가 생길까 걱정하여, 멀리 떠나겠다고 청해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니, 교비가 한성 근교(近郊)에 이르게 되면 다시 저(원세개)에게 토벌할 것을 청할 것입니다. 남도(南道)의 군대와 장수가 피곤하고 나약하여 진압하기 극히 어렵습니다. 제(원세개)가 고하기를, 사교 비적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진실로 화(禍)의 근원이 될 터인데, 만약 감히 한성을 침범하면 토벌하여 제거함이 그래도 쉽지만, 험요(險要)의 지세(地勢)에 의거하여 호응을 호소한다면 적시에 섬멸하기 어려울 듯하니, 마땅히 즉각 중신(重臣)을 파견하여 한성의 군대와 강화도의 군대 1,000명을 거느리고 현지에 가서 위무(慰撫)하고 타일러 그 괴수(魁首)를 주벌(誅罰)하는데, 만약 이를 거부하면 즉각 토벌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듣자하니, 그 교비들이 아직 군량과 무기가 부족하며 또한 아직 살인과 약탈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하니, 만약 선제공격을 가하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