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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갑오군정실기 甲午軍政實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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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청 소속에서 교체된 부영관 성하영이 첩보함

경리청 소속에서 교체된 부영관 성하영이 첩보합니다. 영관과 계원영관(繼援領官) 구상조가 10월 9일 군사를 이끌고 청주로 빨리 간 연유에 대해서는 이미 급히 첩보하였습니다. 진천에서 청주 60리에 이르기까지 비류(匪類)들이 모여 있는 곳은 없었으며, 아무런 폐해가 없이 도착하였습니다.

이번에 순무영의 출진 교장(敎長) 이장혁(李章爀)・김명환(金命煥)의 수본(手本)의 내용에, “‘저희들이 이끌고 있는 병정 50명・일본 군사 25명이 9월 26일 천안현에 도달하였으며, 남면의 보산원(寶山院)・대거리(垈巨里) 2개 동(洞)에동도(東徒) 수백 명이 방금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일본 군사와 경병(京兵)이 옮겨 출발한 후, 천안현의 군기를 빼앗아 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9월 28일 곧바로 그 동(洞)들로 향하였는데, 모두가 도피하였고 남아 있는 자들은 동민(洞民)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꺼번에 모두 효유한 후에, 조총 8자루・환도 1자루・창 30자루・말 1필・문권(文券)과 화약・연환(鉛丸)・염주(念珠) 등과 같은 물건을 탈취하였습니다. 9월 29일에는 전의현(全義縣)에 숙소를 마련하였는데, 고을 내에 소위 동학의 우두머리(魁首) 김철용(金哲用)・송동이(宋同伊)라는 자가 자칭 각 고을의 도인(道人)들을 모은다고 칭할 때에 군막에 쓰일 것이라고 하면서 상민(商民)들에게 양목(洋木)과 마필들을 빼앗아 와서 지금 가까운 마을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 밤에 그 마을을 포위하여 2놈을 찾아서 붙잡은 후에, 양목 5필을 찾아냈습니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김철용과 송동이를 잡아와서, 9월 30일 공주로 들어갔더니, 충청감사가 분부한 내용에, ‘청주병영이 지난 9월 24일 동도(東徒)와 접전한 후에 일의 기미가 위험하여 시급하니, 곧바로 연이어 출발하라’라는 뜻을 담아 명령하였습니다. 그래서 전의소(全義所)에서 잡은 죄인 김철용과 송동이 2놈과 양목 5필을 함께 공주감영에 맡겨 두었습니다.

10월 1일 연기현에서 숙소를 마련하였고, 10월 2일에 청주병영에 도착하였더니, 충청병사가 분부한 내용에 ‘접전한 이후부터 충청병영의 병정은 성머리(城頭)에 배열하여 서서 밤낮으로 견고하게 지키라’하였고, 저들 무리들은 30리 밖으로 물러가서 한 곳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각 처의 동도(東徒)가 어느 날 밤에 병영의 군기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날마다 이르렀으니, 지금 이곳에 내려온 경병과 본영 병정이 함께 합세하여 출정하겠다는 내용으로 명령하여 알렸습니다.

그래서 10월 4일 청주병 1백 명이 본영병과 일본 군사가 함께 30리 밖에 있는 송산리(宋山里)로 나아갔더니, 동도(東徒) 수천 명과 서로 겨루면서 접전하였습니다. 저들 무리의 선두에 있는 자 10여 명이 총에 맞아 곧바로 죽었고, 나머지 무리들은 도망하였으므로, 곧바로 그 마을에 들어가 도창(刀槍)・인극(釼戟)・갑옷과 투구 등과 같은 것을 3~4바리를 빼앗아 돌아왔으며, 그리고 경병과 청주병은 1명도 다친 자가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매우 다행일 뿐만 아니라, 병정을 거느린 교장(敎長) 김명환과 이장혁은 정성을 다하여 적을 토벌하여 사로잡았으니, 진실로 가상합니다.

제(題) : 보고문이 도착했다. 김명환과 이장혁이 용기를 내어 나아가서 적을 토벌하여 사로잡은 것은 매우 가상하다. 마땅히 포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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