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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학초전 박학초실기
일러두기

학초의 두 번째 결혼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 1900년(경자년) 5월 8일에 학초의 부인 강씨가 붕루병으로 사망하였다. (학초는) 가정에서 답답한 마음으로 재미 붙일 곳이 없어 부실(副室)을 널리 구하니 13처에서 친구가 소식을 전하여 왔다. 그 중에 경주군 노곡동의 정권봉(鄭權奉) 자손 중 한 집이 흥해군(興海郡) 등명동(嶝明洞)에 있어 마침 적당하여 보였다. 그 정씨로 결정하고 성혼이 되어 양가 부모가 계신 곳인 경주군 봉계동 집에 우거(寓居)해 있도록 하였다. 청송에서 장차 경주군 봉계동으로 이사하여 형제가 함께 지내려고 작정을 하고 있었다. 정씨의 성혼하던 역부사실은 천정(天定)이라 다 말할 수 없고, 청송 사람은 아직 남의 가정사를 다 몰라 혹 아직 구혼(求婚)하는 중으로 알고 있었다.
 하루는 어떠한 신부녀가 물움을 쓰고 의가(醫家)에 문약(問藥) 행색으로 와서 마주하고 앉았다. 나이는 이십 남짓 하고 화룡설부가 누가 보아도 밉지 아니한데, 의복 맵시와 앉는 거동이 은은수태(隱隱羞態)한 것이 양반가의 사람인 듯하였다. 문병(問病)으로 왔는데 병록(病錄)은 좌중에 못할 말이라 하며, ‘차차 하리다.’ 하였다. 자연 좌중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난 뒤에 학초가 “병록을 말하시오.” 하니, 그제서야 말을 꺼냈다.
 “주인양반이 어느 날 더울 때 청송 폐문루에 오른 일이 있었지요?” 학초가 말하길 “생각하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 듯합니다.” 하니, 대답하여 말하길 “그때에 어떤 일로 다중 인민의 일로 장두가 되어 관정에 들어오신 일이 있지요?” 하니, 학초가 말하길 “그리했지요.” 하였다.
 (문답이 끝나자 신부는 본론의 이야기를 꺼내었다.)
 “이 사람의 병은 다른 병이 아니라 광대한 천지에 일신을 의탁할 곳이 없는 병이올시다. 이에 더한 병이 없사오니 들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체모를 가리자 하니 백년장화(百年牆花)를 인도해 줄 사람이 없사옵니다. 청춘 행색이 사지에 빠져 함정에 든 인사가 남녀 체면을 차릴 수 없어 모몰염치(冒沒廉恥)에 우피차면(牛皮遮面, 쇠가죽 가리개)으로 이같이 와서 실정으로 사정을 하소연하나이다.”
 “어찌 된 일인지 이같이 연소한 부녀의 화용월태로 보아 하니 박복한 터는 아닌 것 같소. 가족이 있을 터에 성취(成娶)도 한 이상에 무슨 연고로 횡이 함정에 빠졌다 하오?”
 대답하여 말하였다.
 “앞길에 놓인 신세를 구제하여 주시기 바라오니 염치를 불고하고 비밀한 정화를 발설하리다. 이 사람의 친정은 영해군 나라오리라 하는 데, 이씨의 집 출생으로 16세에 안동으로 출가하여 복이 박한 탓에 혼인 후 남편을 잃고 재미없는 세월을 친정과 시가를 오가며 보냈습니다. 작년 봄에 춘말하초(春末夏初) 녹음방초(綠陰芳草) 시에 나이가 같은 시비에게 경보 의복 등 속가지를 이고 안동(安東)과 영해(領海) 사이에 있는 진보 지경 중로(中路)에서 아주 유명 부랑한 자에게 붙들리어 몸을 더럽히고 보재(寶財)며 시비는 그놈이 가지고 있다가 시비는 달리 팔아먹고 이 사람은 저의 계집이라 하니 다시 오도 가도 못할 신세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계집의 팔자는 먼저 맡은 자가 (임자라 한다더니) 사나이니 원수이니 하고 다시 용신을 못하니 살려 주기를 바라나이다.”
 듣고 있던 학초가 “그러하면 친당은 좋은 집으로 다시 알게 하고자 한들 조선 습관에 양반 풍속으로 가문에 욕이라 하고 알게 할 수도 없고 또 돌아다보지도 아니할 터, 옥(玉)이 측간에 빠진 격이니 측간 속의 물건이 될 뿐이오. 무가내(無可奈)하는 것이 될 듯하되, (도대체) 어떤 자에게 붙들리어 그같이 되었소?” 하였다.
 대답하여 말하길 “청송군 관로로 있는 함봉악이라 하는 부랑자이옵니다. 관아의 이교노령(吏校奴令)들이 관로의 계집이라 하고는 꼼짝도 못하게 합니다. 세력으로 말하면 각 관청에 이놈이 친숙하기도 하고 조화가 없다 할 수 없습니다. 날개가 있으면 높이 멀리 날아 달아나 보지만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한다 해도 각 군에 통문을 하여 저를 기어이 찾을 터. 이같이 함정에 단단히 빠진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전에 주인양반이 폐문루에 올랐을 때 이 사람이 그 누하(樓下) 후원 퇴청에서 바느질하다가 잠깐 눈이 바로 보여서 뵈오니 이만한 신세를 구해 줄 능력과 수단이 있어 보여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겨누어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함봉악이 돌아와서 가리켜 가며 말을 하는데, ‘저기에 소풍 하는 양반이 내 보기에 조선(朝鮮) 인기(人氣)라. 오늘 관정 등장 장두로 들어와서 우리 원님이 똥을 싸다가 걸렸는지 꼼짝도 못하고 당당의거로 청산유수(靑山流水)같이 하는 말에, 마음대로 하여 가지고 나와 저기에서 소풍한다마는’ 하는 말을 듣고 보았습니다. 주인양반이 결연을 했다든지 산다 하면 저희가 감히 보아도 말을 못하고 닭 쫓던 개가 호소도 못할 듯하오니 망문 투지로 찾아온 것이올시다.” 하였다.
 (딱한 사연을 듣고 난) 학초는 “내가 본래 양실을 두었다가 연소한 집이 금년(今年)에 죽고 부실속현(副室續絃)을 구하다가 다행한 인연을 얻어 경주에 두어 구했는데, 한 남자가 삼 부인(三婦人)은 부당하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학초의 거절 의사에도 아랑곳없이) 신부는 대답하여 말하길 “이같이 된 신세가 종의 종이 되든지 첩의 첩이 되어도 소원이옵니다. 관로의 계집은 되기 지원극통(至冤極痛)이오니 의탁을 바라옵니다. 만일 영영 거절하면 오늘 날짜로 죽이는 줄 생각하겠나이다.” 하였다.
 학초 부득이하여 이날 밤부터 연침하여 칠삭(七朔, 일곱 달)을 동거하다가 그 사람의 액운이 자연 없어졌거니와 가정으로 말해도 일남 삼녀 투기가 있을 수 있으나 무엇 하나 분란지사는 없었으되, 학초는 일남삼실(一男三室)이 부당함을 혼자 헤아려 확실히 다시 고치어 서로 전정을 떨쳐내고 (지금은) 울산 등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주석
붕루병 붕루병(崩漏病):생리 기간이 아닌데도 많은 양의 피가 멎지 않고 나오는 병.
무가내(無可奈) 무가내(無可奈):무가내하(無可奈何)의 준말로, 몹시 고집(固執)을 부려 어찌할 수가 없음.
이교노령(吏校奴令) 이교노령(吏校奴令):지방 관아에 속한 서리ㆍ장교ㆍ관노ㆍ사령을 아울러 이르는 말.
부실속현(副室續絃) 부실속현(副室續絃):가야금이나 거문고의 줄을 다시 잇는다는 뜻으로, 부실이 죽고 다시 그 아내를 얻는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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