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간 학초
집안의 사세가 부득이하여 부모형제는 순흥 남대동으로 가고, 처자는 가까운 친척집에 기거하니 가까운 친척의 집도 평안치 못할 모양이었다. 차차 동정을 보아야 할 차로 낮이면 산에도 올라 보고, 밤이면 근처 각 동 친구의 집을 찾았다. 세상 변복과 인정 사상이 동학에 욕보던 사람은 나를 보고 어찌도 그같이 반겨하며 안사랑방이며 혹은 안방을 비우고 응접하여 대단히 반겨 주었다. 창졸간에도 대접함이 극히 성대하고 혹 처자를 불러 내외간을 가리지 않고 상면시키면서, ‘우리 살려 주던 은인(恩人)이 오셨다.’ 하며 하도 반겨 고마워하니 도리어 대답하기가 미안하였다. 나(학초)에게 길흉 간 풍설을 아는데 도움이 되도록 역력히도 전해 주었다. 급기야 떠날 때면, 당시는 가난하고 검소한 시절이었지만, 노잣돈은 꼭 필요하다면서 6~7냥씩 많게는 1~2관씩 주니 몸이 무거워서 가질 수 없는지라, 이 집에 받아 저 집에 두고, 이 동네에서 받아 다음 동에 두어 모두 쓰지 못하였다. 인정이 (유별나) 비밀 심부름을 부탁하면 위험을 불구하고 하여 주었다. 어떤 사람은 평시에는 무심히 지내거나 내(학초)가 잘 알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은인(恩人)이라 하며, 당시 어려운 처지에 있던 (학초를) 어찌나 많이도 도와주고자 하는지 도리어 몸 둘 곳이 미안하였다.
어느 날은 용궁 어촌에 사는 신동건의 집을 찾아가니 하도 반겨 하니, 그 인정이 말로는 가히 다 나타낼 수 없었다. (그 집에서) 잠시 머물다가 마음을 스스로 가다듬어 봇짐에다 망혜죽장으로 서울을 향하여 떠났다.
그 노정기를 가사[路程記歌詞]에 기록하였으니,
서울을 치치달아 / 세상구경 역력한데
죽령이 길이막혀 / 추풍령이 길이막혀
조령으로 작로하니 / 문경군 세원땅에
주점은 즐비하고 / 진장터 이십리로다
마포원 이십리는 / 산곡으로 분로하니
좌편은 이울령이오 / 우편은 조령이라
재종형을 찾자하니 / 있는곳이 어딜런고
충청도 목천땅의 / 조판서의 집이라
노정기를 묻자하니 / 이울령 이정로라
십리가면 너분한길 / 요강원이 또십리라
오는사람 전혀없고 / 가는사람 뿐이라
영변칠읍 흉년으로 / 경주의 걸인들이
천리에 벌렸으니 / 잠깐사상 일기로다
일락서산 저문날에 / 요강원 숙소드니
산촌두칸 봉놋방에 / 남녀없이 많이드니
둘러보니 좌우에는 / 경주사람 모두로다
석반받아 먹는모습 / 한상밥을 셋이먹고
잠을자자 누웠으니 / 우는아이 소리로다
그남편 하는말이 / 아이소리 듣기싫다
그거동 잠깐보니 / 측은마음 절로난다
여보그말 하지마오 / 그아이 우는소리
시장하여 우는바라 / 심장이나 상치마오
금야철에 서로만나 / 한방소실 되었는데
억지로 참았건대 / 궁실구박 하지마오
차야하시 잠을깨어 / 소변보러 문밖나니
월색은 만정이오 / 야밤인적 고요한데
난데없는 일부인이 / 뒤으로 내달아서
주저방황 하는거동 / 나를보고 선듯하여
연고잠깐 물어보니 / 천연은근 대답하되
한방에 자던여자요 / 나이스물 한살이라
본래경주 사옵더니 / 흉년을 오년만나
칠일을 오는바에 / 소향은 정처없고
믿는바 가장인데 / 출가한지 육년인데
통심사정 한번없고 / 패악군속 사절이라
여자의 평생소원 / 부모동생 하직하고
믿는바 한가장이 / 일부종사 하자하니
분명한 내평생이 / 그아니 애달프오
우연히 나는마음 / 연분으로 쫓고싶어
비록첩의 첩이되고 / 종에종이 되더라도
사정을 알아주며 / 생전의 원풀이
내평생 아니될듯 / 열녀정절 있다해도
정절이 다허사라 / 그가장 쫓고보면
고생도 쓸데없고 / 내평생뿐 할것이니
잠깐보아도 평생귀천이 / 한번복에 달렸으니
원을풀어 살려주오 / 그모양 잠깐보니
장부처사 우뚝생각 / 자기집일 대조한다
사람으로 한평생이 / 영욕은 다있으니
여자마음 있으리라 / 나의정든 살던부부
이마음이 있을는지 / 모를것이 인사로다
잠깐깨쳐 일러왈 / 세상사람 한평생이
한번궁곤은 여사라 / 사람마다 있는것이
궁박할때 별로생각 / 일반삼인식 하여도
차후에 세상보면 / 불쌍한줄 서로알고
옛말하고 사느니라 / 이럴때에 고쳐가면
도리어 하다못해 / 행복을 못받나니
조심하여 조심해 / 그마음 부디내지마라
계집사람 대답보소 / 애달프오 신명일러라
그날밤 지낸후 / 개동초에 포개지고
서울향해 재를넘어 / 십리가니 용바위
오리가니 연풍읍서 / 삼십리 칠성바위
이십리 괴산읍 / 산중겨우 너른곳에
물이나눈 동서촌은 / 서쪽으로 읍이되고
동편에 홍판서집 / 풍속은 경기로다
이십리 유목정에 / 잠깐들러 숙소하고
사십리 삼거리에 / 십리가니 우뢰바위
이십리 구정배리 / 이십리 오굉장터
삼십리 목천가서 / 안내장터 다다르니
조판서 대소가이 / 서울송현 환고하고
찾아갔던 재종형은 / 그집으로 갔는지라
할일없이 밤을새고 / 한양성중 찾아간다
개명촌에 내달아서 / 교촌이라 권생원집
잠깐들러 조반하고 / 이곳풍설 들어보니
곳곳마다 동학이요 / 사람마다 이서로다
십리가니 매일재는 / 초목은 만전이오
시절은 단풍인데 / 바라보니 북녘에는
구름같은 산이야 / 목하로 보이는데
산수인물 다초면에 / 사람자취 생각하니
백년살지 못한인생 / 간후자취 망연터라
수청거리 십리간에 / 산하처음 개었어라
이십리 홍경이솔밭 / 너르고 낮은산에
낙락장송 드리운솔은 / 보는바 처음일러라
이십리 소사장터 / 잠깐가며 살펴보니
호호탄탄 너른들에 / 한량없는 동서로다
이곳시절 풍년으로 / 곡호는 단풍인데
남북으로 통한대로 / 대로중에 제일이요
야중노방 살펴보니 / 청인왜인 전장터에
장사군졸 간데없고 / 떨어진 의복이며
사람죽은 피와무덤 / 목하사가 약시하여
옛일을 생각하니 / 정희량의 패전터요
고금변복 생각하니 / 흥망의 자취없고
허다죽은 생명이야 / 죽은터가 말이없네
십리가니 칠언바위 / 감주거리 지나가서
개정거리 십리로서 / 진위읍 다다르니
추수하는 농부들이 / 점심먹기 한창이네
얼른지나 돌아서며 / 잠깐옆을 둘러보니
장하다 일부인이 / 화룡월태 잘도생겨
그남편을 권한말이 / 젊은손님 만류하여
이미익은 많은밥에 / 요기하여 보내시오
외주인의 부른말이 / 여보시오 여보시오
요기조금 하고가오 / 대강인사 하온후에
밥을받아 먹으면서 / 잠깐보고 생각하니
일방인사 좋거니와 / 부인마음 생각하니
밥을취해 말았어라 / 그마음의 도량이라
이십전 부녀로서 / 뚜렷한 모양행세
후복정녕 좋게되어 / 그남자의 복일러라
치하하고 떠난후에 / 경주여인 생각하니
사람의 마음이야 / 천층만층 경력일세
십리가니 오미장터 / 중민간이 십리로다
이십리 대한교다다르니/ 수원이 십오리라
수원치례 볼작시며 / 남문올라 구경하니
성안성내 수만호에 / 서울과 비등하다
남문지나 북문드니 / 차례단장 허다비각
어떠한 명환들은 / 복력좋고 덕을끼쳐
제명하여 영세불망 / 만고에 자취로다
그다음 지나서니 / 모설모화 경치되어
연화가 만발하니 / 가을경치 찬란하다
이십리 사근내에서 / 십리가니 갈밑이라
십리가니 과천읍에 / 남태령 넘어서서
성반들 십리가니 / 동작강이 오리로다
강상에 떴는배는 / 오락가락 허다한데
초초주자 잡아타고 / 강상에 높이서서
사면산천 살펴보니 / 가려한 만학천봉
한양으로 기운주어 / 십리안에 서울이라
돌모운이 오리로서 / 남대문이 여기로다
북송현 찾아가서 / 우리종형 만나보니
반갑기가 층이없어 / 한정없는 인정이라
순임아이 인사범절 / 모양조차 기이하다
유련한 여러날에 / 장안성중 구경하고
이목에 허다구경 / 다어이 성언하리
그중에 사귄친구 / 인정이 기이하도다
이때 서울 정부의 형편은 세록 대관 중에 두 파가 있었다. 당시 동학의 혁명 풍성(風聲)은 세록을 혁파하고 인도정의(人道正義)를 세우니, 청국으로 조공하고 섬기는 수구당은 자기의 세력을 보존하기 위하여 군주를 끼고 정부 공사를 주장하여 동학을 치기 위해 청국 정부에 청병을 하였다. 또 일본과 가까이 지내고자 한 조정의 신하는 일본에 청병하였다. 양국 구원병이 함께 출정하니 청국 병정은 조선을 예로부터 자기네 나라의 제후국이라 칭하여 자세(自勢)하였다. 일본 장병은 조선 정부가 우리를 청하고 또 청국병을 청함은 일본을 무시한 태도라 여기고서는, ‘청국은 자기 나라도 보전할 능력이 없는 형편에 어찌 타국을 구할 수 있으리.’ 하는 능시하는 (마음과) 함께 이때를 타서 청병을 호령 박멸하면 열국의 강국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서쪽의 청국을 박축(迫逐)하여 내쫓으면, 북으로 노국은 스스로 위엄을 보여 놓고, 그 안에 조선은 스스로 장막 안에 싸인 꼴인 의중지국이라도 할 터였다.
동학은 본시 일ㆍ청 관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스스로 못살겠어서 자국 정부를 교정하고, 혹은 우선 못살겠다는 학민에 부르짖어 난동도 한 터이다. 어찌하였던지 일ㆍ청이 같이 병사를 일으킨 이상에 일ㆍ청의 접전은 (정한 수순이고) 승패가 나면 자연 동학은 다시 때를 얻어 이긴 국과 합심되기 전은 아직 침식되지 않고 못될 지경이었다.
이때 일본 군대가 강경 어귀로 들어온 청병을 서울에서 내달아 소사들에 와서 접전하여 청병을 박축하고 대승전하여 승승장구로 평양에 가서 또 대승첩하고 따라 또 쫓아 (대승첩하여) 1895년(을미년) 봄에 일·청 간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마관조약(馬關條約)이라 하면 열국이 다 아는 바이라.
이때 조선 정부에서 일·청의 청병이 같이 움직여 들어온 이후로 각 도, 각 군의 민병(民兵)이 창의도 하고, 진위대도 출진하여 동학 진압에 주력하였다. 각 도 각 군 연로에 동학진도 창궐하여 길목을 막고 있고 민포군이나 진위병도 각처 길목을 막고 있었다. 아직 승패는 별로 없으되, 각각 낱낱으로 행동하면 민포군이나 진위대는 ‘동학 잡았다.’ 하여 죽였다. 동학도 (자신들을) 해하고자 하여 취당한 민포는 낱낱이 잡기도 하였다. 행로에는 행인이 막히고 도처에 서로 접전 형세로 서로 집에다 불을 지르기도 하며, 개인 살상이 너무 많아 셀 수 없을 정도이었다. 이 지경에 학초가 서울에 찾아온 일이 거짓말로 동학을 잡았다고 하는 예천 집강을 잡아 징치(懲治)해 달라고 법관에 청구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모양새였다.
재종형 박춘래로 인하여 당시 경상감사 조병호의 장질 조한국(趙韓國)에게 예천 집강 장문건 등에게 불법 억울을 당한 말을 하였다. 당시 연로에 편지도 내왕이 어려울 때이었으나 특별히 조한국의 편지를 얻어 경상감영이 있는 대구를 향하여 떠났다. 날이 많이 지나 집 생각이 몽매간에 있지 못해 판수(점쟁이) 불러 화복을 물으니 가정 소식을 내일로 안다 하는지라, 그 다음 날을 기다린 끝에 서울을 떠나왔다. (돌아오면서 본 것들을) 노정기(路程記) 가사에 기록하였다.
사평강을 건너서서 / 용인읍내 다다르니
고향사람 황경천이 / 반겨이 상봉하니
그사람의 이른말이 / 동란진이 처처에막혀있고
조령산성 문을닫고 / 포군이 수성하며
장사아니면 가지못하고 / 실언하면 목을치고
연로에 횡막비어 / 숙식이 어려웁고
귀댁안부 들어보니 / 약시약시 지내오니
가정염려 달리말고 / 연로에 조심해가시오
하직하고 돌아서서 / 갈길을 생각하니
문복도 할것이요 / 조심은 특별이라
연로변 살펴보니 / 창황억색 거동이야
불지른 빈터이며 / 사람없는 빈집이며
총멘사람 오락가락 / 십리오리 유진하니
민포에 가는사람 / 동학에 가는사람
허다봉책 대우하기 / 활협있는 언권으로
민포에는 평민으로 / 동학에는 도인으로
민병에는 정부알아 / 동학에는 동학이치알아
대답의 수단이야 / 언언이 위지로다
허다봉책 지나서는 / 죽산에 다다르니
수백명 병정들은 / 죽산읍에 유해있고
수천명 동학군은 / 무기장터 유진하고
물안비에 다다르니 / 새벽날 가는길에
머리없는 송장은 / 동복을 갖춰입고
길을막아 허다누워 / 타넘으며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하여 / 땅에발이 아니붙고
다리목을 건너서니 / 허다한 일본병정
총짚고 환도차고 / 좌우에 벌려선데
사람목을 넷을베어 / 악숭남결 만들어서
각기달아 흐른피는 / 비린내음 승천이라
얼굴보고 앞만보고 / 천연히 지나올제
인비목석이라 / 어찌하여 무심하리
문경새재 상문(上門)오니/ 성문을 굳이닫고
문틈으로 넣어보니 / 수백명병정이 좌우벌려서
위엄도 장할시고 / 지나가니 그뉘인고
문을 두드리며 / 바삐열어 달라하니
그중에 감투쓴장관이 / 하졸을 분부하여
문을 열어주며 / 사람을 인도하여
진중으로 들어앉히고 / 거주 성명이며
무슨소관 어디갔다오며 / 이목에 허다본일을
무수궁문 하는중에 / 행장이며 주머니며
역력히도 뒤져보고 / 문답실책 다없으니
공연히 말유하며 / 길을가지 못한다
장부의 간담이야 / 없고보면 죽는게라
정신을 온용하고 / 소리를 여성하여
장관대해 이른말이 / 아(我)동방 조선법에
법례는 일반이라 / 군중에도 군율이있을진대
도적을 살펴보아 / 난세를 태평코자할진대
천리허다 행로인을 / 무단집탈 잡을진대
평시에는 쫓겨날배라 / 이법은 어떤정부법이오
그대장 하는말이 / 분명한장부 언사로다
관계말고 떠나시오 / 장하시고 위무당당
보던바 처음이로소이다 / 하직하고 떠나서니
성문넷을 간데마다 / 이거동 지내나니
굴모웅이 내려서니 / 가던길이 여기로다
용궁영동 내려와서 / 가정소식 자세듣고
대구감영 내려갈세 / 여의골 다다르니
한사람의 거동보소 / 이사가는 경주사람
손을잡고 통곡하니 / 통곡은 무슨일고
대답없이 통곡하니 / 보는사람 민망하다
이소년의 거동보소 / 울던소리 진정하고
노방에 제처앉아 / 진정으로 하는말이
경주산다 하오니 / 동향의 지인이요
소회는 동이라 / 이새새 가지마오
나도본래 살던모양 / 호구는 걱정없더니
진작앉아 듣는말이 / 충청삼도를 나가면
흉년없고 밥좋은곳에 / 시정흔코 인심좋다하여
가산을 전매하여 / 경보로 짐을매니
짐꾼은 둘이요 / 소실은 셋인데
모친나이 서른셋이요 / 이십지경 청상인데
내나이는 십팔세요 / 내자나이 십구세라
여러백리를 나가니 / 청춘내가 발병나서
촌보도 갈 수 없고 / 해는장차 석양되어
주점은 삼십리인데 / 절며뛰며 한탄할제
마침만난 빈말꾼에 / 닷돈삯에 태워갈제
채를지어 가는거동 / 이산모퉁이 저산머리
구름같이 지나가니 / 따라갈길 정히없어
일모황혼 저문날에 / 갈주막을 찾아가니
간데없고 본적없어 / 실처하고 돌아서니
뒤에오던 짐꾼보소 / 모친을 버려두고
먼저간다 차차오라하고 / 도망을 또갔으니
찾을길 정히없어 / 모자 서로잡고
일장통곡 하나니 / 밤은깊어 산속에서
근처한곳 바라보니 / 창에불이 있거늘
불을따라 찾아가서 / 주인불러 간청하니
모친은 안에자고 / 나는 외당에자고
새벽날 개동초에 / 모친불러 가자하니
이런변괴 어찌있소 / 주인은당시 환부라
열셋에 청상수절모친 / 이날밤에 회절하고
진정으로 하는말이 / 어찌할수 없는사세
나는이미 이집사람 / 너는이곳 고공이나살아
이말잠깐 듣고나니 / 모친안색 천연하다
통곡혼자 절로나서 / 사세를 생각하니
어제한날 재물잃고 / 고운아내 정절모친
둘이모두 시집가고 / 내한몸 남았으니
산천인물 낯선곳에 / 돌아서는 한몸이오
여보시오 가지마오 / 통곡을 새로하네
이구경 잠깐하니 / 부운같은 이세상에
사람의 변복이야 / 시각이 잠깐일네
효령장터 들어서니 / 군위의흥 취점하니
바람에 깃발이 / 일광을 희롱하고
다부원 들어서니 / 왜인은 집을짓고
인동선산 취점꾼이 / 연로에 나열하다
칠곡읍 들어서니 / 칠곡부사 사공역이
승전하고 들어온길에 / 거화가 꽃밭이라
대구계명 들어서니 / 징청각 뒷방에서
좋은친구 동류하니 / 각처에 소식들어
영변칠읍 흉년이요 / 그외팔도 동학이라
전라도 운봉이며 / 안의함양 등지와
진주성주 의령으로 / 병정이 오락가락
충청도 괴산이며 / 강원도 영월등지
사람죽은 소식이야 / 차마어찌 들어도
조사후 청령소리 / 법령이 엄숙하고
조석으로 개폐문은 / 차청하문 하올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