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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학초전 박학초실기
일러두기

보수 집강소에게 쫓기는 학초

우동 사는 김중길이라 하는 자와 그 동생 수문이 오래전 안동 진영 군뢰로 있으면서 무수하게 학민하였었다. 말속 잔민에게 그것도 세도라고 무수하게 학민하였다. 심지어 솥땜장이 최덥헐이라 하는 양민을 아무 도적이라고 (덮어씌워) 극한 형벌을 가하여도 자복치 아니하니 그 신경에 대침을 박아 죽이기까지 하였다. 자기의 세를 간롱(幹能)하여 남의 이름에 횡징(橫徵)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었는데, 학초의 부친 통정공이 발각하여 엄정하게 야단치고 타이른 혐의를 (가슴에) 담아 두고 있었다. 이때에 예천 집강소의 (힘을 빌려) 잡아 없애고 가산을 적몰시켜 원수를 갚아 보자고 그 포군이 오는 날을 서로 약속하고 황소 다리 둘을 사다 놓고 고대하고 있었다.
 이때가 1894년(갑오년) 9월 10일, 학초는 가산을 정돈해 놓고 추수하여 고용인과 하인 등으로 마당에 황혼이 되도록 벼를 태산같이 가려 놓았다. 의례히 취침하련만 마당에서 방으로 들지 아니하고 감독을 마친 후 이웃 사이 강을 건너 친구인 신태성(申泰成)을 찾았다. 사랑방에서 신태성과 시사를 말하다가 의관을 벗지 아니하고 퇴침을 베고 누워 서로 담화 중에 잠이 들었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잠이 들어 한 꿈을 얻으니, 꿈속에서도 그 사랑에 있는데 수건 쓰고 검정 옷 입고 조선 총에 화승불을 달아 반짝반짝 보이며 희미한 밤중에 근 백 명의 포군이 둘러쌌다. 완연하게 발을 흔드는 것 같아 깜짝 놀라 깨어 보니 신태성은 자고 있었다. 문을 열고 보니 황혼에 과연 꿈속과 같은지라. 급히 신태성을 깨워 “저것을 보고 지내라.” 하고 천연히 나서 그 집 뒤로 동산을 올라 내려다보니 꿈속과 같이 포군들이 학초네 집을 도륙하고 일변 재산을 털어 십 리에 뻗쳐 갔다. 그 중에 가장 잡고자 하던 사람이 없으니 일촌을 뒤져 수색을 하고 있지만, 하늘이 지시하시어 그 동산에서 구경하는 사람을 저희가 어찌 알리오.
 김중길이 다시 와서 (학초의) 집 누상고(樓上庫)까지 뒤지면서 수색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 수색을 널리 넓혀서 하고 그 중 조금 지각이 있는 사람을 불러 할 수 없다고 하며 돌아갔다. 먼동이 트면서 새벽안개가 산을 둘렀다. 학초가 조용히 신기동 김점준(金占俊)의 집으로 가니 반겨 영접하여 주었다. 그날은 피하고 (다음 날) 황혼에 집으로 오다 앞산 조당(鳥塘)골이라 하는 산에서 친구인 신태성을 불러내 집 가족의 각처 갈 곳을 가르쳐 주었다. 그 외 모든 일을 신태성에게 부탁하고 정처 없이 떠나갔다.
 의용접이라 하고 창생을 광제하며 세상에 횡행하던 수하 친병 오천 칠백 일흔 둘은 어디 두고, 망혜(芒鞋, 짚신)와 죽장에다 강산을 잠자리 삼아 (정처 없이 떠나가려 하였다.)
 신태성은 (걱정이 되는지) 물었다.
 “어디로 가려고?”
 “우리가 친하기야 하지만 도차 행장이 갈지(之) 자라. 어찌 거처를 말하리오.” 하고 떠났다.
 이때 예천군 백송동에 이맹선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선몽대(仙夢臺)의 주인이며, 이우암(李遇岩)의 종손으로 한 고을에서 연로하고 명망 있는 선비이었다. 글을 보는 혜안이 있어 남의 글을 한 번 보면 그 사람됨과 생전의 길흉을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집강소 장문건 등이 박학초를 비밀 정탐하여 잡으려고 방방곡곡을 찾는 중에 백승동에 도착하였다. 이맹선이 크게 호령하기를 “너희들이 어찌하여 그 사람의 가산을 적몰하고도 또 무엇이 부족하여 기어이 찾아 해하고자 하느냐? 흉년을 당하여 백성들은 이산하여 징수할 곳이 없을 때 막중한 지난 세(稅)를 (탕감하여) 창생을 신원하고 구제하였지 않은가? 방금에도 난세를 당하여 양반 아전 명색은 살 곳이 없는 것을 그 사람이 의용 도인을 창설하여 오백 연반리 근처 족속을 구제하였지 않았는가? 8월 화지에 있었던 일을 말하여도 너희들이 군기를 묶어다 도진 앞에 바치고 입도하여 신명을 보전코자 할 때 도중 죄인을 잡아 주는 것도 접수하지를 못하고 총성 한 발에 각안 기업으로 화호 약종을 성립하지 않았던가? 사오만 명 귀화시킨 대성공자를 잡아 죽여 남의 땅을 뺏을 흉계를 꾸미니 너희가 도리어 ‘강도소’이다. 박모가 신원하는 날에 천지신명이 원망하니 필야 너의 집강소가 벼락으로 출도할 날이 있으리라.” 하니 다수가 모두 꾸중을 감수히 듣고 돌아갔다.
 때는 9월 13일, 금릉동(金凌洞) 봉황대(鳳凰臺) 뒷산을 올라갔다. 때는 단풍(丹楓) 시절이요, 산하(山下) 각 동을 바라보며 지나간 일과 다가올 일을 생각하였다. 심중에 상상하니 산천(山川)은 고금(古今)이 같건만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은 인생은 변복(變覆)도 많고 일도 많다. 산수에 은거하여 부모처자를 보존하고자 하니 관군에게 잡힘을 면치 못할 터요. 구구한 척신(隻身)이 천지에 의탁할 곳이 없었다. 동학 의용병(東學義勇兵)을 새로 모아 서면 소위 예천 집강이야 잡아 설욕하련만 그 다음 일을 생각하니 당초에 본의가 ‘불입호혈에 안득기자지의’로 가탁하여 동학이 성공은 하였으되, 누명에서 벗어나고자 다시 동학에 들어 집강소를 문제하면 집강소는 관군을 빙자하고 진위대가 구원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실상 동학을 일으켜도 조가(朝家)에 죄를 면치 못하고 점점 일은 커질 것이다. 아무쪼록 법을 빌려 신설(伸雪)은 해야 될 터인데, 저놈들은 동학 잡은 자라고 하는 자를 도로 문죄하기는 (쉽지 않다.) 때가 조금 일찍되어 (해결하려는) 거사가 급한지라.

주석
불입호혈에 안득기자지의 불입호혈에 안득기자지의:원문에는 ‘불입호혈에 안득기자지의(不入虎穴에 安得其子之義)’로 되어 있음.
신설(伸雪) 신설(伸雪):신원설치,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 버리고 창피스러운 일을 씻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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