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집강소의 동학도 탄압
다시 말하자면, 사람의 간계는 시세를 타고 자기 유리한 쪽으로 변화시킨다. 8월 28일 밤이 지나니 예천 집강 장문건 등의 간계사상(奸計思想)은 (다 말할 수 없었다.) 동학이 다시 무리를 모아 공격할 리는 없을 터, 동학에 있던 한두 사람이 취당(聚黨)하면 잡아 죽여 말없이 할 작정으로 군수와 공모하여 동학을 용하게 많이 잡아 스스로 공이 있는 양 대구감영에 보고하였다. 읍저 인민을 대설기창(죽창)으로 다중 취합하여 객사(客舍) 대청에 집강 군문을 설시하였다. 각 항 파임을 정제하고는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서 동학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사람, 재산이나 있는 사람, 이전에 흠(欠)이 나 있는 사람, 동학을 다시 일으켜 주창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잡아다가 포살하고 심지어 그 사람의 계집이 미인이면 빼앗아 집강군의 첩으로도 삼았다.
전곡과 토지에 기물까지 재산을 강탈하여 전곡은 군량으로 (충당)하고 매매할 건 방매하며, 호의호식(好衣好食)에 의기양양하여 촌민의 재산을 여지없이 털어갔다. 읍의 백성은 집강소를 빙자하여 거진 치부한지라, 읍촌 간 직업 없는 부랑 잡배들이 모두 집강에 가서 붙어 누가 동학이라 하며 재산 없는 자 재산을 빼앗아 먹고살기, 계집을 취코자 한 자 계집을 뺏어 살기, 예전에 (자신과) 흠이 있었던 자를 동학이라 칭탁하여 원수 갚기, 그전에 받은 공전이라도 아니 받았다 칭하고 족속에 족징, 길로 가는 장사가 재산이 많은 듯하면 동학이라 (덮어씌워) 잡아 죽이고 재산 털어먹기, 시장에 물건 오면 동학인의 물건이라 빼앗아 먹기, 만일 똑똑하게 대항하면 동학의 대항이라 하여 포살하기, 관청으로는 동학 잡은 자의 공으로 군용을 세웠는데, 실상은 동학에 걸항자복(乞降自伏)하여 화호각산(和好各散)한 후의 일없는 세상에 군용을 베풀고 실제로는 백성 잡아 살해하고 무단히 털어먹는 강도소이다. 그 중에도 부지손졸이 집강과 동학이 어찌하여 화호각산 되었는지 속내를 모르고 바람에 훔친 대로 행동하며 작폐하였다. 무수한 작폐는 다음에 이야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