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이행 총소리
참새가 학이 우는 이치를 어찌 알리오. 제비가 기러기나 따오기 뜻을 모르는 이치와 같이 두수대장(頭首大將)은 약조대로 뜻을 이루고 갔다마는 이를 알지 못하는 지하 수만 명 소졸들이 양편에서 나는 ‘탕’ 하는 총소리에 놀라, 동학진은 패진 형세로 인산인해가 물이 끓어 넘듯이 방천 남쪽 편 국개 논에 삶아내며 사람이 사람을 딛고 넘어서며 딛고 해서 자상 천답에 사상이 무수하여 패진의 형용에 방불하였다.
이때 김한돌 두 사람은 예천읍에 들어가니 부중이 황황하며 이리저리 분별이 없고 맞서 대해 접어할 사람이 없는지라, 도인 집강을 분별도 못하고 허무설설하여 읍을 한 번 돌아 신거리로 해서 통명역을 통해 완완히 안동으로 가서 영해, 영덕으로 도피하였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 후 1895년(을미년) 봄에 안동 진영에 포착되어 해를 당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날 밤 학초는 수하 김순명, 조용성 등 5〜6인과 함께 각자 집에 돌아와서 안녕 무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