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치 접주 박현성의 약속 이행
학초가 토치의 접장 박현성(朴賢聲)을 청하여 말을 꺼냈다.
“상접 접장께 체중하신 행차를 하여, 예천읍으로 들어가시어 군수와 집강에 대하여 집강소는 입도하고 각자 귀가하도록 하여 다수 도인의 태평함을 보게 하소서.”
박현성은 말하길 “방금 양진이 산거하여 서로 잡아 보자는 적국지간(敵國之間)인데, 범의 입속에 들어가라는 말은 어찌하는 말입니까?” 하였다.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니 실로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학초는 (박현성을 설득하여) 말하길 “진나라 아방전상에 봉도(奉導)하던 형경이나 제왕전상에 칠십여 성을 삼촌설(三寸舌)로 항복받은 여익이며, 오왕 전상에 가서 동작대부를 외워 만승의 조조를 적벽에서 잡던 제갈량 등은 다 뒤에 구원이 없어도 당당한 장부의 걸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진은 후군이 사오만 명이니 예천군수가 성대히 맞이하여 좋은 술과 미녀에 풍악으로 대접할 터입니다. 욕 튀기기도 분수가 있지 뒤에 있는 (우리) 진을 보아 못할 터입니다. 우리 진은 관동포에 제일 접이요, 금일 진중에서는 상장군입니다. 상장을 적국에 보내고 범연히 할 일 없으니 염려 말고 가시오. 도중 대죄인 두 사람은 잡아 결박하여 예천 옥거리 타루비 안으로, 도중은 그 건너편 강을 건너 모래사장 천변으로 약정합니다. 죄인을 주고받은 후에 총성 한 발을 신호를 정하여 도인은 각자 귀가합니다. 상접장 존체는 죄인 교부 전에 냇가 건너편에 사람이 섰거든 이내 건너오시오.” 하였다.
박현성은 말하길 “말은 이류에 될 듯합니다만, 정말 호혈(虎穴)에 들어가기 어려운 일이올시다. 도중 죄인은 누구인지 듣고자 합니다.” 하니, 학초가 박현성의 귀에 입을 대고 “약시약시” 가르쳐 주었다.
박현성은 놀라며 말하길 “극히 어렵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 도중에도 오만여 명의 진퇴를 임의로 하는 큰 범 같은 대장이라 뉘가 감히 잡아 결박하리까? 항차 그 수하에 정든 친병으로 포군 57명이 진퇴 일보에 백발백중하는 포군이 있습니다. 극히 어려울 듯하오이다. 저 호혈에 들어가서 만일 뒤에 범 잡아 들어오는 약조가 틀리면 간 사람도 맹랑할 뿐 아니라 신명을 보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도중으로 말해도 그 일을 성사하기 쉽지 아니하오이다.” 하였다.
좌우에 있던 사람들도 머리를 끄덕끄덕하며 “어렵지요.” 하였다. 학초는 말하길 “아무리 성세해도 군병으로 할 것도 아니요, 금전이 좋아라 해도 아니 될 것이오. 인정이 좋다 해도 아니 될 것이오. 무단히 고지무지지리로 중이 자수삭발(自手削髮)하는 이치로, 점쟁이의 신장경 주문에 신장대 죽은 가지도 저절로 어정청 걷습니다. 항차 사람이 체골과 이목구비가 그만한데 대초동 목수보다 대단히 쉬우니 염려 마시고 가시오.” 하였다.
박현성이 말하길 “그 소임을 누가 다하리까?” 하니, 학초가 말하길 “먼저 가시는 이나 뒤에 남아서 하는 이나 다 우리 박씨올시다. 염려 마시오.” 하였다. 박현성이 말하길 “삼사를 한 번 결단하고 가오리다마는 (약속) 일자를 며칠 몇 시로 하오이까?” 하니, 학초가 말하길 “내일이 8월 28일이오. 오후 신시(申時, 오후 3시〜5시)로 예천 집강소가 옥거리에 군기 묶어 세우고 나열 복배하는 그때 만납시다.” 하였다.
박현성이 말하길 “모사대장의 말을 들으니 강산 초목이 절로 굽어들고, 백만 적병이 저절로 와서 항복하는 수단을 이전에 보았으니 의심 없습니다.” 하고 떠났다. 이 사이에 하회(下回)하고 보내는 선문에,
갑오 팔월 이십칠일 선문 보고
관동 동학 예천 화지동 임시도회 중 박모모
예천군수 집강소 어중
‘우(右)는 어제 귀군 노리(老吏) 공형(公兄)이 전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로부터 각 나라의 종교(宗敎)는 각각 나름대로 기원하여 만국이 통하도록 허락된 것입니다. 항차 동학은 조선의 토속 종교입니다. 주지(主旨)한 유불선(儒佛仙) 삼도(三道)에 공부자(孔夫子, 공자)의 도도 또한 그 속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귀군과 우리 동학 간에는 본래 서로 흠이 없거늘 혹 그 속에는 불법 죄인이 있기는 하나, 그는 홀로 도인은 아닌지라 무단히 동학을 정벌하기 위하여 연병집강(練兵執綱)하는 것은 또한 불가합니다. (집강은) 동학에 입도하여 그 직분대로 행사하고 도중에 있는 죄인은 도중에서 결박하여 납상 교부하고 각자 귀가하여 각안 기업하기로 할 것입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여 의심을 없애기 위해 본 도회 상장이신 박현성을 보냅니다. 내일 오전에 군(郡)에 들어가 오후 신(申)ㆍ유시(酉時)로 각자 귀가하기로 정하니 이에 선통을 보냅니다.
다시 말하자면, 8월 28일 식후 조발에 박현성이 떠났는데 필마단기로 기찰 전후 3인만 대동하였다. 마상에 오를 제 모사대장을 돌아보며 말하길 “뒷일을 단단히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더 부탁하실 말은 없습니까?” 하니, 학초가 말하길 “염려 마소. 금번에 가시면 큰 대접받고 미주 가희에 갖은 풍악도 구경하리다.” 하였다. (서로 이야기를 나눈 후 박현성은) 떠났다.
박현성이 예천 옥거리를 들어서니 삼공형 집강 등이 연접하여 군수가 있는 동헌에 들어갔다. 군수와 서로 초인사를 나눈 후 군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제 공형들이 돌아온 후 겸하여 선문을 뵈오니 다행한 말은 상위 없음을 이같이 와 주시니 더할 말 없이 감사하여이다.”
현성이 대답하였다.
“본래 서로 간 일이 없는 터에 죄를 지은 몇몇 사람은 서로 밝힌 후 단단히 화해하고 각안 기업하는 것이 바른 처사로 아나이다.”
군수는 좋은 기분으로 주안을 들인다. 가희 미주가 좌우로 나열하고 권주가 한 곡조 불러 약산동대가 모두 태평의 기상일러라.
이때 화지동 도회 진중에서는 몇몇 사람이 모사대장소에 모였다. 한 사람이 말하길 “관동포 제이 접주 상장을 호혈 적국에 보내고 약조한 도중 죄인 결박을 어떤 계책으로 하리까?” 하니, 학초가 웃으면서 “염려들 마시오. 말도 좋은 말, 기상도 좋은 기상, 천병만마도 저절로 멀리 두고 모르고 절로 와서 자원 결박하고 좌우 기찰이 부액하여 예천 옥거리 들을 건널 적에 좌우에서 일어나는 모습이나 구경하소. 이 사람이 가거들랑 절로 된 줄 알아주소.” 하고 기찰 불러 대장소에 전갈하되 ‘오늘 사시(巳時, 오전 9시〜11시)에 출진하여 신ㆍ유시에 들어가 집강이 입도하도록 하기 위해 예천으로 간다.’는 내용만 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