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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학초전 박학초실기
일러두기

화지 동산 전투

화지동 지형은 북으로 산이 둘러싸고 있고, 동쪽으로 내려오는 한 가지 내(川)가 경진(京津)을 항해 내려와 돌아 남으로 수구(水口)되고, 그 중간에 예천으로 내왕하는 길고개가 있었다. 북으로부터 흘러오는 한 가지 내는 서쪽으로 둘러 흘러서 남쪽에다 고봉을 놓고는 경진을 향해 동쪽의 산과 수구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나지막한 산이 동구 내 안대같이 서로 돌아앉아서 북은 대촌이 되고, 촌전(村田)과 산 앞은 옥답 논이 위치해 있었다. 그 논 동쪽 동산 밑이 방천으로 둘러대어 있으며 그 방천 너머는 예천 포군이요, 그 논 서쪽의 선두는 도인의 대장소로 서로 총을 마주 겨누고 있었다.
 그날 석양에 각 접 기찰이 비밀리에 분부한 준비를 마치고 와서 고하였다. 총명 영리한 기찰 하나를 불러서 학초가 과정을 명령하였다.
 “포군 백 명을 영솔하고 황혼 초에 화지 동산(東山)의 예천에서 오는 고갯길에 복병하였다가 화지동 남산 위에서 등롱 (하나가) 흔들리거든 연발로 총을 쏘고는 달려들 것같이 하되 줄곧 그곳에 있고, 이와 같이하여 어기지 말라.”
 또한 기찰을 불러 “포군 백 명을 영솔하고 화지동 동구(洞口)에 가서, 황혼에 매복하고 있다가 남산 위에 둘째 등롱이 흔들리거든 일시에 총을 쏘고 한 백 보나 나아가 쏘는 모양을 하되 다시 더 들어서지는 말라. 비밀히 약속을 이와 같이하여 어기지 말라.” 하였다.
 또한 기찰을 명하여 말하기를 “포군 백 명을 영솔하고 화지 동편 방천 상류에 매복하고 남산 위에 셋째 등롱이 흔들리거든 잠시만 총을 쏘고 있다가 남산에 등롱불이 없거든 예천 포군이 있었던 포대에 가서 대장소로 들어오며 포군의 옷과 총을 주워가지고 우리 진으로 대령하라.” 하였다.
 또 대장소와 좌ㆍ우익장에게도 다음 내용을 비밀히 통지하였다.
 “오늘 밤 황혼에 세 곳에서 총성이 나거든 대장소는 일절 응사를 말고 불을 켜는 것도 엄금하고 있다가, (오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만 반기는 빛으로 앞에 사람이 뒤에 사람을 대하여도 환영하는 것처럼 하라. 만일 위령(違令)하면 직곡접은 용서 없이 위령죄를 물으리라.”
 또 향관소에는 “오늘 저녁 식사는 이른 저녁에 다 마치게 하라.” 하고 분부를 내렸다.

모사대장이 화지 남산을 갔다.
 학초가 저녁 식사 후 이른 황혼에 영리한 수하 기찰 7인을 대동하고 화지 남산을 올라갔다. 작은 소나무들이 빽빽이 서 있어 진솔모시 바지가 걸렸다. 일제히 걷어치우고 수건으로 허리를 동이고 올라갔다. 그 중간에 초옥(草屋) 재실(齋室) 같은 것이 있는데, 누런 개가 영접하기 위함인지 ‘껑껑’ 짖었다. 그 집 뒤를 올라 그 산 위 상봉을 오르니 광명한 낮 같으면 가히 사방을 널리 볼 수 있을 만하였다. 서남쪽은 운천(雲川)이 둘러 있고, 그 및 화지 동천은 인산인해 중에 불빛이 영롱하고 도인의 접은 바다가 자는 듯 군용이 정제되었을 것이다.
 학초가 사방을 바라보며 잠깐 생각하니 초한 시절 계용산의 번쾌(樊噲)의 행색이 오늘날과 같을 듯하였다. 새 도인 오십 명이 입도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총 오십 자루를 절로 가져와서 드린다고 생각하니 (정말) 요절할 꾀이다. 기찰을 시켜 장대 등롱에 불을 달았다. 높이 세우되 동서(東西) 일자(一字)로 사이가 한 칠팔 보가량 되도록 띄워 세웠다. 이때 천지가 자는 듯한 때라. 첫 번째 등을 흔드니 화지동 동편인 예천에서 들어오는 길목에서 일시에 총성이 일어나 천지를 진동하며 콩을 볶았다. 조금 뒤에 둘째 등롱을 흔드니 하지 동구(洞口) 경진둑에서 총성이 크게 일어나 전지를 마주 욱였다.
 조금 있다가 그 방천 상류에서 또 총성이 나게 세 번째 등롱을 흔들었다. 삼 처에서 곧 쳐들어오는 듯한 총성이 한곳으로 욱여드는 듯하였다.
 이때 예천 포군 오십 명이 동편으로 뒤를 둘러싸고 불시에 달려드는 적군을 노리고자 하는데 (느닷없이) 아래에서 포성이 천지를 울리고 달려들듯 하니 부득이하여 강약이 현격하게 차이가 난지라, 사절(死絶)할 이유는 없으니 포군 옷은 벗어 버리고 총은 그냥 놓고 (자연) 총소리가 없는 동학인 쪽으로 왔다. 신명을 보존하는 것보다 더한 상책이 없으니 스스로 와서 도인이 되고 말았다. 이때 방천 상류의 포군은 총 하나씩, 포군의 옷 하나씩 들고 의기양양 승전을 자랑하고 모사대장소에 와서 진하(進賀)하였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모사장에 대한 칭찬이 적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다수가 하는 말이 “당시 접전 명색은 보통 단병접전(短兵接戰)으로 총을 쏘아 죽이고 잡는 승전뿐인데, 포성은 위엄만 울리고 인명 상해는 없이 군기 갖다 바치고, 내 군사 도인 만드니 신출귀몰한 계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통 일은 알고 보면 쉬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였다.
 그 중에서 과장하여 말하는 사람은 “초한 시절 장자방과 삼국 때 제갈량이 우리 도중에 있다.” 하고 천만 이름을 헤아릴 수 없는 도인들이 학초의 말에 복종 아니할 자 다시없었다.
 토치동 접장 박현성이 이긴 기분에 도취되어 학초에게 물었다.
 “이 다음 일은 어찌하리까?”
 학초가 말하길 “내일이면 새 도인 50인이 저절로 비밀리에 빠져나가 우리 도중 형세가 대단하다고 포장성새로 말할 것입니다. 집강에서는 불가불 신명을 돌아보아야 하니 찾아오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주석
화지동 화지동:현 예천군 유천면 화지리.
번쾌(樊噲) 번쾌(樊噲):초한 전쟁 시절 유방을 따른 장군으로, 홍문회합에서 위기에 처한 유방을 구한 것으로 유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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