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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학초전 박학초실기
일러두기

화지 대도회 소집

이 당시 안동읍에 김한돌(金漢乭)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본래 안동 진영 장교 출신으로 황수까지 지냈다. 진영 영장이 갖은 방법으로 학민할 때 같이 학민을 많이 하고, 당시 읍촌 간에 세력이 유명하게 일컬어졌던 자였다. 판세가 차차 변하여 진 영장으로 인하여 학민을 같이 하였던 이목에 밀리어 동학에 입도하였다. 안동 발산 동학 접의 접장이 되어 생민의 민형사를 모두 처리하며 허다한 백성에게 학민을 (행하니) 안동, 의성 지경이 도탄에 빠졌다.
 생민들의 원성과 본관 진영에도 관계되어 안동 (진영)에서 잡아 죽이기로 하고 군용을 차려 잡으려 하였다. 장나 민군이 그물을 벌린 고로 (김한돌은) 대항하다가 부득이 예천 소야접에 가서 구원을 요청하였다. (소야 집회 당시) 용궁 군기를 탈취해 오던 그 다음 날 교련장을 돌던 사람이 바로 이곳 차인이었다.
 자기 수하로 말하면 포덕을 몇 백 명 정도였는지 알 수 없는 수하였는데, 의성의 오모(吳某) 둘, 이모(李某) 하나를 두어 좌우익을 삼고, 57명 포군은 조선 구식 총을 가지고 한 자욱 한 방씩 백발백중 명포수를 대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기술을 성세 있게 예천군 화지동(花枝洞)에 동학 대도회를 절엄케 하는 공문을 각 접에 빗발같이 보내었다. 조령ㆍ죽령 이하 도인이 거의 모이니 풍성 사방으로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8월 24일에 학초는 수하 도인 5,772인을 영솔하고 ‘화지 도회’에 갔다. 마음으로 헤아려 생각하니 도인이니 도회에 가기는 가되, 돌아가는 형편을 보니 전번에 용궁을 거쳐 소야에 갔을 때부터 도인의 행위라 할 수 없었다. 난시에 접전하러 가는 대장의 행군이라 할 수 있었다. 기치 군기를 보아도 가히 놀랄 만하고 위령 범절이 세계에 막감당전이라. (임금의) 영이나 병출무명(兵出無名)이 없으니 임금을 위한 행진인지, 임금을 위하고 정부를 개량하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외국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알아보고 진퇴를 결정하리라 (마음먹었다.) 동네에 들어 몇 집을 살피고 사처에 유진(留陣)하고 군중을 둘러보니 그 동네 중에 평평하게 펼쳐진 산이 당중에 있어 그 위에 대장소를 정하였다. 햇빛을 가리는 차일은 하늘을 가릴 정도이며 그 중에 대장소, 중군소, 좌ㆍ우익 대장소, 군요향관소 등을 백모 접장이 규모 있게 설치하였다. 군량은 어디에서 왔는지 산같이 쌓아 놓고 각 접 시도기에 적힌 수만큼 인원수를 보아 나누어 주었다. 대장소의 대장은 김한돌이었다. 군율을 정제하기 위하여 엄한 명령을 추상같이 내리고, 혹 불복하면 태벌(笞罰)도 하는 여러 인물이 기구 찬란하였다.
 박학초는 기찰로 통자를 먼저 통하고 들어가 대장을 만났다. 초면 인사를 하니 대장이 말하기를 “일찍이 뵈옵지 못하였으나 직곡 접장의 특이한 의용평화의 높은 명성은 여러 풍문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이렇게 뵈었으니 높은 수단으로 대도회 공무상을 잘 처리하실 줄 바라나이다.” 하였다.
 학초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이미 지나간 일이며 명성이라 할 건 없습니다만, 관동 각 접 중 일부의 접에서는 (출병 기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금번 도회는 때가 변하여 군대의 움직임과 같은데 군대를 내는 데는 명분이 없을 수 없으니 어찌한 일인지 요점을 듣기를 바라나이다.” 하였다.
 대장이 말하기를 “그러하오이다. 도중으로 임금의 애통조가 있고, 국태공 대원군의 내응도 있고, 소위 세록이며 각 군수의 불법 학민에 견디지 못하여 도탄에 빠진 생영을 구할 목적으로 도중에서 의려(義旅)로 구름 일 듯합니다. 경기, 전라, 충청 각 도가 선짓 합동인 듯한데, 세상에 거역자는 아직 없으되 안동 영장이 도인을 잡으려고 예천 집강소를 설치한다 하니 안ㆍ예 양군을 입도하게 하고 복종하도록 하자 하는 참이오.” 하였다.
 학초는 “(임금의) 애통조나 대원군의 내응을 구하는 진적(眞蹟, 친필)을 알고자 합니다.” 하니, 대장이 말하길 “저도 사람에게 차차 들었지, 진적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 하였다.
 학초가 말하길 “장안 (도소나) 소야에서 금번 일에 대한 명령이 있습니까?” 하니, 대장이 말하길 “장안에서는 알지 못하고 소야접에서는 알기만 한 줄 아나이다.” 하였다.
 학초가 말하길 “현금에 아직까지는 우리 도중에서 거병 접전이 없었습니다. 설사 도인 한두 사람이 혹 불법행위를 한다면 도중에서도 금단하고 관청도 도인이라고 못 잡을 이치가 없습니다. 경북으로만 해도 각 제제다사중(濟濟多士中) 한두 개인의 삼촌설(三寸舌)로도 불과 예천읍의 집강이나 안동 영장에 대한 일은 무사할 듯합니다. 누천 누만 도인의 창의병(彰義兵)을 거하여 문죄하는 것은 도리어 후일에 약점과 수치가 될 듯하오이다.” 하였다.
 대장이 하는 말이 “장하시도다, 장하시도다. 여러분에게 듣던 중 처음이올시다. 생각과 도량이 있으면 말로 성업하여 태산도 물리치고 배를 저어 태평양 바다도 건널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금번 도진(都津)에서 군사 모사가 되시어 일해 주십시오. 특별히 군 중에서 모사대장이라 하겠습니다.” 하였다.
 학초가 한사코 사양하는데, 대장이 군중에게 발령하되 “직곡 접장은 금번 모사대장이라. 일절 내왕을 임의로 무상 내왕하도록 하라.” 하고 “다수 천인 (중에) 대장소 수작이 최상으로 바라옵니다.” 하였다.

주석
병출무명(兵出無名) 병출무명(兵出無名):명분 없이 군사를 함부로 일으킴.
경북 경북:1894년 당시 행정구역으로 보았을 때는, ‘경북’이 아니라 ‘경상도’로 표기하는 것이 바름.
제제다사중(濟濟多士中) 제제다사중(濟濟多士中):훌륭한 선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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