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용궁 군기를 소야 동학 접이 탈취해 갔다는 소문이 낭자하여 각 군수는 명색 집단속을 우선시하여 동학을 방어하였다. 예천군수는 객사동 대청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장문환(張文煥)으로 수집강, 황경재(黃敬宰)로 부집강에 각색 파임을 정하고 부내 민군을 취집하여, 창곡을 내어 요미(僚米)와 북어 일 미씩 매일 주어 무리를 모았다. 말로에는 집강의 강도, 굴혈의 폐단이 (심하였는데 이것은) 다음에 말할 것이다.
주석
장문환(張文煥)
장문환(張文煥):학초전 1권에는 ‘장문환’으로, 2권에는 ‘장문건’으로 기재되며, 『갑오척사록』이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는 ‘장문건’으로 나온다. 본명은 장문건이고 문환은 아명 또는 호로 보인다. 이후 장문건으로 통일하여 기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