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장터 도회
당시 안동과 의성은 물론 조령, 죽령 이하로 각처의 동학이 예천, 오천 장터에 도회를 열었다. 만일 ‘안 오는 도인에게는 궐이나 벌을 받는다.’ 하여 야단으로 모여들었다. 직곡 접장 박학초는 자기 수하 모든 도인을 제쳐 두고 단신으로 수삼 기찰만 대동하고 참석하였다. 열을 맞추어 앉은 인산인해의 사람들을 보며 무슨 공사인지 동정을 살폈다.
각 접에서 온 사람들에게 시도(時到)를 받는데 좌중에 있던 한 사람이 “직곡 접장은 들으니 5,700여 명의 의용 명성이 관동 각 접중에서 다수로 말하면 위치와 명망이 있습니다. 그 뒤에도 필연히 날로 입도하는 도인 몇 칠천이 될지 모르는데, (참석한 이가) 불과 3〜4인에 지나지 않으니 어찌 된 연고시오?”
그 이야기를 듣고 학초가 앞에 나아가 대답하기를 “회문(回文)은 직접 받아 보았으되 의무를 알아 복종하기로 하였습니다. (도인들의) 농사나 장사 영업에 방해와 손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장수 된 접장이 도취임당하여 왔습니다. 물이 많으면 홍수가, 탁수가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중으로 쓸 일이 있더라도 우선 1〜2인으로 하여 보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다시 오기 어렵지 아니합니다. 인민회의(人民會議)며, 도인회(道人會)가 구별이 있을 듯하며, 민(民)이나 도(道)나 간에 사람이 다수가 모인다면 폐단이 생길 수도 있을 듯합니다. 옛날 초한(楚漢) 시절에 조조(曹操)의 백만 대병을 적벽싸움에 어울릴 적에 제갈량(諸葛亮) 한 사람이 오왕 궁전에서 동작대부를 외웠으니, 요즈음엔들 어찌 다시 제갈이 없으리까?”
군중의 사람들이 모두 묵묵하고 직곡접 5,700여 명 불참 궐석이 말살되고, 타 접에서의 불참자도 자차로 무사하게 되었다. 회중 공사에서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금번 공사는 다름이 아니라 현대 조선의 정치가 전혀 법률을 쓰지 아니하고, 세록(世祿)과 문벌을 중히 여기고, 과거니 벼슬이니 하는 것은 공맹의 유경을 배운다 하는 것이 조괄의 도능독(徒能讀)에 지나지 못합니다. 돈만 가지고 있으면서 법률 조목은 하나도 알지 못하고, 본래 배운 적 없으면서 가끔 한 가정을 못 살게 하여 재산 증축도 하여 왔습니다. 세도 대신이다 혹 민중전이다, 어떤 불알 없는 지사이다 하여 어느 틈을 찾아, 세도 길을 찾아 과장에 입문하듯이 꾀하여 얻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방백 수령이라 하는 사람은 때를 가리지 않고 백성을 털어먹는 강도의 괴수입니다. 어찌 인민의 부모라 하리오. 물극필반과 같은 이치로 천운이 순환하여 동방의 성인이 나셨으니, 하늘이 수월 선생을 명령하시었습니다. 동학 취지로 유불선의 도가 나서 하늘의 구름같이, 바다의 조수같이 천의 인심이 이같이 발전되었습니다. 신이 불법행위를 하여 요두전목(搖頭轉目)하던 자와 백 가지 쌓인 원망, 인륜 변괴와 빙공영사에 강도 같은 사람들을 (이제) 모두 우리 도중으로부터 척결할 전세가 될 만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각각의 의견을 내시어 규정을 정해야 될 터이니 밝게 일러 주심을 바라나이다.”
한 사람이 앞에 나서서 말하길 “각 군 각 접에서 인민의 시비곡절을 판결해 주기로 하고 각 항 세금을 일절 정지하여 주지 아니하면 소위 인민을 괴롭히는 군수는 먹을 게 없으니 자연 제대로 갈 듯하여이다.” 하였다.
또 한 사람이 앞에 나서서 말하길 “이 중에나 이 근처에나 지극히 원통한 일이 있는 사람이나 일대 변괴된 일이 있거든 일제히 발언하여 주십시오. 이것으로 후일의 폐단을 막도록 합시다.” 하였다.
각 접에서 받은 소장이 무더기로 들어오고, 좌석 한쪽에 잡아다 혹 결박한 채로 많이 놓여 있었다. 한 사람이 회의 석장에 가 가기동에서 익명서 한 장이 붙어 있어 그것을 떼어 군중에게 들여와 돌려 가만히 보고는 일제히 하는 말이 “세상에 이 같은 인륜 변괴가 어디 또 있으리오.” 하고 대도회 합심 명령으로 기찰 4인을 명령하여 그 사람을 잡으러 가게 하였다.
이때 학초가 수하의 기찰에게 분부하여 “그 익명서를 가져오라.” 하고 가는 차사 기찰을 정지하게 하였다. 그 익명서에 적힌 사람과 사연을 자세히 보니, 학초의 조여부(祖與父) 이상부터 3대를 조면하는 원수의 아들이었다. 하회 류씨 좋은 가문으로 생가로는 사촌 사이요, 양가로는 남매간인데 출가 전 처자 도령(道令) 때부터 간통되어 비밀리에 자식 둘을 낳아 강물에 던져 인명을 살해한 남매간 생피한 사건이었다.
박학초 그 익명서를 한참 들여다보고는 좌중을 향해 말을 꺼냈다.
“요순(堯舜) 임금은 만고의 성군이신데 그 따님 아황(蛾皇), 여영 형제가 사촌 되는 순 임금과 혼인을 시켰고, 만고 대성 공자는 3대에 걸쳐 아내를 내쫓았으니 법은 당시 정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이 일을 지금 당시는 변괴라고 할 듯하되 그 사태(死胎) 아이가 강물에 던져 없어진 동시라. 청청강수(淸淸江水)가 그 사람의 비밀 음사를 징치하자고 장구 세월에 머물러 있을 이치가 없습니다. 설혹 있다 하더라도 외면에 잘못한 것을 알고 없이 한 사건입니다. 안 보이는 속 내장에 똥이 어느 사람에게 없으리까? 악을 숨기고 드날리는 것은 대인군자의 처사입니다. 도중은 도덕상으로 말하면서 그 일을 발기한 사람의 음창(陰瘡) 버러지 같은 마음으로, 도중의 많은 사람의 힘을 빌려 해하고자 하니, 광명한 동학 도덕상 천백만 군중이 음창 버러지의 청을 들을 이치 없으니 하지 맙시다.” 하고 그 익명서를 좌중 화롯불에 성냥을 그어 소화를 하고 말았다.
이때 박학초 다시 일어서서 말을 이어,
“부여조(父與祖)의 악행을 징계하여 그 자손에 착한 사람이 허다하고, 썩은 등걸 뿌리에 새순 나무도 쓰나이다. 설사 부여조에 선악의 죄가 있다 한들 청춘 소년에 연좌할 필요는 없습니다. 혹시 부조가 악하더라도 자손 가르치는 데는 쓰게 할 이치는 없습니다. 항차 자손이 부여조의 악행을 가르칠 이치가 없으니 보냅니다.” 하고 한 소년을 결박해 등에 돌을 지어 엎어 놓은 것을 풀어 기찰을 같이 가게 하여 멀리 지경까지 무사히 보냈다.
그 사람은 하회 류씨 류결성의 손자이다. 그 조상은 도덕과 문장이 뛰어난 국가 충신으로 만고에 숭배하는 류서애(柳西涯) 선생이다. 자손으로 (류결성은) 급제하여 옥당에 (올랐고) 결성(結成)군수를 지냈으나, 그 아들은 선비로 곤궁을 견디지 못하여 그 딸을 ‘천국보’라 하는 부자에게 돈을 많이 받아 팔아먹고 그래도 살기 어려워 가까운 근읍 세족 수령에 처결하고 학민이 없다 할 수 없는 터였다. 또 그 아들이 잡히어 이다지 당하다가 무사히 방송된 것이다.
또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당금에 각 군 군수는 우리 도인으로 인해 행영(行營)을 못하고 도인은 각기 난동하여 규법이 없어서는 아니 될 것이오. 각 접에서 잡아온 죄인이 많으니 어떠한 처분으로 공동 결정을 속히 하기 바라나이다.” 하였다.
그 차에 좌중이 별로 말이 없는지라, 박학초 일어서서 큰 소리로 “비접에 소위 접장자의 사람이 한 규정의 통문을 지어 금일 도회에 볼 뿐만 아니라, 처결안이라 파회 후까지 가하거든 시행하기 바라나이다.” 하였다.
좌중에 앉은 사람이 모두 말하기를 ‘좋다’ 하고 (찬성)하였다. 박학초가 기찰을 불러 지필을 등대케 하고 높은 사령으로 기세 있게 사연을 불렀다.
통문
우(右) 통고(通告) 일준사(一準事)
가정에는 부모가 있고 나라에는 임금이 있으며, 도에는 선생이 있으니, 가정의 규모요, 나라의 법이요, 도에는 발전이다. 신(信)이 효(孝)보다 더 먼저이고 상하화목에 인정(人情)이 앞에 있다. 신에서 항심(恒心)이 그 안에 있으면, 가제(家制) 이후 치국평천하라. 효를 옮겨 충(忠)이 되고 충을 하다가 불우하여 그 임금을 만나지 못하면, 산수로 후퇴하여 구름을 갈고 달을 낚으며 스스로 즐거움을 찾으면 될 일이다. 유불선(儒佛仙) 삼도에 선생 연원이 자연히 도통이 계속되리라. 설혹 군부를 극간하여 정부를 혁명하자 하더라도 동탁, 조조가 어찌 없겠는가? 이 사상은 어려운 난을 만났을 때에 흥망이 달려 있다. 따라서 스스로 수양 수도하며 농사하는 이 농사하고, 장사하는 이 장사하여 동포를 보호하고 부모를 위하고 처자를 보호하는 데 각기 그 업에 힘써야 할 것이다. 원한이 있다고 하여 무덤을 파헤치고, 빼앗긴 돈을 도로 찾는 일에 사사로운 혐의로 도인이나 외인 간에 상호 분쟁으로 난동하는 일은 일절 엄금한다. 이 이후로 도인이라 칭탁하여 인민에게 술 한 잔, 짚신 한 짝이라도 받는다든지, 언어를 공손히 하지 않는 도인은 이름을 삭제할 것이니, 이 일로 잘 알아서 그대로 실행하기 바람.
갑오 팔월 초삼일
관동의 접 임지 오천 회중
이에 학초가 서기(書記) 기찰을 시켜 위 통문을 모든 사람이 들리도록 낭독하고 각 접에 일일이 한 부씩 또, 도의 각 접 벽상과 거리에 붙이고 기찰을 명령하여 파회를 고하였다. 설혹 말을 하고 싶은 자 있어도 못하고 잡혀왔던 사람까지 무사히 (방면되고) 각자 헤어졌다.
무덕덕 물러가면서 하는 말이 “기백 명씩 많이 왔던 접은 말 한마디 참여 못하고, 수삼 인 서기 대동하고 망혜죽장으로 혼자서 실세 있게 들어온 직곡 접장 박모가 공사 다 하였다. 그 중에 잘도 하더라. 이치가 바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아주 길흉을 판단하여 기세 있게 잘도 한다.” 하였다.
집에 돌아온 그 다음 날에 3대 원수로 조면하던 류혁이가 전날 익명서를 당하고도 무사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찾아왔다. 공손히 예배하고 3대 잘못한 사죄를 구구절절이 자복하며 만대 은인으로 칭하였다. 3대 조면을 일장에 풀어 특별 인정으로 지내자 하며, 남평 합죽선(合竹扇) 한 자루를 정에 대한 기표라 하면서 내놓았다. 학초가 받지 않고 고사하였으나, (기어이) 정으로 주는 물건을 내치는 것은 오히려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