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교육
학초 나이 8세에 입학하니 가정이 빈한하게 내려온 관계로 서책은 전혀 없고, 다만 있는 것이라고는 떨어진 천자문 한 권이었다. 가정에서 넉넉히 배울 학문도 없고 동리 안에도 배울 것이 없어 십 리 밖을 매일 내왕하며 동냥글을 배우기도 하였다. 외가인 풍기군 조고리에 가서 어린아이가 공부(蒙學)를 하고 있으니 부용산에 떠 있는 구름과 어림성 위에 떠 있는 달은 놀고 보던 정든 곳이다. 외가에 허다하게 과일나무가 많으니 8월, 9월 단풍 들 때에 이 나무 저 나무 과수에도 정든 곳이다. 외가에서 불쌍히 여겨 베푸는 은혜는 인정상 백년을 잊을 수 없으나, 해 지는 저물녘에 집 있는 곳을 바라보면 유아의 마음에 보고 싶은 부모를 그리워하였다. 이곳에 와서 글을 배우는 것은 집에 서책이 없기 때문이었다. 남의 책을 산질(散帙)이나마 얻어 읽고 갖다 줄 때에는 여간 배운 것은 그 책에 정도 들고, 배운 정신까지 아울러 그 책에 싸다 주니 돌아설 때 서운함이 자기 물건을 잃은 것보다 못하지 아니하였다. 구절 요점에 다시 최고를 하자 하니 다시 볼 길 없어 배우지 않았을 때와 한가지였다.
남의 집 사랑에 가서 보니 최 선비와 배 찰방이라는 사람의 집에 서책을 사랑방 층장에 많이 쌓아 놓고 자손이 공부하기 좋은 것을 용이 바다에 노는 듯이 하니 이것이 소위 배우는 것이다. 문장 재사(才士)가 악양루(岳陽樓)의 동정호를 구경하는 듯 천고의 흥망이나 성현 군자의 행적이나 재주 많은 가인(佳人)을 실제로 눈앞에 마음대로 두고 보니 심중에 붙여 온 마음 어찌 다 측량하리오. 서책만 많이 있고 보면 부(富)와 귀(貴)도 이곳에 있는데 남에게 말도 못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마음속에서 “어떤 집 선조는 이같이 하여 자손의 교육을 아주 하기 좋게 하였는고? 대장부 의당 이와 같이 못하면 어찌 사람이라 하리오.” 하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