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초 7세 대추 이야기
나이 7세 되던 1870년(경오년) 8월의 일이다. 이웃집 김영만의 집은 가세도 넉넉하고 각종 과일나무 중에 대추나무가 많아서, 같은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주인이 높은 나무에 올라 열매를 터니 대추가 어지럽게 땅에 떨어졌다. 그 열매를 동네 아이들이 모두 주워 주고 먹기도 하고, 나중에 흩어져 제각기 갈 때에 얻어 품 속에 싸서 희희낙락히 가곤 했다. 이때 학초는 다른 아이들과 같이 가서 그 대추를 하나도 줍지 않고 높은 언덕에 앉아 홀로 구경만 하였다.
나중에 갈 때가 되어 김영만은 여러 아이들을 모두 불러 세우고 품 안에 대추를 많이 싸서 주었다. 학초도 부르는데, 응하여 받아 가지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도로 주인의 그릇에 털어 주었다. 돌아오면서 스스로 생각하니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남의 것을 공연히 취할 이치도 없고 노예가 되어 (대추를) 주워 주고 얻는 이치도 없다. 어떤 사람은 과일나무가 많이 있어서 자기도 호강하고 온 동네 사람을 ‘이리하여라, 저리하지 말라.’ 하며 호군기세를 하는고? ‘우리는 왜 남과 같지 못한가?’ 하는 한탄이 들어 눈물이 절로 났다.
집에 돌아와 모친 조씨의 품 안에 안겨 무단히 이같이 울더니, (궁금해하는) 모친이 묻는 말에 심중에 있던 이 같은 사실을 말하고 “우리는 어찌해서 남같이 못 지내요?”라고 말하였다.
그때에 김영만의 모친이 학초 집 문전 우물에 물을 길으러 와서는 “귀댁 동자가 우리 대추를 따는데 와서, 과실이라 하면 보통 아이들이 모두 좋아라 주워 먹으려 하는데, 그렇게도 하지 않고 다른 아이와 같이 품 안에 싸서 주니 받아 가지고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주인 그릇에 도로 부어 주고 한 개도 먹지 아니하고 돌아가니 그 뜻을 알지 못할 일이다.”라고 하였다.
조씨는 자기 집 아이가 돌아와 눈물을 흘리며 고탄하던 전말을 전하였다. 김영만의 모친이 집으로 돌아가 그 시아버지에게 이 말을 털어놓았다. (듣고 있던) 그 시부 노인이 대답하기를,
“칠 세 아이 하는 도량이 장래에 일만의 사람이 우러러볼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우리 동네 과일나무가 모두 그 아이의 소유가 되리라. 봉비천인(鳳飛千仞)에 기불탁속(飢不????粟)하는 기상이라, 그 아이를 예사로이 보지 마라. 우리뿐 아니라 대추를 주워 먹고 얻어 갔던 모든 아이들이 모두 그 한 아이의 졸개가 되고 말 것이다.” 하고는 상품(上品) 대추 3말을 정갈하게 하여 학초 집에 보내주고 무한한 치하를 하였다. 조씨가 받아 이웃의 정을 치하하고 1년 제사 과일로 두고 넉넉하게 쓰니, 먼저 품 안에 얻어 갔던 아이들보다 열배나 더 많이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