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초 선대와 출생
조선국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 지평동(芝坪洞, 현 감천2리)에 한 사람이 있으니 성은 박씨(朴氏)요, 이름은 학래(鶴來)이고, 자(字)는 중화(仲化)이며, 호(號)는 학초(鶴樵)이다. 그는 선조(先祖)인 신라 시조왕으로부터 67대손이다. 신라의 십세왕세계(十世王世系)이고, 고려와 조선의 44대 잠영고족(簪纓高族)으로 8세 이상은 7대 봉군(封君)에 임명되었다. 9대조인 밀창군(密昌君)은 선조 임금 때 임란(壬亂) 공신(功臣)으로서 광해군 때 정승을 지내다가 인조반정이 일어난 1623년(계해년) 3월 13일에 “신하가 각기 그 임금을 위하는 것이 만고의 대의이다.”라고 주장하고 부자가 일시에 사절(死絶)하였다. 그 후에 7형제가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는 폐족자손(廢族子孫)이 되어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성을 얻은 이후 7대 이하부터 부조(父祖) 이상까지 단지 4대만 벼슬이 없는 유학(幼學)으로 지내다가 철종 임금 8년 때인 1857년(정사년)에 선조 중에서 폐족(廢族)은 특별 신원을 하였으나, 회강을 건넌 귤나무처럼 세상에 홀로 외로웠고 가난함이 뼈에 사무쳤다.
학초의 부친은 정삼품(正三品)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이요, 모친은 양주 조씨(楊州趙氏)이다. 조선 고종 즉위 원년인 1864년(갑자년) 4월 24일 인시(寅時, 오전 3〜5시)에 학초가 출생하였다.
주석
조선국……학초(鶴樵)이다:박학래(朴鶴來)는 (음)1864. 4. 24. 현 예천군 호명면 산합리에서 출생하여 (음)1942. 12. 12. 영양군 영양읍 감천2리 학초정 자택에서 사망함. 『학초전』은 표지 안쪽에 ‘조선학생회 창립총회’ 기사가 있는 신문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나이 60세가 되던 1923년 무렵 학초정 자택에서 완성한 것으로 보임.
조선
조선:본문은 ‘이조(李朝)’라 했으나, 조선으로 바꾸었다. 이하 동일하다.
밀창군(密昌君)
밀창군(密昌君):박승종(朴承宗, 1592〜1623)을 말하며, 당시 정승으로 있으면서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의 등거리외교를 펼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에……다녔다:원문에서는 “유락강호(流落江湖)ᄒᆞ야 세무정처(世無定處)” 한다고 하였다.
회강을 건넌 귤나무
회강을 건넌 귤나무:강남의 귤나무가 회강(淮江)을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이야기로 사람도 환경이 변하면 달라짐을 말함.
학초의 부친
학초의 부친:족보에 의하면, 부친은 66세손 준영(準永) 임인(壬寅, 1842) 6월 1일생이다.
고종 즉위 원년
고종 즉위 원년:고종이 즉위한 시기는 양력으로는 갑자년인 1864년 1월 20일, 음력으로는 그전 해인 계해년 12월 13일이다. 학초가 태어난 시기는 양력으로 고종 원년이며, 음력으로는 고종 2년이 된다.
4월 24일
4월 24일:갑오개혁 때 건양(建陽)으로 연호를 정하고, 1896년 1월 1일 이후 양력을 기준으로 달력을 바꾸었다. 그 이전에는 모두 음력으로 날짜를 헤아렸다. 다만 학초전에 기술된 날짜는 모두 음력 날짜임을 미리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