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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동학 연루로 신교리 방문

이해 7월에 이름을 알지 못하는 충청도 연풍 산다 하는 신 서방이라 칭하는 자가 수삼 인이 작당하여 척횡으로 각 군에 다니며 자기 전곡을 넉넉히 먹고사는 사람을 찾았다. 당시 조선 풍속에 유세가(有勢家) 자제라 칭하든지, 아니면 어사의 종인이라 하든지, 관찰사 염객(廉客)이라 하든지, 군수의 아객(衙客)이라 하든지 하고는 돈을 1〜2십 원이나 1〜2백 원이나 수삼천 원이나 수기 성세대로 달라 하고는 아니 주면 본군에 잡아 본다, 어사나 관찰사에 잡아 본다 협박하였다. 죄목은 동학의 여당이다, 의병의 여당이다 하여 붙였다. 타향에서 온 사람이면 ‘동학이나 의병 하다 피난 온 자이다.’ 하여 얽어내었다.
 학초에게 와서 자고 이차등설에 의병 하던 사람 전장 가옥에 사니 괄세하고 아니 될 말을 하는지라. 또 그 중에 저희 조선(祖先) 신위를 동학 난중에 소화하여 설분(雪憤)길로 나섰다고 하였다. 학초 심중에는 전일 면목은 모르나 안동의 신장원의 신자(申字)와 같은지라, 이 사람이 은인을 찾아와 원수를 짓는다고 생각하였다.
 ‘이야기 내용이 신가 성씨 위명하고 나를 침해 아니할 터에 저 사람이 죽으려고 눈이 박히었나?’(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듣기 좋게 대답을 하였다.
 “여보시오. 당시는 갑오전의 태고라, 양반 팔아 살려고 하다가 낭패 볼 터이오. 각 군수 아객이나 관찰사, 어사 종인 염객이 봉비천인에 기불탁속으로 청렴하셔야 되지, 만일 그같이 돈을 취하면 그 법 쥔 그 아문에 상앙(商鞅) 같은 고자명철 영웅도 신명을 어찌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자가 반대 불호로 떠나고자 하였다. 학초의 생각에는 이 사람을 그대로 두어서는 양민들의 수재를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마침 홍성등의 가족이 옛날 청송군수를 지내다가 달전동으로 퇴촌한 신관조 신구관 집이 의병 뒤에 무슨 일이 없게 해 준다 하고 매년 연례로 2천 냥씩 받는 것을 탕감시킬 방침과 지금 이 백주 강도를 관청에 고발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저 사람을 조화로 잡아 볼 계교로 음성을 공손히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여보시오. 창졸간에 돈이 있을 수 없으니 후에 주기로 하고, 그간에 어디 계시렵니까? 수일 다시 한 5일 내 만나기로 합시다.”
 신 서방이 반기는 말로 신구관 집에 있으려 한다. 학초가 “신구관? 신구관 집에…, 그리합시다.” 상약을 단단히 하고 전송한 후 다음 날에 생면부지한 청송군수를 보러 가서 처음에는 송민 행위는 하지 아니하고 문간 헐소청(歇所廳)에 서서 손님이 군수 보는 격식으로 사령 불러, 승발(承發)을 시켜 통자를 하니 연이어 일편 고성(高聲)진 대답이 에데데 나더니 삼문을 연다. 학초 들어가서 처음 보는 인사를 통하자 인하여 “가사 지방의 관찰사 염객이니, 어사의 종인이니, 안동 지방 대장 일가이니, 군수 영감의 친절한 아객이라든지 강도에 행세 죄가 있으니 곧 잡아서 대구 경무청으로 가게 하여 주시리까?”
 (학초의 청에) 군수가 말하길 “성명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소?” 하니, 답하여 말하길 “이름은 생도 알지 못하오만 성자(姓字)와 면목은 알되, 이 자리에 먼저 말하면 잡지 못할 일도 있고 장교 포교만 보내어 잡지 못할 것이니, 잡는 법도 있고 생의 말을 들어 주시어 포교를 영송하여 주시면 생이 대동하고 잡아 드리리다.” 하였다.
 군수가 “그리하라.” 하고 (장교와 포교를) 마음대로 데리고 가라 하였다. 삼문을 나서니 장교가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니, 학초가 말하길 “가서 보면 알고 멀지도 아니하고 포교는 못 가는 집이라, 내 하는 대로만 하라.” 하면서 단속하고 다른 집이 아니고 전의 신구관 옥당 집으로 갔다.
 당시 조선의 고래풍속(古來風俗)에는 옥당 집 문안은 도적잡이 포교가 못 들어가는 터이었다. 학초가 포교에게 명령하여 문간에 둘을 세우고 집 뒤 두 곳에 파수를 세워 놓고는 학초가 먼저 들어갔다. 대청과 방에 제객(諸客)이 바둑을 벌려 놓고 ‘땅땅’ 하며 (두고 있었다.) 평상 위에 금관자 탕건 주령을 달고 장죽을 물고 앉아 있는 이는 젊은 옥당 신교리로 보였다. 문이 가려 보이지 않은 후당에서 안 나오고 있는 이는 늙은 옥당 신구관으로 보였다. 들어가 초인사를 나누니 평상에서 내려와서 접객하는 예절은 아니하고 입인사로 대신한다. 서울에서 청송 지방으로 내려와 입으로 인사하는 이는 신교리 밖에 처음 보았다.
 학초가 “금관 옥당이 청송 달전에서 세월을 보내나니까? 제객으로 더불어 소견세월이 좋습니다. 조금 미안한 말이올시다만 허다 식객을 어찌하여 나날이 먹여내며, 당시가 농반이라 손으로 말하면 각기 집에 산업을 연감으로 하여야, 아니 일한다 할 수 없고 기시 모였으면 좋은 학업은 없고 신선이 하는 기국을 두시니, 생이 알기로 신선은 죽은 사람이라. 세상에 신선이 없는 줄 아오.” 하였다.
 신교리는 묵묵히 보기만 하면서, ‘저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저다지 말을 하는지?’ 생각하고, 모든 손님은 기국판을 밀쳐 놓고 있다가 그 중에 한 사람이 나서며 인사를 하는데 전일에 알던 박장화였다.
 “종씨, 금번 오시기 천만이외요. 말이 연문(衍文)올시다.”
 학초는 (개의치 않고) “주인 영감이시며 중씨에게 묻나니, 주인 영감 동 중에 연풍 신 서방이 이 댁에 있습지요?” 하였다.
 박장화는 말이 없고 신교리가 “있지 아니합니다.” 하니, 학초가 말하길 “있는 줄 분명히 아는데 없다 하니 믿지 못할지라. 안을 잠깐 통해 주시면 포교 데리고 뒤져 보리라.” 하며 문밖을 내다보며 (포교를 보고) 들어오라 하였다. 우선 포교 두 명이 들어섰다. 신교리가 포교의 안면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금일 소조는 사정없을 터, 창피도 하였다.
 평상을 내려앉으며 “어찌한 일이며, 안을 통하여 들이리다만 명색이 누대 청관으로 생존한 양대 옥당 문안에 포교가 들어서기 처음이라. 뒤져 보고라도 실상 없고 보면 피차 부끄럽고 창피함이 있으리라.” 하였다.
 학초는 (지지 않고) “조선에 옥당 본의가 청청하기에 청렴한 행위를 하셔야 옥당이신데, 우선 당장에 보니 당차 농반에 인민을 모아 도박을 하니 범죄자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농사도 아니 짓고 장사도 아니하면서 홍배반(홍성등) 같은 이에게 무슨 경우로 주지 아니한 돈을 연연이 2천 냥씩 공세(公稅)같이 받아 도박객의 양식을 하시오?” 하였다.
 방에 있던 박장화가 무색하여 주인을 위하여 한마디 하였다.
 “직접의 말만 하시오. 연풍 신 서방을 찾으시면 그 사람이 없으니 어찌하오?”
 학초가 말하길 “나는 그 신 서방을 신옥당 집에서 잡고 말 터이니 어찌하려오? 빨리 안문을 통하라.” 하고 독촉하였다.
 (그러자) 신교리가 진골이라 하는 동네의 그 동생 경해의 집에 있다 하였다. 학초가 군수에게 들어와 청송군 각 면에 비밀히 잡으라 전령하니 그 공문에,

곧 들으니, 소위 연풍 신 서방이라 일컫는 자가 자칭 수의어사 수종이라 하고, 또 관찰부 염객이라 하고, 줄당무수 중수 삼인식 각 동 민가에 대낮에 토색을 한다 하니 지극히 놀랍다. 소위 신가 여수종 각 인을 듣는 대로 보는 대로 잡아 결박 착상하기로 이미 각 면, 각 동에 불일 발령하니 만일 중도에 실포(失捕)할 염려가 있거든 일군에 밀통하여 각 동 각 인민 등은 별반(別般) 안동(眼同, 함께 감) 착상 사.

경자(更子) 칠월(七月) 십육일(十六日) 청송군수

이때 소위 연풍 신 서방이 과연 진골 신경해 집에 갔다가 비밀히 잡으란 명을 듣고 쇠재를 넘어 안동을 향하고 도주하다가 콩밭골이라 하는 동네에서 잡혀 인민들이 땅을 파고 세워 놓고 돌팔매 비 오듯 하여 죽여 묻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때 학초가 군수에게 정한 소장에 지령이,

소위 신가가 수종이라 자칭하며 민간에 출몰하여 소란을 겪은 뒤에 조상을 더렵혀 가며 돈을 챙긴 것은 죄가 의당 크니 각 동에 알려 잡아 착상할 사.[所謂申家 自稱隨從 出沒民間 經撓後忝祖討錢者 罪固當戮 隨到着納之意 已有各洞傳令 向事]

경자 칠월 십육일

주석
염객(廉客) 염객(廉客):남의 비밀 사정을 몰래 살피는 사람.
아객(衙客) 아객(衙客):지방 수령을 찾아와 관아에 묵던 손님.
상앙(商鞅) 상앙(商鞅):진의 통일 기틀을 다진 정치가로 주위에 적을 많이 만들어 후일 죽임을 당한 사람.
연문(衍文) 연문(衍文):글 가운데 들어간 쓸데없는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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