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새벽에 잠자리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좌정하였다. 최임문(崔任汶)이 화산의 도적들을 사로잡고 보검을 획득했다. 세 놈을 좌하(座下, 지휘 책임자)에 바치니, 포로를 받았다. 검은 마땅히 차야 할 사람을 기다리자고 해서 상자에 담아 두었다. 조금 지나자 고을 사또가 달려와서 형리(刑吏) 이양욱(李亮郁)을 시켜 죽은 무리를 찾아 도적들의 실정으로 삼으며, 뭇 선비들이 도적을 잡은 노고를 위로했다. 관아로 돌아갈 때에 잘 타일러 경계하여 말하기를,
“도적의 여당(餘黨)이 반드시 와서 엿볼 것이다. 마땅히 위풍과 기세를 수립하여 사방에 위엄을 보이고 다니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이에 무리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향하였다. 화산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형구를 채워 앞장세웠다. 곧바로 효령에 다다랐는데, 그 지역도 동도가 소굴을 설치한 곳이었다. 그곳의 동도들은 이곳에서 군사가 간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스스로 흩어져 버렸고, 우두머리인 자만 아직 남아 있었다.
그때에 소용구(蘇龍九)도 칠곡의 동북(東北)과 영서(嶺西) 두 면 사람들을 거느리고 와서 먼저 도적들을 붙잡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화산에서 붙잡은 자들과 함께 나란히 결박하여 백사장 숲에 데리고 가서 죄를 캐내어 물으니, 또한 신원(薪院)에서의 공초(供招, 죄인에 대한 심문, 답변)와 같았으므로, 어제처럼 처리하여 다스렸다. 최임문과 소용구의 용맹을 칭찬하고 격려했으며, 군사들에게는 술을 상으로 내렸다. 마침내 그 일을 고을 사또에게 아뢰어 보고하였다.-군위 현감은 이인긍(李寅兢)이다.- 사또 또한 가상하게 여겼다.
이어 되돌아올 때에 약조하기를,
“무릇 우리 동지들은 마음속에 충정(衷情)이 있으니 누가 임금을 위하여 죽음으로써 충성하고, 부모를 위하여 죽음으로써 효도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충효(忠孝)로써 서로 힘쓰고 격려하면 선비들은 용감해지지 않을 수 없고, 적들은 평정되지 않을 수 없으니, 장차 이 맹세를 어기지 않도록 죽을힘을 다합시다. 내일 아침 일찍 함께 대율리(大栗里)에서 모여 한번 약조(約條)를 정하고 감히 위반하지 맙시다. 그런 뒤에야 모든 일을 미리 확립되고, 능히 잘 마칠 수가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말이 끝나자 각각 거느린 사람들을 인솔하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