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연락처
기념재단
TEL. 063-530-9400
박물관
TEL. 063-530-9405
기념관
TEL. 063-530-9451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사료 아카이브 로고

SITEMAP 전체메뉴

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 기사명
    제15장 경자년 송암의 조난[第十五章 庚子松菴遭難]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음력 1900년 08월 13일
일러두기

명치(明治) 33년(1900년) 8월 13일에 충주에 주둔한 병정(兵丁) 및 관예(官隷)가 크게 도유(道儒)를 수색하여 체포하였는데, 손천민(孫天民)은 청주군에서 잡혀 경사(京司)로 압송되었다. 8월 24일에 수반검사(首班檢事) 윤성보(尹性普)가 심문할 때, 송암(松菴) 손천민(孫天民)은 종이와 붓을 청구하여 공술서(供述書) 및 유서(遺書)를 다음과 같이 작성하였다.

충청도 청주군 평민 피고 손천민(다른 이름은 士文) 나이 44세.

피고는 26세인 임오년(1882년, 고종 19) 12월에 사도(斯道)에 들어가 배우며 스승을 따라 도를 닦은 지 지금까지 18년이 되었다. 지난 계미년(1883년, 고종 20) 정월부터 전도(傳道)하기 시작하여 사문(斯門)의 무리가 거의 수 만명에 이르게 되었다. 원래 사도(斯道)는 천운(天運)이 순환하여 가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지난 경신년(1860년, 철종 11) 여름 4월에 황천(皇天)이 묵묵히 돕고 귀신이 몰래 도와 경상도 고(故) 학생(學生) 최제우(崔濟愚) 선생이 천명을 받아 사람들을 인도하여 포덕(布德)하였다.
최선생(최제우)은 곧 병자공신 정무공(貞武公) 진립(震立)의 6세손이다. 도유(道儒)에게 도를 행한 지 불과 3년 만에 서도(西道)의 이름으로 갑작스레 무고를 당하는 화를 입었다. 갑자년(1864년, 고종 1) 3월 10일에 마침내 영남 감영에서 정형(正刑)을 받았다. 당시의 광경을 상상하면 천지가 참혹하고 해와 달이 빛이 없을 지경이었다. 만약 한 터럭만큼이라도 부정한 허물이 있었다면 법이 본래 그러하니 감히 모면을 도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무함을 입어 이처럼 백옥(白玉)과 같이 흠 없는 대도(大道)로 하여금 만고에 걸쳐 초유의 횡액을 당하게 하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는가. 인의예지(仁義禮智)와 효제충신(孝悌忠臣)과 삼강오륜(三綱五倫)과 같은 이치가 저와 같이 일에 어긋난다면 감히 도학(道學) 두 글자로 입을 열 수가 없으니, 어찌 감히 억울함을 편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지난 무술년(1838년, 헌종 4)에 복법(伏法, 형벌을 순순히 받아 죽음. 伏誅) 된 최시형(崔時亨) 선생이 항상 선사(先師)이신 최제우(崔濟愚)의 신원되지 못한 일을 원망하다가 지난 계사년(1893년, 고종 30) 봄 2월에 피고로 하여금 복합상소(伏閤上疏)를 하게 하였다. 하나는 피고 선사의 억울함을 펴는 것이고, 하나는 피고 등이 영읍(營邑)에 형배(刑配) 된 생령(生靈)을 살려 달라는 것이다. 성상폐하는 덕은 순(舜) 임금이나 우(禹) 임금보다 뛰어나시고, 공(功)은 탕왕(湯王)이나 무왕(武王)보다 뛰어나시어, 사람을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고 은택이 곤충(昆蟲)까지 미치셨다. 사알(司謁)을 시켜 구전(口傳)으로 칙령(勅令)을 내리시어 피고 등이 받들어 보니 각각 집으로 돌아가 각각 자신의 일을 편안히 하라고 하셨다. 너희들의 바라는 것을 그대로 하라는 명을 받든 피고 등은 성상께서 화육(化育)하신 적자(赤子)로, 곧 물러나 해산하여 각각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탐학(貪虐)한 관리들이 죽이고 노략질하는 것이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하여, 성상폐하의 들으심을 가리고, 상상폐하께서 화육(化育)하는 적자(赤子)를 포학하게 하니, 백성들의 마음이 날로 떠나고 나라의 형세는 날로 고립되었다.
갑오년(1894년, 고종 31)에 이르러 고부군(古阜郡)의 군수(郡守)가 탐학하여 불법을 하고 무뢰배처럼 간악하여 전봉준(全琫準)과 김개남(金開南)과 손화중(孫華仲) 등은 백성들이 어지럽게 되자 난리를 일으키니 그 끝을 알 수가 없었고, 천뢰(天雷)에 항거함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죄가 동학(東學)으로 돌아왔다. 피고의 선사이신 최시형(崔時亨)께서 피고로 하여금 통유문(通喩文)을 지어 각처의 도인(道人)들에게 빨리 전하여 알리라고 하셨다. 또 피고에게 명하셔서 전봉준 등이 있는 곳에 가서 금지할 것을 알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피고는 전라북도 삼례역(參禮驛)에 가서 전봉준을 보고 알렸다. 전봉준과 김개남과 손화중 등은 귀화(歸化)는 고사하고 도리어 살해하려는 마음을 가졌다. 그러므로 피고는 보은(報恩)으로 돌아와 최시형 선생과 상의하여 각처에 효유문(曉喩文)을 지어 통지하고 법을 어지럽히고 도를 어지럽히는 사람은 하나하나 금지하고 그만두게 하였다. 그러나 세운(世運)이 불길하여 쏟아진 물을 담을 수가 없어 함께 악명(惡名)을 쓰게 되니 옥(玉)과 돌[石]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지경에 이르러 하나의 죄를 면하기 어려우니, 어찌 황공하지 않겠는가마는 죽을 죄를 풀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저 사도(斯道)는 선사 최제우(崔濟愚)께서 이미 대운(大運)을 이었으니 공부자(孔夫子)와 같은 성인의 적자(嫡子)가 되는 이치이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성인은 성인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이르는 것이다. 앞의 성인이 발(發)하지 못한 깊은 근원을 어리석은 남자와 어리석은 여자로 하여금 천리(天理)의 근본을 다 알 수 있게 하였다. 어찌 다만 동학(東學)이라고 치우치게 이름을 붙이겠는가. 천하의 끝없는 대도(大道)이기 때문이다.
큰 선생님인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의 「포덕문(布德文)」에 이르기를 ‘오제(五帝)의 뒤에 성인이 태어나고 일월성신(日月星辰)과 천지도수(天地度數)가 모두 문권(文卷)에 나와서 천도(天道)가 늘 있음을 정한다. 그러나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하고, 한번 차고 한번 비는 것은 천명(天命)에 달려 있으니, 이로써 천명을 공경하고 천리(天理)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군자가 되고 배우면 도덕(道德)을 이룬다. 도는 천도(天道)이고, 덕은 천덕(天德)이다. 그 도를 밝히고 그 덕을 닦기 때문에 군자가 된다. 지성(至聖)에 이르러서는 어찌 공경하여 감탄하지 않겠는가. 그 문장은 『시경』과 『서경』과 『주역』과 『춘추』이고, 그 법은 예악(禮樂)과 형정(刑政)이고, 그 도는 온량공검(溫良恭儉)과 효우목연(孝友睦淵)과 임휼지인(任恤智仁)과 성의충화(聖義忠和)와 변화기질(變化氣質)일 뿐’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앞선 성인의 가르침이고 수심정기(守心正氣)는 오직 내가 다시 정한 것이다’라고 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부자(夫子, 공자)가 깨달으면 하나의 이치를 정한 것이다. 오직 내 도를 논하자면 크게는 같고 조금 다를 뿐이다. 조금 다르다는 것은 또한 이상하지 않으니 다른 사물(事物)이니, 성(誠)과 경(敬)과 신(信) 세 가지의 단서이다. 천지를 공경히 받들어 일마다 반드시 고하여 섬기기를 부모와 같이 하는 것, 이것이 하나의 도리이다’라고 하셨다. 종지(宗旨)는 앞의 성인에게 있지만 미처 발하지 못한 일로 최제우(崔濟愚) 선생이 처음 창시한 종지이다. 하늘을 섬기기를 아비와 같이 하는 것이 어찌 도리에 흠이 되겠는가. 이 또한 저 서도(西道)의 천명을 막고, 공부자(孔夫子)의 광명정대한 대도의 이치에 흠이 되지 않는다. 어찌하여 좌도(左道)라고 이르는가.
동학(東學)이란 그 배움의 이름이 본래 동학이 아니라 하늘에서 나왔고, 동쪽에서 창시되었기 때문이다. 당대의 사람들이 서학(西學)을 배척하고 멸시하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사 최제우께서는 문인과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도는 모름지기 천도(天道)인데, 학(學)은 동학(東學)이라 한다. 하물며 땅마다 동서(東西)로 나누어, 서학은 어찌하여 동학이라 하고, 동학은 어찌하여 서학이라 하는가. 공자(孔子)께서는 노(魯)나라에 태어나 추(鄒)나라에서 가르치셨다. 추노(鄒魯)의 유풍이 이 세상에 전해졌으니, 우리의 도는 이에서 받고 이에서 베푸니 어찌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말하겠는가. 말한다고 해도 반드시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또한 반드시 동학이라고 지목할 필요는 없다. 이단(異端)과 이류(異類)로 대하여 영읍(營邑)에서 잡고 가두고, 형벌을 가하고 유배를 하고, 학대하고 살해하여 백성들에게 의식(衣食)을 얻지 못하게 하여 백성들이 편안히 쉴 수가 없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는가. 마음을 기르고 기(氣)를 바르게 하여 하늘의 이치를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사람들이 각각 선하게 되기를 물이 흐르듯이 하고, 각각 자신의 국량을 따라 성자(聖者)는 성자답게, 현자(賢者)는 현자답게, 철자(哲者)는 철자답게 한다면 부자(夫子)의 도는 또한 이와 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어찌 소소하게 둘로 가르는 단서를 만들겠는가.
또 서도(西道)가 창궐하니, 어리석은 남자와 어리석은 여자들이 모두 미혹됨이 심하다. 하나하나 모두 들 수가 없기 때문에 이에 동학(東學) 두 글자와 시천주(侍天主) 세 글자로 저들의 이치를 막은 것이다. 그 뒤에 배우지 못한 무뢰배들과 난리를 피우는 무리들과 협잡한 사람들이 동학이라 빙자하여 가탁하여 유행하는 주문을 외우면서 도법(道法)을 그릇되게 전하는 것을 날마다 일삼으며 법을 어겨 인륜(人倫)을 멸시하고 강상(綱常)을 어그러지게 함이 그 끝이 없었다. 법을 어지럽히고 도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토벌해야 하지만 묘당(廟堂)이 엄하게 신칙한 것처럼 옥과 돌[石]이 함께 탈까봐 어쩔 수 없이 도를 숨기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였다. 비록 수고롭더라도 원망하지 않으며, 살아있는 도(道)로 백성들을 죽이니 비록 죽더라도 죽인 자를 원망하지 않았다.
한편 원망을 풀고 의(義)를 일으킨 전봉준(全琫準)과 김개남(金開南)과 손화중(孫華仲) 등이 한 번 죄를 범하자 같이 그 죄를 쓰게 되었으니 어찌 검은색과 흰색의 이치가 없겠는가.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천하에 도(道)가 있을 때에는 도로써 몸을 따르고, 천하에 도가 없을 때에는 몸으로써 도를 따른다.

선사이신 최제우(崔濟愚)께서 갑자년(1864년)에 당면하신 것과 선사이신 최시형(崔時亨)께서 무술년(1898년, 헌종 4)에 당면하신 것과 피고가 지금 당면한 것은 명(命)과 운(運)이 아닌 것이 없다. 피고는 마땅히 그 명을 순수하게 받을 뿐이다. 나중에 사도(斯道)가 크게 창성한 다음에 생령(生靈)들이 진구렁이나 숯불, 도랑과 골짜기와 같은 데 빠지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로써 면할 수 있으니, 나라를 보좌하고 백성을 편안히 하는 계책은 또한 이 백성들에게 있다.
묘당(廟堂)의 공의(公議)는 천운(天運)을 살피고 사도(斯道)를 살피는 것이다. 음양(陰陽)을 질서 있게 하고 사계절을 순조롭게 하는 이치는 또한 여기에 있다. 자유(子柳)와 자사(子思)는 노(魯)나라의 신하가 되었으나 해침을 당하였고, 우(虞)나라는 백리해(百里奚)를 기용하지 않았으며, 부자(夫子, 공자)는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에서 곤액을 겪었으니 모두 현자를 기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와 아래의 사귐[交]에 대해서는 목생(穆生)이 떠나자 초(楚)나라는 곤액에 처하였고, 미자(微子)가 떠나자 은(殷)나라는 망하였다. 어찌 통곡할 처지가 아니겠는가. 하물며 당당한 성상(聖上)께서 화육(化育)하는 적자(赤子)로서 도리어 도적의 군사가 되어 그 원인을 따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맹자가 말하는 ‘연못을 위하여 고기를 몰아주는 것은 수달이고, 나무숲을 위하여 참새를 몰아주는 것은 새매이다’라고 하였다.
탐관오리(貪官汚吏)와 명가(名家)의 세족(世族)들이 성상의 들으심을 가리고, 묘당에 무고하게 보고하여 백성들을 죽을 곳에 몰아가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백성들을 그물질하는 것이니 국운(國運)이 쇠망함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통곡하고 통곡한다. 선비는 나라의 원기(元氣)이고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요즈음에 참됨을 실천하고 도를 행하는 참선비[眞儒]는 거의 없고, 서로를 맺기 위한 헛된 문장으로 한갓 외면적인 수식만을 숭상하고, 경전(經典)을 표절하고 내용 없는 화려한 말로 이름을 낚시질하는 선비들이 열에 여덟이나 아홉이다. 선비들이 익히는 것을 말하자면 거의 모두가 주자(朱子)의 학문을 하기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어찌 더불어 부자(夫子, 공자)의 도학에 들어올 수 있겠는가. 덕성(德性)을 높이고 문학(問學)을 말하는 선비가 거의 없으니 어찌 통곡하지 않겠는가.
선사이신 최제우(崔濟愚)께서는 『주역』의 괘(卦)와 대정(大定)의 수(數)를 꿰뚫으시고, 삼대(三代)의 하늘을 공경하는 도리를 좋아하셨다. 선비들의 익힘을 살피시고 후학들의 망각을 두려워하셨고, 서학(西學)의 창궐을 미리 걱정하시어, 중국(中國)이 소멸하는 것을 탄식하셨으니,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릴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근본을 공고하게 하여 나라를 강녕하게 하겠다는 뜻을 이러한 세속의 흐름 속에서 이와 같이 정성스럽게 하셨다. 그러나 깊고 먼 이치를 알지 못하고 묘당(廟堂)은 그 이로움과 해로움의 크고 작음을 살피지 못하니 피고는 통곡하여 몸둘 데가 없을 뿐이다. 지금 당하고 있는 천하의 큰 어지러움은 반드시 사도(斯道)가 밝은가 밝지 않은가에 달려 있으니 천하의 안정과 근역(槿域)의 하나의 이치는 오히려 사도(斯道)가 크게 밝은 데에 달려 있다. 선사이신 최제우의 화결시(和訣詩)에 ‘부자(夫子, 공자)께서는 언제 나타나시는가[夫子登臨何時]’라는 시구(詩句)의 말은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피고는 비록 말하기를 오늘 형벌을 받고 죽는다. 그러나 이 또한 천명이다. 지난해에 선사이신 최시형(崔時亨)께서 도를 위해 죽던 날에 선사를 따라 의롭게 죽을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문도와 제자들이 안정이 되지 않았고, 도기(道機)도 아직 바르게 정해지지 않아 구차하게 살아남았다. 지금은 이 도기가 이미 정해졌다. 피고는 비록 죽더라도 그 도는 오히려 남아 있고 후인은 반드시 있을 터이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러나 성상폐하의 덕은 순(舜) 임금이나 우(禹) 임금보다 뛰어나시고, 공(功)은 탕왕(湯王)이나 무왕(武王)보다 뛰어 나시어, 사람을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으시니 마땅히 도적을 변화시켜 아비와 아들같이 만드실 것이다. 탐관오리들이 스스로 그 죄를 두려워하여 묘당(廟堂)에 거짓으로 보고하고 먼저 군대를 풀었으니 이것이 어찌 천리인가? 요(堯) 임금이 이르기를 ‘사해(四海)가 곤궁하면 하늘의 복록이 영원히 끊길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백성들을 사지(死地)로 몰아 죄를 줄 것인가? 백성들을 넘어뜨리고 말라죽게 죄를 줄 것인가? 청백(淸白)의 선비는 작록(爵祿)으로 얻을 수 없고, 절의(節義)의 선비는 형벌로 위협할 수 없다. 살리든 죽이든 이는 조가(朝家)의 처분에 달려 있으니, 또한 피고의 구차한 소망도 옳지 않다. 성상(聖上)의 천뢰(天雷)의 아래에 달게 법(法)을 받을 뿐이다.

경자년(1900년, 광무 4) 8월 24일에 피고 손천민 백.

이때 8월 25일 오후 1시에 송암(松菴)스승은 경성감옥서(京城監獄署)에서 교형(絞刑)을 받았다. 조용히 의로움으로 나아가 단호히 도(道)를 따라 목숨을 바치니, 이 해 나이 44세였다. 내다가 묻은 시체를 아들인 재근(在根)이 친족과 문도 여러 사람들이 수레에 싣고 청주(淸州)로 향하여 고향의 산소(山所)에 안장하였다.
이 해 12월 5일에 동학(東學)을 혐오한다고 지목함이 날로 심해졌다. 평북영변관찰사(平北寧邊觀察使)이도재(李道宰)가 동학의 접주 강성택(康聖澤)을 포형(砲刑)을 받게 하여 참살하였다. 황해도 해주진위대(海州鎭衛隊)의 참령(參領) 오덕삼(吳德三)은 병정 200명을 거느리고 문화(文化)의 구월산(九月山)에 있는 동학을 토벌할 때 접주 정종혁(鄭宗赫)과 붙잡힌 도인(道人) 수십 명을 묶어놓고 악형(惡刑)을 가하였다. 동시에 송화군수(松禾郡守) 장기협(張箕冾)은 병정과 본군의 관예(官隷) 배를 파송하였다. 접주 강필도(康弼道)는 미리 피신하였으나 도유(道儒)인 이인순(李仁淳)・강선창(康善昌)과 강필도의 친아버지 치황(致璜) 및 처자들은 잡혀서 본군 감옥에 갇혀 고문을 받으며 칼[枷]을 차고 갇혀 있었다. 한달 남짓의 악형(惡刑)을 받는 통에 뇌물로 돈 3천량을 주고 풀려났다.
평남(平南) 중화(中和)의 도유(道儒) 김영학(金永學)・김광찬(金廣燦)은 고을 수령이 관예들을 파송하자 잡혀서 한달 남짓 칼을 차고 갇혔다가 풀려났다. 이때 전주관찰사 김문현(金文鉉)은 동학을 혐오한다고 가리키는 것이 날로 심해지자 각 처의 도유 수십 여명을 칼을 채우고 엄하게 가두어 지독한 형벌을 가해 죽은 사람이 다수였다. 그 때의 비참한 형상은 다 기록할 수가 없다.
이때 김연국(金演局)・손병희(孫秉熙)는 호서(湖西)에서 숨어 있으면서 몰래 소식을 통하고 있었다. 이용구(李容九, 일명 萬植)는 병신년(1896년, 건양 1)부터 서북의 황해도와 평안도 함경도의 세 도에서 도를 전하였다. 4, 5년 사이에 각 도(道)에 있는 각 포(包)의 도유(道儒)는 합쳐서 많게는 5십 여 만명이 되었다.
이 해 6월 2일에 김연국은 양구군(楊口郡) 사명산(四明山)으로 옮겨서 거처하였다. 바야흐로 해월 선사의 향례식(享禮式)을 봉행할 때에 공주진위대(公州鎭衛隊) 중대장(中隊長)이민직(李敏稷)이 병정을 거느리고 왔다. 이에 김연국은 체포되고, 김일서(金一西)・최명기(崔鳴基)・강건회(姜建會) 등도 또한 같이 잡혔다. 김연국은 이에 경성(京城)의 감옥에서 종신역의 벌을 받았다.

각세진경[覺世眞經]

1900년(명치 33년) 신축년 가을 구월 해산(海山)이용구(李容九) 선생의 각세진경(覺世眞經)은 다음과 같다.

높기는 하늘보다 높은 것이 없고, 두텁기는 땅만한 것이 없고, 낮기는 사람보다 낮은 것이 없다. 사람이 하늘을 모시는 것은 어찌해서인가. 물(物)에는 이러한 성(性)이 있고, 물(物)에는 이러한 마음이 있는데 하늘에서 나오기 때문에 모신다고 이르는 것이다. 성과 마음이 하늘에서 나오는 것은 어찌해서인가. 음(陰)과 양(陽)이 덕(德)을 합쳐 체(體)에 구현되는 것을 성(性)이라고 한다. 밖으로는 영(靈)과 접하고, 안으로는 강화(降話)를 마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높다고 하늘이 아니고 두텁다고 땅이 아니다. 높음은 두터움에 의지하고, 두터움은 높음에 의지한다. 낮음이 그 사이에 도달하여 위로는 높고 밝은 덕을 받고, 아래로는 넓고 두터운 은혜를 싣는다. 삼재(三才)의 물(物)은 모두 하나의 물(物)이다.
성(性)이란 무엇인가. 오행(五行)의 정체(精體)이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들리는 듯하고 보이지 않는 혼원(渾元)의 영(靈)이다. 영(靈)이란 무엇인가. 허령(虛靈)하고 창창(蒼蒼)하여 물(物)에 남음이 있지 않다. 때에 그렇지 않음이 없고,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일어서면 일어서고, 밝히면 밝게 되고, 어두우면 어둡게 되고, 변(變)하면 변하게 되고, 화(化)하면 화하게 된다. 그 덕(德)이 되어 만물을 실어 날마다 쓰고 하는 일에 참량(參量)하는 이(理)이다. 오행(五行)이란 무엇인가. 이(理)의 정체(精體)이다. 기(氣)란 무엇인가. 이(理)의 정령(精靈)인데, 가볍게 발하는 수의(秀儀)이다. 이(理)란 무엇인가. 하나의 덩어리이다. 덩어리란 무엇인가. 시작이 있지 않음이다. 정(精)이란 무엇인가. 체(體)의 지령(至靈)이다. 음양(陰陽)이란 무엇인가. 처음에 하나의 물(物)이 있는 것이다. 물(物)이란 하나의 덩어리이다. 덩어리란 무극(無極)이다. 오직 처음 나눔[分]이 있다. 무극(无極)이 태극(太極)을 생기게 한다. 무극은 음(陰)이고, 태극은 양(陽)이다. 그것이 위와 아래로 나뉘면 위와 아래 또한 이러한 음양이다. 그것이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면 동쪽과 서쪽 또한 음양이다. 때에는 추위와 더위가 있는데, 추위와 더위 또한 이러한 음양이다. 때에는 밤과 낮이 있는데, 밤과 낮 또한 음양이다. 그 본원을 살펴보면 천지(天地)와 귀신(鬼神)과 변화(變化)의 이(理)가 모두 이러한 음양이다.
강화(降話)란 무엇인가. 강(降)이란 접령(接靈)의 이(理)이다. 화(話)란 사람들이 귀신의 령(靈)에서 받지 않음이 없는데, 웃을 수 있고 마주 대할 수 있는 것이 강화(降話)의 가르침이 아닌 것이 없다. 접령(接靈)이란 무엇인가. 그 모양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발(發)하여 뼈와 살 속으로 들어와 그 귀와 눈에 응하여 들리고 보이게 하여 하늘과 사람이 말로써 서로 들으니 생각은 오직 한 가지로 만사가 능통하게 된다.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어찌 감히 하늘의 말을 정확하게 알겠는가. 마음을 지키고 기(氣)를 바르게 하여 성현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늘의 말을 정확히 들을 수 있고 교화(敎化)의 덕(德)에 어긋나지 않는다. 귀신(鬼神)이란 무엇인가. 천지(天地)로 논하면 음(陰)은 귀(鬼)이고, 양(陽)은 신(神)이다. 성심(性心)으로 논하면 성(性)은 귀(鬼)이고, 심(心)은 신(神)이다. 굴신(屈伸)으로 논하면 굴(屈)은 귀(鬼)이고, 신(伸)은 신(神)이다. 동정(動靜)으로 논하면 동(動)은 신(神)이고, 정(靜)은 귀(鬼)이다. 통섭하여 논하면 기(氣)는 이(理)에 포섭되고, 이(理)는 기(氣)에 품부(稟賦)되어 의지함도 없고 섬[立]도 없이 둥근 것이다. 섬[立]이 없이 둥근 데 방향이 있으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어찌해서인가. 오랫동안 배[舟]안에 누워서 가면 그 방향을 모르는 것이다. 아아! 창생(蒼生)들아. 살면서도 그 삶을 모르고, 가면서도 그 감[行]을 모르고, 먹으면서도 그 먹음[食]을 모르니, 어찌 홀로 두렵지 않겠느냐.

우음[偶吟]

달이 푸른 강물 속을 비추니
거꾸로 비친 하늘 미워할 틈이 없다
물고기가 밝은 달빛을 삼키니
물고기 뱃속에서 천지가 밝구나
누가 천지가 넓다고 했던가
항상 이처럼 마음 위의 밝음이로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세상의 일이고
차고 기움은 천지의 도(道)로구나

고요한 가운데 무형(無形)의 밖을 다할 수 있고
움직이는 곳에 귀신(鬼神)의 자취를 알 수 있도다
영(靈)은 천지보다 더할 것이 없지만
인생(人生)이 아니면 신령스럽지 않고
밝음은 일월보다 더한 것이 없지만
이목(耳目)이 아니면 밝지 않게 된다.
가만히 앉아서 강산도(江山圖)를 보면
묵묵히 뱃속에서 생기노라

사람에게 있는 세 가지 어려움[人有三難]

사람에게는 상하(上下)가 있다. 위[上]도 어렵고, 아래[下]도 어렵다. 위에 있으면서는 두루 조절하기가 어렵고, 아래에 있으면서는 견뎌내기가 어렵다.
사람에게는 빈부(貧富)가 있다. 가난[貧]도 어렵고, 부자[富]도 어렵다. 부자로 살면서는 욕심을 그치기가 어렵고, 가난하게 살면서는 근검하기가 어렵다.
사람에게는 사생(死生)이 있다. 죽음[死]도 어렵고, 삶[生]도 어렵다. 살면서는 뜻을 기르기가 어렵고, 죽음에 임해서는 마음을 지키기가 어렵다.

이 해 신축년(1901년, 광무 5) 3월에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는 몸을 피해 일본의 도쿄(東京)로 가서 성명을 바꾸어 이상헌(李祥憲)이라 하였다. 여러 동지들과 의논하던 중에 밖의 기미를 보고 이름을 부르면서, 도쿄(東京)에서 머물면서 유람을 하였다.

우음[偶吟]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내 마음은 영원히 모심[侍]이고
옮기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는 대도[大道]는 처음으로 밝구나
무엇을 알고 무엇을 아는지 무궁하고 무궁하다
하늘은 반드시 감응하리니, 정성을 다한 한 조각의 마음에
하나로 꿰는 도(道)는 부자(夫子, 공자)의 성덕(聖德)이고
공계(空界)로 보내는 마음은 석씨(釋氏, 부처)의 도통(道通)이다
모양 없고 자취 있음은 내 도의 조화(造化)인데
하늘을 모시고 하늘을 받들어 영세토록 뜻을 지키리

주석
『맹자(孟子)』 「진심(盡心)」 상(上), 제42장.
공자의 제자 안행(顔幸)을 말함. 자(字)가 자류(子柳)이다.
공자의 제자 원헌(原憲)을 말함. 송(宋)나라 사람이고, 자는 자사(子思)이다.
『맹자(孟子)』 「이루(離婁)」 상(上), 제9장.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
이 페이지에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는 재단이 되겠습니다.

56149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 TEL. 063-530-9400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문화체육관광부 전라북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