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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이준용 공초 李埈鎔供草
  • 기사명
    개국 504년 을미(乙未), 1895년 3월 27일 죄인 고종주의 2차 문목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음력 1895년 03월 27일
일러두기

개국 504년 을미(乙未), 1895년 3월 27일 죄인 고종주의 2차 문목 [開國 五百四年 乙未年 三月 二十七日 罪人 高宗柱 再次 問目]

문(問) : 지난해 6월 이후부터 올해 1월 이전까지 이준용(李埈鎔)과 몇 차례 만났는가?

공(供) : 6월 이후부터 7월 5일까지 매일 만났고, 그 뒤에는 1달에 3~4차례 만났습니다.

문(問) : 운현궁의 큰사랑에서 4차례 글이 왕래할 때, 애초에 이준용과 한 마디의 말도 한 적이 없는가?

공(供) : 없습니다.

문(問) : 정녕코 없었는가?

공(供) : 정녕코 없습니다.

문(問) : 이밖에도 의논할 만한 다른 일이 없었는가?

공(供) : 없었습니다.

문(問) : 이준용이 혹시 너에게 은밀히 의논한 것이 없는가?

공(供) : 없습니다.

문(問) : 너는 교리(校理) 고운정(高雲亻政)을 아는가?

공(供) : 알고 있습니다.

문(問) : 어떻게 그를 아는가?

공(供) : 제 자식이 창방(唱榜)할 때에 영문(榮問)하러 왔기 때문에 그를 알았습니다.

문(問) : 너는 고운정과 친숙한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고운정은 어디에 살고 있는가?

공(供) : 고향집은 영평(永平)이고, 경성 집은 용동(龍洞)입니다.

문(問) : 너는 고운정과 자주 왕래를 하였는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어찌하여 자주 왕래를 했는가?

공(供) : 같은 종씨(宗氏)이기 때문입니다.

문(問) : 고운정은 이준용과 친숙한가?

공(供) : 그의 아버지가 운현궁에서 출세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집안과 친숙하였습니다.

문(問) : 고운정이 자주 운현궁에 왕래하였는가?

공(供) : 6월 이전에는 왕래하지 않았으나 6월 이후에는 하루 걸러 왕래하였다고 합니다.

문(問) : 그렇다면 고운정은 그 집안의 3곳 사랑 중에 어느 곳과 가장 친숙했는가?

공(供) : 가운데 사랑과 가장 친했습니다.

문(問) : 고운정의 나이는 얼마인가?

공(供) : 47~48세쯤입니다.

문(問) : 6월 이후부터 9월과 10월 사이까지 이준용의 사랑에서 고운정과 만난 일이 없었는가?

공(供) : 간혹 그 사랑에서 만난 적도 있습니다.

문(問) : 그 사이에 이준용이 혹시 너와 동비(東匪)를 의논한 일이 없었는가?

공(供) : 그런 일이 없습니다.

문(問) : 그 사이에 너는 이준용과 혹시 한가롭게 말을 할 때에 국사(國事)를 근심하며 탄식한 일이 없었는가?

공(供) : 없습니다.

문(問) : 이준용이 혹시 너에게 호남에 가도록 권유한 일이 없었는가?

공(供) :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문(問) : 그 일은 무슨 일인가?

공(供) : 동학(東學)을 불러오는 일이었습니다.

문(問) : 너는 그것을 허락했는가?

공(供) :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문(問) : 어찌하여 허락하지 않았는가?

공(供) : 동도(東徒)라고 하는 자는 모두 역민(逆民)입니다. 제가 비록 볼품이 없으나 어찌 이런 일을 기꺼이 하겠습니까?

문(問) : 이준용이 너에게 동도(東徒)를 불러 오게 한 것은 무슨 주견(主見)이 있었는가?

공(供) : 쓸 곳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어디에 쓴다고 했는가?

공(供) : 나랏일에 쓴다고 했을 뿐입니다.

문(問) : 어찌 꼭 동도(東徒)여야만 나랏일에 쓸 수가 있는가?

공(供) : 제가 이 일에 매우 의아스러워서 상세하게 물으려고 할 때에 마침 손님이 와서 그 자리가 번잡한 것을 꺼려 바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단 이 얘기를 들은 뒤에 기미의 소재(所在)를 알아보려고 가운데 사랑에 가는 날에 반드시 이준용이 있는 사랑에 꼭 갔습니다. 다시 어느 날에 그것을 물으려고 할 때에도 자리에 사람이 많았습니다. 〈제가 말하기를〉 “분명한 단서에다가 형세가 이와 같다면 크게 쓰일 사람도 반드시 저에게 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의 입장에서 어찌 그 상세함을 묻지 않고 일을 소홀히 하겠습니까”라고 하니, 준용이 말하기를, “형세가 이와 같다면 박준양(朴準陽)을 영상(領相), 영의정으로, 이태용(李泰容)과 이름을 모르는 김아무개를 좌상(左相)과 우상(右相)으로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크게 쓰일 사람이 이 3명에 그쳤는가?

공(供) : 제가 묻기를, “그렇다면 고운정은 무슨 직책입니까” 라고 하였더니, 대답하기를, “금백(錦伯), 충청 감사과 영백(嶺伯), 경상 감사 중에 하나를 삼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너는 무슨 직책을 준다고 하였는가?

공(供) : 완백(完伯), 전라 감사을 제수한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들어서 쓸 사람이 비록 이와 같더라도 그 사이에 〈변고에〉 대비하는 일은 어떻게 한다고 하였는가?

문(問) : 그 때에 제가 〈변고에〉 대비할 일을 듣기를 바랐더니, 준용이 말하기를, “그대가 3남(三南)에 가서 동도(東徒)를 불러모아 금강(錦江)가에 오면 성세(聲勢)가 매우 대단하여 그것을 듣고 크게 놀랄 것이다. 내가 그 사이에 출전할 직함을 얻어 데리고 있는 군병과 몇 백명의 역사(力士)를 인솔해서 혹은 과천(果川)과 수원(水原) 사이에 개부(開府)를 하고 비류(匪類)를 성토하며 일을 도모하여 그들과 합세해서 군대를 돌려 바로 도성에 이르러 몰아낼 거사를 치룰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준용의 말이 이와 같다면 너는 무슨 말로 대답을 했는가?

공(供) : 저는 대답하기를, “저의 재능은 이런 일을 도모하는 데에 미치지 못하니 다른 사람을 선택하여 보내십시오”라고 하고, 그대로 관소(館所)로 돌아왔습니다.

문(問) : 네가 이렇게 대답한 뒤에 준용의 행동은 어떠하였는가?

공(供) : 준용이 저의 말을 일단 듣고 나서 아무 말이 없고 얼굴빛이 흙빛처럼 되었습니다.

문(問) : 이준용이 동도 가운데 호서(湖西)와 영남의 비도를 불러오려고 했는가? 호남의 비도를 불러오려고 했는가? 3남(三南)의 비도를 모두 불러오려고 했는가?

공(供) : 이준용이 저에게 불러오도록 권한 자들은 호서와 영남의 비도가 아니라 단지 호남의 비도였습니다.

문(問) : 무슨 이유로 호남의 비도만 불러오게 했는가?

공(供) : 제가 호남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문(問) : 그렇다면 준용이 비도(匪徒)의 우두머리를 부르려고 했는데, 누구인가?

공(供) : 지목한 사람이 없습니다.

문(問) : 동도를 불러오도록 권할 때에 믿을만한 필적을 내어준다는 얘기는 없었는가?

공(供) : 그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문(問) : 믿을만한 필적은 누구를 말하는가?

공(供) : 준용이 말하기를, “네가 나의 부탁을 허락한다면 노대감(老大監), 흥선대원군에게 말씀을 드려 믿을만한 필적을 얻어 주어서 동도(東徒)를 불러모으는 데 용이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네가 준용에게 들은 것이 이것 뿐인가?

공(供) : 제가 들은 것은 이것 뿐입니다. 자세히 알려고 한다면 김국선(金國善)이 있습니다.

문(問) : 김국선은 그 내면을 자세히 아는가?

공(供) : 경무청(警務廳)에서 처음 신문할 때에 이 얘기가 저의 1차 공초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김국선에게서 나와 저에게 왔으니 혹시 국선이 알고 있는 것이 반드시 저보다 많을 것입니다.

문(問) : 네가 준용과 함께 이렇게 수작(酬酌)한 시기는 정확히 언제인가?

공(供) : 10월 초에서 20일쯤의 일입니다.

문(問) : 위에서 말한 이준용의 이치에 어긋나는 얘기는 정확히 언제 들었는가?

공(供) : 10월 4일 아침 〈식사〉 전입니다.

사룀

재판소(裁判所)

협판(協辦) 이재정(李在正)

참의(參議) 장박(張博)

주사(主事) 기동연(奇東衍)

주사(主事) 이희덕(李熙悳)

주사(主事) 정훈교(鄭勳敎)

주석
영문(榮問) 과거에 합격한 사람을 찾아가서 축하하는 일을 말한다.
역민(逆民) 반역을 하는 백성
개부(開府) 관아를 설치하고 속관을 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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