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問) : 지난해 6월 이후부터 올해 1월 이전까지 이준용(李埈鎔)과 몇 차례 만났는가?
공(供) : 6월 이후부터 7월 5일까지 매일 만났고, 그 뒤에는 1달에 3~4차례 만났습니다.
문(問) : 운현궁의 큰사랑에서 4차례 글이 왕래할 때, 애초에 이준용과 한 마디의 말도 한 적이 없는가?
공(供) : 없습니다.
문(問) : 정녕코 없었는가?
공(供) : 정녕코 없습니다.
문(問) : 이밖에도 의논할 만한 다른 일이 없었는가?
공(供) : 없었습니다.
문(問) : 이준용이 혹시 너에게 은밀히 의논한 것이 없는가?
공(供) : 없습니다.
문(問) : 너는 교리(校理) 고운정(高雲亻政)을 아는가?
공(供) : 알고 있습니다.
문(問) : 어떻게 그를 아는가?
공(供) : 제 자식이 창방(唱榜)할 때에 영문(榮問)하러 왔기 때문에 그를 알았습니다.
문(問) : 너는 고운정과 친숙한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고운정은 어디에 살고 있는가?
공(供) : 고향집은 영평(永平)이고, 경성 집은 용동(龍洞)입니다.
문(問) : 너는 고운정과 자주 왕래를 하였는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어찌하여 자주 왕래를 했는가?
공(供) : 같은 종씨(宗氏)이기 때문입니다.
문(問) : 고운정은 이준용과 친숙한가?
공(供) : 그의 아버지가 운현궁에서 출세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집안과 친숙하였습니다.
문(問) : 고운정이 자주 운현궁에 왕래하였는가?
공(供) : 6월 이전에는 왕래하지 않았으나 6월 이후에는 하루 걸러 왕래하였다고 합니다.
문(問) : 그렇다면 고운정은 그 집안의 3곳 사랑 중에 어느 곳과 가장 친숙했는가?
공(供) : 가운데 사랑과 가장 친했습니다.
문(問) : 고운정의 나이는 얼마인가?
공(供) : 47~48세쯤입니다.
문(問) : 6월 이후부터 9월과 10월 사이까지 이준용의 사랑에서 고운정과 만난 일이 없었는가?
공(供) : 간혹 그 사랑에서 만난 적도 있습니다.
문(問) : 그 사이에 이준용이 혹시 너와 동비(東匪)를 의논한 일이 없었는가?
공(供) : 그런 일이 없습니다.
문(問) : 그 사이에 너는 이준용과 혹시 한가롭게 말을 할 때에 국사(國事)를 근심하며 탄식한 일이 없었는가?
공(供) : 없습니다.
문(問) : 이준용이 혹시 너에게 호남에 가도록 권유한 일이 없었는가?
공(供) :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문(問) : 그 일은 무슨 일인가?
공(供) : 동학(東學)을 불러오는 일이었습니다.
문(問) : 너는 그것을 허락했는가?
공(供) :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문(問) : 어찌하여 허락하지 않았는가?
공(供) : 동도(東徒)라고 하는 자는 모두 역민(逆民)입니다. 제가 비록 볼품이 없으나 어찌 이런 일을 기꺼이 하겠습니까?
문(問) : 이준용이 너에게 동도(東徒)를 불러 오게 한 것은 무슨 주견(主見)이 있었는가?
공(供) : 쓸 곳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어디에 쓴다고 했는가?
공(供) : 나랏일에 쓴다고 했을 뿐입니다.
문(問) : 어찌 꼭 동도(東徒)여야만 나랏일에 쓸 수가 있는가?
공(供) : 제가 이 일에 매우 의아스러워서 상세하게 물으려고 할 때에 마침 손님이 와서 그 자리가 번잡한 것을 꺼려 바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단 이 얘기를 들은 뒤에 기미의 소재(所在)를 알아보려고 가운데 사랑에 가는 날에 반드시 이준용이 있는 사랑에 꼭 갔습니다. 다시 어느 날에 그것을 물으려고 할 때에도 자리에 사람이 많았습니다. 〈제가 말하기를〉 “분명한 단서에다가 형세가 이와 같다면 크게 쓰일 사람도 반드시 저에게 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의 입장에서 어찌 그 상세함을 묻지 않고 일을 소홀히 하겠습니까”라고 하니, 준용이 말하기를, “형세가 이와 같다면 박준양(朴準陽)을 영상(領相), 영의정으로, 이태용(李泰容)과 이름을 모르는 김아무개를 좌상(左相)과 우상(右相)으로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크게 쓰일 사람이 이 3명에 그쳤는가?
공(供) : 제가 묻기를, “그렇다면 고운정은 무슨 직책입니까” 라고 하였더니, 대답하기를, “금백(錦伯), 충청 감사과 영백(嶺伯), 경상 감사 중에 하나를 삼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너는 무슨 직책을 준다고 하였는가?
공(供) : 완백(完伯), 전라 감사을 제수한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들어서 쓸 사람이 비록 이와 같더라도 그 사이에 〈변고에〉 대비하는 일은 어떻게 한다고 하였는가?
문(問) : 그 때에 제가 〈변고에〉 대비할 일을 듣기를 바랐더니, 준용이 말하기를, “그대가 3남(三南)에 가서 동도(東徒)를 불러모아 금강(錦江)가에 오면 성세(聲勢)가 매우 대단하여 그것을 듣고 크게 놀랄 것이다. 내가 그 사이에 출전할 직함을 얻어 데리고 있는 군병과 몇 백명의 역사(力士)를 인솔해서 혹은 과천(果川)과 수원(水原) 사이에 개부(開府)를 하고 비류(匪類)를 성토하며 일을 도모하여 그들과 합세해서 군대를 돌려 바로 도성에 이르러 몰아낼 거사를 치룰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준용의 말이 이와 같다면 너는 무슨 말로 대답을 했는가?
공(供) : 저는 대답하기를, “저의 재능은 이런 일을 도모하는 데에 미치지 못하니 다른 사람을 선택하여 보내십시오”라고 하고, 그대로 관소(館所)로 돌아왔습니다.
문(問) : 네가 이렇게 대답한 뒤에 준용의 행동은 어떠하였는가?
공(供) : 준용이 저의 말을 일단 듣고 나서 아무 말이 없고 얼굴빛이 흙빛처럼 되었습니다.
문(問) : 이준용이 동도 가운데 호서(湖西)와 영남의 비도를 불러오려고 했는가? 호남의 비도를 불러오려고 했는가? 3남(三南)의 비도를 모두 불러오려고 했는가?
공(供) : 이준용이 저에게 불러오도록 권한 자들은 호서와 영남의 비도가 아니라 단지 호남의 비도였습니다.
문(問) : 무슨 이유로 호남의 비도만 불러오게 했는가?
공(供) : 제가 호남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문(問) : 그렇다면 준용이 비도(匪徒)의 우두머리를 부르려고 했는데, 누구인가?
공(供) : 지목한 사람이 없습니다.
문(問) : 동도를 불러오도록 권할 때에 믿을만한 필적을 내어준다는 얘기는 없었는가?
공(供) : 그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문(問) : 믿을만한 필적은 누구를 말하는가?
공(供) : 준용이 말하기를, “네가 나의 부탁을 허락한다면 노대감(老大監), 흥선대원군에게 말씀을 드려 믿을만한 필적을 얻어 주어서 동도(東徒)를 불러모으는 데 용이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네가 준용에게 들은 것이 이것 뿐인가?
공(供) : 제가 들은 것은 이것 뿐입니다. 자세히 알려고 한다면 김국선(金國善)이 있습니다.
문(問) : 김국선은 그 내면을 자세히 아는가?
공(供) : 경무청(警務廳)에서 처음 신문할 때에 이 얘기가 저의 1차 공초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김국선에게서 나와 저에게 왔으니 혹시 국선이 알고 있는 것이 반드시 저보다 많을 것입니다.
문(問) : 네가 준용과 함께 이렇게 수작(酬酌)한 시기는 정확히 언제인가?
공(供) : 10월 초에서 20일쯤의 일입니다.
문(問) : 위에서 말한 이준용의 이치에 어긋나는 얘기는 정확히 언제 들었는가?
공(供) : 10월 4일 아침 〈식사〉 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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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소(裁判所)
협판(協辦) 이재정(李在正)
참의(參議) 장박(張博)
주사(主事) 기동연(奇東衍)
주사(主事) 이희덕(李熙悳)
주사(主事) 정훈교(鄭勳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