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問) : 송희옥(宋喜玉)의 글 중에 이른 바 운변(雲邊)의 비밀(秘密) 기별(奇別)의 허실(虛實)을 너는 무엇으로써 적확(的確)히 아느냐?
공(供) : 송(宋)은 본디 부랑(浮浪)하기 때문에 미루어 보아 말했던 것이요, 또 설사 운변(雲邊)에서 혹시라도 이러한 일이 있으면 마땅히 이 몸에게 먼저 알렸을 것이니, 송(宋)에게 먼저 준 것은 마땅치 않음이외다.
문(問) : 송(宋)이 너에게 수하(手下)이냐, 수상(手上)이냐?
공(供) : 별로 상하(上下)를 가히 칭할 것은 없으며 다른 것이 없이 곧 제등(齊等)한 사람이외다.
문(問) : 송(宋)이 다시 봉기할 때에 더불어 상의(商議)하지 않았느냐?
공(供) : 이 몸이 기포(起包)할 때에 비록 더러 참석(參席)하였으나 처음에는 좌(左)도 가하고 우(右)도 가하다는 말이었음이외다.
문(問) : 송(宋)이 이 일에 만약 좌(左)가 가(可)하거나 우(右)가 가(可)하다는 말이 없었다면 거짓으로 운변(雲邊)의 비밀(秘密) 기별(奇別)을 칭하여 다른 사람에 글을 보낸 것은 무슨 까닭이냐?
공(供) : 송(宋)이 어떤 사람에게 글을 보내고 처음에 한 포(包)를 일으킨 것은 비록 거슬러 헤아리기 어렵지만, 이 몸의 일에는 방관(傍觀)했을 뿐입니다.
문(問) : 송(宋)과 네가 이미 같은 포(包)가 아니라면 피차(彼此) 행한 일을 반드시 서로 알지 못할 단서(端緖)가 있을 것이다.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그렇다면 송(宋)이 거짓으로 비밀(秘密) 기별(奇別)이라고 칭한 것을 네가 어찌 능히 밝게 알고 있느냐?
공(供) : 송(宋)은 처음부터 서울에 머문 일이 없었으며 또한 저명(著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헤아려 말함이외다.
문(問) : 전후(前後)의 공술(供述)한 바를 합하여 보면 송(宋)은 너에게 본디 서로 친한 자인데, 지난번에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은 또한 하나의 가히 의심할만한 것이로다.
공(供) : 지난번 귀관(貴館)에서 공술(供述)을 드릴 때 보여준 글은 부랑(浮浪)한 자들과 관계있는 것 같았고, 또한 알지 못하는 바였습니다. 따라서 만약 아는 자에게 보이라고 대답하면 반드시 그 글의 내력(來歷)을 물어보아도 의혹(疑惑)을 분별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잠시 거짓으로 고했을 뿐입니다.
문(問) : 그렇다면 너에게 이로운 것을 물어보면 대답하고 너에게 해로운 것을 물어보면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는 것이 가(可)하냐?
공(供) : 이해(利害)로써 마음을 삼은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연으로 의혹(疑惑)을 분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러함이외다.
문(問) : 전라도(全羅道) 사람들은 반복무상(反覆無常)하다고 항상 일찍이 얻어 들은 바가 있는데, 지금 네가 고한 것은 또한 이러한 상투(常套)를 답습(踏襲)하고 있다. 그러하나 질문(質問)이 이미 오래되었고 정상(情狀)이 스스로 드러났으니 비록 일언반사(一言半辭)라도 반드시 거짓으로 고할 수는 없음이리라.
공(供) : 송희옥(宋喜玉)의 한 가지 일은 비록 거짓으로 고하였으나 그 나머지는 처음부터 한 조각의 말이라도 거짓을 꾸밈이 없음이외다.
문(問) : 지금 이 재판(裁判)은 양국(兩國)의 심판(審判)이 걸려 있어서 반드시 조금이라도 편벽(偏僻)되게 들어서 처리함이 없었다. 그러하나 감히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만들어내어 한 때를 넘겨 속이고자 한다면 탐관(貪官)을 징치(懲治)하고 간교(奸巧)한 자를 출척(黜陟)한다는 말은 모두 가히 믿을 것이 아닐 뿐이다.
공(供) : 수개월 동안 잡혀 있었고 병(病) 또한 몸을 묶어서 한 마디 말의 실수한 바가 없지 않았음이외다.
문(問) : 송(宋)은 너에게 척족(戚族) 친분이 없느냐?
공(供) : 처족(妻族) 7촌(寸)이외다.
문(問) : 기포(起包)할 때 처음 어느 곳에서 보았느냐?
공(供) : 비록 처음 삼례(參禮)에서 보았지만 실제로 포(包)를 같이 한 일은 없음이외다.
문(問) : 처음 보았을 때에 무슨 의논을 한 일이 있느냐?
공(供) : 처음 보았을 때에 이르기를 이는 가히 행할 일이니 너 또한 추후(追後)에 기포(起包)하여 위로 올라가라고 말함이러이다.
문(問) : 그 때는 어느 때오?
공(供) : 작년(昨年) 10월 다시 기포(起包)할 때이며 날짜는 상세히 알지 않음이외다.
문(問) : 네가 다시 기포(起包)한 것은 무슨 일을 위함이오?
공(供) : 지난 번 고한 바에 이미 모두 하였나이다.
문(問) : 너가 송(宋)과 더불어 삼례(參禮)에서 서로 보았을 때에 혹시 운현(雲峴)의 말을 칭탁(稱託)함이 없었느냐?
공(供) : 송(宋)이 칭하기로 지난 번 운변(雲邊)으로부터 내려와서 2월에 속히 위로 올라오는 것이 좋을듯하다는 말을 가르침으로 삼았다고 하였기 때문에 이 몸이 서자(書字)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몸이 문자(文字)를 보여주지 않음을 책망(責望)하였는데 횡설수설(橫說竪說)함은 실로 황당(荒唐)에 가까웠습니다. 또 운현궁(雲峴宮)을 가르침으로 삼았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고, 마땅히 행할 일은 내가 스스로 감당한다고 하였나이다.
문(問) : 삼례(參禮) 기포(起包)의 무리는 몇이었느냐?
공(供) : 4,000여 명이외다.
문(問) : 그 뒤 접전(接戰)은 어느 날에 있었는고?
공(供) : 삼례(參禮)로부터 출발한 뒤 20여 일에 처음 접전(接戰)함이외다.
문(問) : 송(宋)이 말한 운현궁(雲峴宮)으로부터 내려왔다는 두 사람의 성명(姓名)은 누구오?
공(供) : 그 때는 얻어 들어 알았으나 지금은 기억하기 어려움이외다.
문(問) : 두 사람의 성명(姓名)은 비록 갖추어 듣지 못했지만 성이나 이름 사이에 끝내 가히 기억할 수 없느냐?
공(供) : 그 성(姓)은 박(朴)이나 정(鄭) 같으나 아직 상세히 알지 않을 뿐입니다.
문(問) : 박(朴)과 정(鄭)이라면 박동진(朴東鎭)과 정인덕(鄭寅德)이 아니냐?
공(供) : 박동진(朴東鎭)은 분명(分明)하나 정(鄭)은 아직 상세히 알지 않음이외다.
문(問) : 박(朴)과 정(鄭)이 송(宋)을 만나서 무슨 말이 있었다고 말하였는고?
공(供) : 송(宋)이 칭하기를 운현궁(雲峴宮)을 또한 네가 올라오기를 기다린다고 하더이다.
문(問) : 송희옥(宋喜玉)은 지금 어느 곳에 있노?
공(供) : 금번(今番) 올라올 때에 들으니, 고산(高山) 민병(民兵)에게 죽었다고 하였으나 상세히 알지 않음이외다.
문(問) : 운현궁(雲峴宮)의 효유문(曉喩文)은 어찌 얻어 보았는고?
공(供) : 9월 태인(泰仁) 본집에 있을 때에 접솔(接率) 한 사람이 베껴 와서 보여줌이외다.
문(問) : 그 때 한창 세력을 뻗어 기포(起包)하였느냐?
공(供) : 그 때는 집에서 병을 치료하였는데 기포(起包)에 뜻이 없음이외다.
문(問) : 그 도(道) 안에 동도(東徒)의 자요(滋擾)가 없었느냐?
공(供) : 그 때는 김개남(金開男) 등이 여러 고을에서 소요(騷擾)를 일으킴이외다.
문(問) : 여러 고을은 어느 고을인고?
공(供) : 순창(淳昌), 용담(龍潭), 금산(錦山), 장수(長水), 남원(南原) 등이며 그 나머지는 상세히 알지 않음이외다.
문(問) : 대원군(大院君)의 효유문(曉喩文)은 단지 한 차례 보았느냐?
공(供) : 그러함입니다.
문(問) : 효유문(曉喩文)은 무슨 말로 꾸며져 있었노?
공(供) : “너희들이 지금 소란을 일으킨 것은 실로 수재(守宰)의 탐학(貪虐)과 중민(衆民)의 원통(寃痛)함에서 말미암은 것이니 지금 이후에는 관(官)의 탐학(貪虐)을 반드시 징치(懲治)하고 중민(衆民)의 원통(寃痛)함을 반드시 펴 줄 것이니 각자 돌아가 생업을 편안히 하는 것이 가(可)할 것이며 만약 따르지 않으면 마땅히 왕법(王法)으로 다스릴 것이다”라고 말함이러이다.
문(問) : 효유문(曉喩文)에 도장의 자취가 있었느냐?
공(供) : 이 몸이 본 바는 베낀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없었으나 관(官)에 도착한 원본(原本)에는 그것이 있었다고 하였고 방방곡곡(坊坊曲曲)에 붙여 내걸음이러이다.
문(問) : 방방곡곡에 내걸어 붙였다면 이는 누구의 행함이오?
공(供) : 관(官)으로부터 한 것이라 함이러이다.
문(問) : 효유문(曉喩文)은 누가 가지고 갔는고?
공(供) : 주사(主事)의 직함을 지닌 자가 가지고 갔다함이러이다.
문(問) : 그때 효유문(曉喩文)을 네가 보니 진짜더냐, 가짜더냐?
공(供) : 이미 관(官)에서 내걸어 붙였으니 어찌 이를 가짜로써 볼 것이오?
문(問) : 네가 이미 진짜로써 보았다면 어찌 다시 봉기를 일으켰느냐?
공(供) : 귀국(貴國)의 속내를 상세히 알아보고자 그러함이외다.
문(問) : 이미 속내를 상세히 알아본 뒤에는 장차 무슨 일을 행할 계획이었노?
공(供) :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계획을 행하고자 함이외다.
문(問) : 네가 봉기를 다시 일으킨 것은 대원군(大院君)의 효유문(曉喩文)을 믿지 못해서이냐?
공(供) : 이 전에 묘당(廟堂)의 효유문(曉喩文)이 한둘에 그치지 않았으나 끝내 실시되지 않아서 아래의 실정이 위에 도달하기 어려웠고 위의 은택(恩澤)이 아래에까지 다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기어코 일차(一次)로 서울에 이르러 민의(民意)를 상세히 개진(開陳)하고자 하려 함입니다.
문(問) : 이미 효유문(曉喩文)을 보고서 감히 일을 다시 일으킨 것은 실수한 바가 아니냐?
공(供) :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고 귀로 직접 듣지 않으면 가히 깊이 믿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이에 일을 다시 일으킨 것인데 어찌 실수한 바가 있겠소?
문(問) : 아까 고한 바에 실수한 바라고 말한 것은 무슨 일이오?
공(供) : 아까 실수한 바라고 칭한 것은 시사(時事)의 속내를 상세히 알지 못한 것을 가리킨 것이요 효유문(曉喩文)을 보고 안 보고를 이른 것은 아님이외다.
문(問) : 네가 다시 봉기한 것은 대원군(大院君)의 효유문(曉喩文)으로써 개화변(開化邊)이 압박(壓迫)한 바를 보고, 겸하여 운현궁(雲峴宮)이 너희들이 올라오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이 거사(擧事)를 행한 것이냐?
공(供) : 효유문(曉喩文)이 개화변(開化邊)의 압박(壓迫)인지 아닌지는 실로 계산하지 않았으며 재봉기(再蜂起)의 거사(擧事)는 이 몸의 본심(本心)에서 나온 것이요, 또 비록 대원군(大院君)의 효유문자(曉喩文字)가 있었다 하더라도 깊이 믿지 못하였기 때문에 힘써 재봉기(再蜂起)를 도모(圖謀)한 것이외다.
문(問) : 일본(日本) 병사(兵士)가 대궐(大闕)을 침범한 것은 어느 때에 들었노?
공(供) : 7~8월 사이에 들음이외다.
문(問) : 어떤 사람에게 들었는고?
공(供) : 청문(聽聞)이 낭자(狼藉)하였기 때문에 자연(自然)히 이를 앎이외다.
문(問) : 이미 창의(倡義)를 말한다면 들은 즉시 행할 것이지 어찌 10월까지 기다렸는고?
공(供) : 마침 이 몸에 병(病)이 있었고 허다(許多)한 사람들을 일시에 가지런히 움직일 수도 없었으며, 겸하여 새 곡식이 아직 익지 않아서 자연(自然)히 10월까지 이름이외다.
문(問) : 대원군(大院君)이 동학(東學)에 관계된 일은 세상이 모두 알고 있는 바이다. 또 대원군(大院君)이 지금 위엄(威嚴)과 권세(權勢)가 없은즉, 네 죄(罪)의 경중(輕重)은 단지 이 장소에 있지 대원군(大院君)에 있지 않은데, 네가 끝내 바른대로 대답하지 않고 대원군(大院君)의 암호(暗護)를 깊이 믿는 것 같으니 이는 과연 무슨 뜻이오?
공(供) : 대원군(大院君)이 다른 동학(東學)과 관계되어 비록 백십(百十)의 무리라고 하더라도 이 몸은 처음부터 관계한 바가 없음이외다.
문(問) : 대원군(大院君) 동학(東學)과 더불어 서로 관계되는 바가 있다는 것은 세상이 모두 아는 바인데 너만 홀로 듣지 못했느냐?
공(供) : 실로 아직 듣지 못한바 이외다.
문(問) : 대원군(大院君)이 동학(東學) 더불어 서로 관계되는 것은 처음부터 한 가지 일도 들은 바가 없느냐?
공(供) : 그렇소. 나에게 있는 것도 오히려 숨기지 않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의 일이오?
문(問) : 송희옥(宋喜玉)이 대원군(大院君)과 더불어 서로 관계되는 바가 있다는 것을 너도 또한 아느냐?
공(供) : 송희옥(宋喜玉)도 반드시 서로 관계가 없을 것이외다.
문(問) : 네가 어찌 그들이 서로 관계가 없다고 아느냐?
공(供) : 송희옥(宋喜玉)이 대원군(大院君)에 대한 증표(證票)가 있는지는 실로 상세히 알지 않으나 스스로 자세히 보니 반드시 서로 관계가 없음이외다. 아룀(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