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연락처
기념재단
TEL. 063-530-9400
박물관
TEL. 063-530-9405
기념관
TEL. 063-530-9451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사료 아카이브 로고

SITEMAP 전체메뉴

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전봉준 공초 全捧準供草
일러두기

을미 2월 11일 전봉준 재초 문목[乙未 二月 十一日 全琫準 再招 問目]

문(問) : 네가 작년(昨年) 3월 기포(起包)한 뜻은 백성을 위하여 해독(解毒)을 제거(除去)함으로 뜻을 삼았다 하니 과연 그러하냐?

공(供) : 과연 그러합니다.

문(問) : 그렇다면 내직(內職)에 거(居)하며 외임(外任)을 맡은 관원(官員)이 다 탐학(貪虐)하냐?

공(供) : 내직(內職)에 거한이가 매관육작(賣官鬻爵)으로 일을 삼으나 내외(內外)를 막론하고 다 탐학(貪虐)이외다.

문(問) : 그렇다면 전라(全羅) 한 도(道)의 탐학(貪虐)하는 관리(官吏)만 제거(除去)하자 기포(起包)하였더냐, 팔도(八道)를 일체(一軆)로 하려는 의향(意向)이냐?

공(供) : 전라(全羅) 한 도(道)의 탐학(貪虐)을 제거(除去)하고 내직(內職)으로 매작(賣爵)하는 권신(權臣)을 모조리 쫓아내면 팔도(八道)가 자연(自然) 일체(一軆)로 될 터이오이다.

문(問) : 전라도(全羅道) 감사(監司) 이하(以下)로 각 고을의 수재(守宰)가 다 탐관(貪官)이냐?

공(供) : 열에 여덟아홉이다.

문(問) : 무슨 일을 지목(指目)하여 탐학(貪虐)이라 하느냐?

공(供) : 각 고을의 수재(守宰)가 상납(上納)이라 칭하고 혹 결복(結卜)가렴(加斂)하며 호역(戶役)도 함부로 징수하며 조금 살만한 백성이 있으면 공연(空然)히 죄를 얽어 돈과 재물을 늑탈(勒奪)하고 전장(田庄)도 함부로 침범함이 비일비재(非一非再)외다.

문(問) : 내직(內職)으로 매관(賣官)하는 자는 누구인고?

공(供) : 혜당(惠堂) 민영준(閔泳駿), 민영환(閔泳煥), 고영근(高永根) 등이외다.

문(問) : 이들 사람에만 그치었느냐?

공(供) : 이 밖에도 허다(許多)하옵니다. 기억할 수 없나이다.

문(問) : 이들 사람이 매관(賣官)함은 어찌 분명(分明)하게 아느냐?

공(供) : 온 세상에서 훤자(喧藉)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음이외다.

문(問) : 네가 무슨 계책(計策)으로 탐관(貪官)을 제거(除去)하려 하였느냐?

공(供) : 특별한 계책(計策)이 있음이 아니라 본심(本心)이 안민(安民)하는데 간절하여 탐학(貪虐)을 보면 분하고 한탄스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탐학(貪虐)을 제거하는 이런 일을 행함이외다.

문(問) : 그렇다면 정소(呈訴)하여 원통함을 칭하지 아니하였느냐?

공(供) : 감영과 고을에 몇 차례나 정소(呈訴)하였는지 알지 못함이외다.

문(問) : 감영에 정소(呈訴)하고 고을에 정소(呈訴)한 것은 네가 친히 행하였느냐?

공(供) : 매차(每次) 소지(所志)는 이 몸이 제작(製作)하였사오나 정소(呈訴)하기는 원민(寃民)으로 하게 하였사옵나이다.

문(問) : 그렇다면 묘당(廟堂)에도 소원(訴冤)하였느냐?

공(供) : 정소(呈訴)할 길이 없어서 홍계훈(洪啓勳) 대장(大將)이 전주(全州)에 유진(留陣)할 때에 이러한 연유(緣由)로 올렸습니다.

문(問) : 그 때 수재(守宰)가 모두 탐학(貪虐)인데 정소(呈訴)하면 어찌 들어서 시행함이 있으랴?

공(供) : 그러하나 호소(呼訴)할 곳이 없어 부득이하여 거기라도 정소(呈訴)하였나이다.

문(問) : 감영에 정소(呈訴)하고 고을에 정소(呈訴)하기는 어느 때인고?

공(供) : 작년(昨年) 정월(正月) 2~3월 사이이외다.

문(問) : 정월 이전에는 정소(呈訴)하지 아니하였느냐?

공(供) : 정월 이전에 고부(古阜) 한 고을은 민장(民狀)일 뿐, 대단(大端)히 정소(呈訴)는 아니하였느냐.

문(問) : 누차(屢次) 감영(監營)과 고을에 정소(呈訴)하되 끝내 들어 시행하지 아니하기로 기포(起包)하였느냐?

공(供) : 그렇소이다.

문(問) : 네가 고부(古阜) 수령(守令)에게 해(害)를 입음이 많지 않은데 무슨 연유(緣由)의 의견(意見)으로 이러한 거사(擧事)를 행하였느냐?

공(供) : 세상 일이 날로 그릇되기로 분개하와 한 번 세상을 구제(救濟)하자는 의견(意見)이외다.

문(問) : 너와 동모(同謀)한 손화중(孫化中), 최경선(崔慶善) 등이 다 동학(東學)을 몹시 좋아하는 자냐?

공(供) : 그러합니다.

문(問) : 동학(東學)이라는 것은 무슨 주의(主意), 무슨 도학(道學)인고?

공(供) : 수심(守心)하여 충효(忠孝)로 근본(根本)을 삼아 보국안민(輔國安民)하자는 일이외다.

문(問) : 너도 동학(東學)을 몹시 좋아하는 자이냐?

공(供) : 동학(東學)은 수심경천(守心敬天)하는 도(道)이기 때문에 몹시 좋아하나이다.

문(問) : 동학(東學)은 어느 때에 시작하였느냐?

공(供) : 동학(東學)의 시작은 30년 전에 비롯되었음이외다.

문(問) : 어느 사람이 시작하였노?

공(供) : 경주(慶州)에 거(居)하는 최제우(崔濟愚)가 시작하였나이다.

문(問) : 지금도 전라도(全羅道) 안에 동학(東學)을 존숭(尊崇)하는 자가 많으냐?

공(供) : 난(亂)을 겪은 뒤에는 사망(死亡)이 서로 이어져 지금은 크게 감소(減少)하였나이다.

문(問) : 네가 기포(起包)할 때 거느린 바는 모두 동학(東學)이냐?

공(供) : 소위(所謂) 접주(接主)는 모두 동학(東學)이요 그 나머지 솔하(率下)는 충의(忠義)의 칭함이 많음이외다.

문(問) : 접주(接主), 접사(接司)는 무슨 명색(名色)인고?

공(供) : 영솔(領率)의 칭호이외다.

문(問) : 그렇다면 기포(起包)할 때에 군기(軍器)와 군량(軍糧)을 조판(措辦)하는 자냐?

공(供) : 무릇 일에 다 지휘(指揮)하는 자입니다.

문(問) : 접주(接主), 접사(接司)는 본래(本來)부터 있었느냐?

공(供) : 기왕(旣往)에도 있었고 기포(起包)할 때에 창설(創設)함도 있었습니다.

문(問) : 동학(東學) 중에 영솔(領率)의 명색(名色)이 접주(接主), 접사(接司) 뿐이냐?

공(供) : 접주(接主), 접사(接司) 외에도 교장(敎長), 교수(敎授), 집강(執綱), 도집(都執), 대정(大正), 중정(中正) 등 여섯 종류이외다.

문(問) : 접주(接主)란 것은 평소에는 무슨 일을 행하느냐?

공(供) : 행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문(問) : 소위(所謂) 법헌(法軒)은 무슨 직책(職責)인고?

공(供) : 직책(職責)은 아니요, 장로(長老)의 별호(別號)입니다.

문(問) : 이상 여섯 종류의 명칭(名稱)은 무슨 일을 행하느냐?

공(供) : 교장(敎長), 교수(敎授)는 어리석은 백성을 교도(敎導)하는 이요, 도집(都執)은 풍력(風力)이 있고 기강(紀綱)을 밝히며 경계(經界)를 아는 이요, 집강(執綱)은 시비(是非)를 밝히고 기강(紀綱)을 잡는 이요, 대정(大正)은 공평(公平)을 유지(維持)하고 근후(謹厚)한 인원(人員)이요, 중정(中正)은 능히 직언(直言)하고 강직(剛直)한이라 합니다.

문(問) : 접주(接主), 접사(接司)는 직책(職責)이 같으냐?

공(供) : 접사(接司)는 접주(接主)의 지휘(指揮)를 듣고 행하는 자입니다.

문(問) : 이상 허다(許多)한 명색(名色)은 누가 차출(差出)하느냐?

공(供) : 법헌(法軒)으로부터 교도(敎徒)의 다소(多少)를 보고 차례로 차출(差出)하나이다.

문(問) : 동학(東學) 중에 남접(南接)과 북접(北接)이 있다 하니 무엇을 의지하여 남북(南北)을 구별(區別)하느냐?

공(供) : 호(湖) 이남(以南)은 남접(南接)이라 칭하고 호중(湖中)은 북접(北接)이라 칭하나이다.

문(問) : 작년(昨年) 기포(起包)할 때에 이상 각 종류의 명색(名色) 등에게 무슨 사건(事件)을 지휘(指揮)하였느냐?

공(供) : 각기 직장(職掌)대로 행하였나이다.

문(問) : 각기 직장(職掌)은 다 너의 지휘(指揮)를 듣고 행하였느냐?

공(供) : 이 몸이 다 지휘(指揮)하였나이다.

문(問) : 수심경천(修心敬天)하는 도(道)를 어찌 동학(東學)이라 칭하느냐?

공(供) : 우리 도(道)는 동쪽에서 나왔기 때문에 동학(東學)이라 칭하나 처음부터 본뜻은 시작(始作)한 사람이 분명(分明)히 알 것이요, 이 몸은 다른 사람이 칭함을 따라 칭할 뿐이외다.

문(問) : 동학(東學)에 들어가면 괴질(怪疾)을 면(免)한다 하니 그러하냐?

공(供) : 동학(東學)의 글 속에 이르기를, 3년 괴질(怪疾)이 앞에 있으니 경천수심(敬天守心)하여야 면한다 하였나이다.

문(問) : 동학(東學)이 8도(道)에 다 전포(傳布)하였냐?

공(供) : 5도(道)는 다 교(敎)를 행하였으나 서북(西北) 3도(道)는 알 수 없나이다.

문(問) : 동학(東學)을 배우면 병(病)을 면(免)하는 외에 다른 이익(利益)은 없느냐?

공(供) : 다른 이익은 없나이다.

문(問) : 작년(昨年) 3월 기포(起包)할 때는 탐관(貪官)을 제거한 뒤에 또 무슨 주의(注意)가 있느냐?

공(供) : 다른 주의(注意)는 없나이다.

문(問) : 작년(昨年) 홍대장(洪大將)에게 절목(節目)을 올린 것이 있다 하니 과연 그러하냐?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절목(節目)을 올린 뒤에 탐관(貪官)을 제거한 징험(徵驗)이 있더냐?

공(供) : 별로 징험(徵驗)이 없습니다.

문(問) : 그렇다면 홍대장(洪大將)이 백성을 속임이 아니냐?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그렇다면 백성(百姓)이 다시 어찌 원통함을 호소함이 없었느냐?

공(供) : 홍대장(洪大將)은 그 뒤에 서울에 있었으니 어찌 다시 원통함을 호소하리요.

문(問) : 재차(再次) 기포(起包)는 일본(日本) 병사(兵士)들이 대궐(大闕)을 침범(侵犯)하였다 하였기 때문에 재차(再次) 거사(擧事)하였다 하니 재차 거사한 뒤에는 일본(日本) 병사(兵士)에게 무슨 거조(擧措)를 행하려 하였느냐?

공(供) : 대궐을 침범한 연유(緣由)를 힐문(詰問)코자 함입니다.

문(問) : 그렇다면 일본(日本) 병사(兵士)며 각국(各國)의 사람들이 경성(京城)에 머무는 자를 구축(驅逐)하려 하느냐?

공(供) : 그럼이 아니라 각국(各國) 사람들은 다만 통상(通商)만 하는데 일본(日本) 사람들은 병사(兵士)를 거느려 경성(京城)에 진영(陣營)을 머무르는 연고로 우리나라의 경토(境土)를 침략(侵掠)하는가 의아(疑訝)함입니다.

문(問) : 이건영(李健永)이란 사람은 아느냐?

공(供) : 잠시(暫時) 봉착(逢着)하였나이다.

문(問) : 봉착(逢着)할 때 무슨 말이 있었느냐?

공(供) : 소모사(召募使)라 칭하기로 이 몸이 말하기를 소모사(召募使)면 어느 곳이든지 소모영(召募營)을 설치하면 될 것이요 우리와는 상관(相關)없다하니 그만 금산(錦山)으로 앞서 가더이다.

문(問) : 어느 곳에서 봉착(逢着)한고?

공(供) : 삼례역(參禮驛)에서 봉착(逢着)하였습니다.

문(問) : 그 때에 이건영(李健永)을 만났다 하니 어느 곳으로부터 왔다하더냐?

공(供) : 경성(京城)으로부터 왔다 하더이다.

문(問) : 누가 보냈다 하더냐?

공(供) : 정부(政府)에서 보냈다 하더니 추후(追後) 4~5일에 들으니 소모사(召募使)를 가칭(假稱)이라 하여 잡아들이라는 명(命)이 있었다 하더이다.

문(問) : 소모사(召募使)를 가히 증거(證據)할 문적(文蹟)이 있더냐?

공(供) : 가히 증거(證據)할 문적(文蹟)을 보지 못했습니다.

문(問) : 그 때 너의 도당(徒黨)이 몇 명인고?

공(供) : 수천(數千) 명이외다.

문(問) : 그 밖에는 소모사(召募使)라 칭하고 기포(起包)하라 권(勸)하는 사람이 없더냐?

공(供) : 그런 사람이 없더이다.

문(問) : 송정섭(宋廷燮)을 아느냐?

공(供) : 충청도(忠淸道) 소모사(召募使)란 소문(所聞)만 들었습니다.

문(問) : 재차(再次) 기포(起包)할 때 최법헌(崔法軒)에게 의논(議論)이 미치었느냐?

공(供) : 의논(議論)이 미침이 없습니다.

문(問) : 최법헌(崔法軒)은 동학(東學) 괴수(魁首)거늘 동학당(東學黨)을 규합(糾合)하는데 어찌하여 의논(議論)이 미치지 아니하였느냐?

공(供) : 충의(忠義)는 각기 본심(本心)이니 하필 법헌(法軒)에게 의논(議論)이 미친 뒤에 이 일을 행하리요.

문(問) : 작년(昨年) 8월에는 네가 어느 곳에 있었노?

공(供) : 태인(泰仁) 내 집에 있었습니다.

문(問) : 그 나머지 도당(徒黨)은 다 어느 곳에 있었노?

공(供) : 각기 본가(本家)에 있었습니다.

문(問) : 충청도(忠淸道) 천안(天安) 지방에 너의 도당(徒黨)이 있느냐?

공(供) : 그 곳에는 도당(徒黨)이 없습니다.

아룀(白)

주석
매관육작(賣官鬻爵) 돈이나 재물을 받고 벼슬을 시킴. 매관매직(賣官賣職).
수재(守宰) 고을의 수령(守令).
결복(結卜) 전세(田稅)를 지칭함.
가렴(加斂) 조세(租稅) 따위를 정액 외에 더 걷어 들임.
호역(戶役) 집집마다 부과되는 부역. 호구세(戶口稅).
전장(田庄) 전답(田畓)과 장원(莊園).
민영준(閔泳駿), 민씨 척족인 민영준 *[閔泳駿), 뒤에 영휘(泳徽)로 개명]* 은 조세를 받아 녹봉을 주는 선혜청(宣惠廳) 당상(堂上)의 직책을 맡아보면서 온갖 부정을 저질렀다. 가장 지탄을 받은 척족이었다.
훤자(喧藉) 뭇사람의 입으로 퍼져서 왁자하게 됨.
정소(呈訴) 여러 사람이 연명으로 호소함.
소지(所志) 청원하기 위해 관청에 내던 글.
묘당(廟堂) 의정부(議政府)의 별칭.
소원(訴冤) 백성(百姓)이 원통(寃痛)한 일을 관아(官衙)에 하소연하던 일.
민장(民狀) 백성이 송사나 청원과 관련하여 관청에 올리는 글. 고부의 백성들이 조병갑의 부정을 들어 등소를 낼 적에 전봉준은 등소의 내용을 적은 글을 써주었으나 직접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다. 그 대신 아버지 전창혁(全彰赫)이 소두(疏頭)로 이름을 올렸다가 잡혀가서 고문을 받아 죽었다고 한다.
아니하였느냐. 원문에는 “아니ᄒᆞ얏ᄂᆞ냐”라고 표기되어 있어 의문문으로 종결되나 문장의 흐름 상 “아니하였습니다”라는 대답으로 종결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수심(守心) 마음을 지킴.
보국안민(輔國安民)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
수심경천(守心敬天) 마음을 지키고 하늘을 공경하는 것.
여섯 종류이외다. 하부 동학조직을 6임(任)이라 했다. 한편 집강소(執綱所)의 임원으로는 서기(書記), 성찰(省察), 집사(執事), 동몽(童蒙) 등을 두었다고 한다.
풍력(風力) 사람의 위력.
경계(經界) 사람의 옳고 그름을 분간.
근후(謹厚) 부지런하고 온후함.
북접(北接)이라 칭하나이다. 본디 최제우 생존시에 최시형이 북쪽 지대에서 포교를 하면서 북접대도주(北接大道主)라 불렀는데, 농민봉기를 두고 서로 견해를 달리할 때 보은 중심의 최시형 계통을 북접(北接), 호남 중심의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계통을 남접(南接)이라 불렀다고 한다.
직장(職掌) 담당하는 직무의 분담.
수심경천(修心敬天) 마음을 닦고 하늘을 공경함.
전포(傳布) 전파(傳播). 전하여 널리 퍼짐.
없나이다. 5도는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말하며 서북 3도는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를 말한다. 최시형이 북쪽의 강원도를 중심으로 동학을 포덕(布德)할 때 황해도 등 서북지방에는 발길이 닿지 않았다. 다만 황해도 인사는 자발적으로 1893년 보은집회에 참가한 것으로 보인다.
주의(注意) 어떤 일에 관심을 집중함.
홍대장(洪大將) 양호초토사 홍계훈(洪啓薰)을 지칭함.
침범(侵犯)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의 경복궁 강점을 말한다.
거조(擧措) 무엇을 처리하거나 꾸미기 위한 조치.
구축(驅逐) 몰아 쫓아냄.
경토(境土) 한 나라의 영토.
의아(疑訝) 의심스럽고 이상함.
봉착(逢着) 만나서 부닥침.
소모사(召募使) 군사(軍士)를 모집하는 임시직책.
있느냐? 문초한 내용은 충청도 목천(木川) 세성산전투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1894년 10월 21일에 김복용, 이희인 등 북접 지도자들이 세성산에서 공주전투에 앞서 서전을 벌였으나 이두황이 이끄는 장위영병에게 패주한 일이 있다. 또 천안일대에 농민군의 활동이 심해지자 특별히 부대를 출동하게 했다.
이 페이지에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는 재단이 되겠습니다.

56149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 TEL. 063-530-9400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문화체육관광부 전라북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