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연락처
기념재단
TEL. 063-530-9400
박물관
TEL. 063-530-9405
기념관
TEL. 063-530-9451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사료 아카이브 로고

SITEMAP 전체메뉴

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아흔일곱 12월 12일 [其九十七 十二日]

보고하는 일입니다. 장성을 떠나온 사유는 이미 급히 보고하였거니와, 행군하여 40리를 가서 북창참(北倉站)에 도착하여 별 탈 없이 유숙하였고 초 10일 진시 경에 발행하여 신시 경에 나주목(羅州牧)에 이르러 별탈없이 유숙하였습니다.

초 7일에 발송하여 초 9일에 도착한 강진병영(康津兵營)의 보고문에, “비류들이 장흥을 무너뜨리고 침입한 사유는 어제 급히 공문을 보냈거니와 계속해서 동태를 정탐해 보니 비류들이 장흥부사를 포살하고는 불태워 버렸으며 사람들을 총검으로 쏘고 찔러 죽이니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피가 흘러 절굿공이가 떠다닐 지경인지라 피비린내가 온 성안에 가득하며 각 관청 및 인가는 모두 불태워버렸고 겨우 객사(客舍)만 남았습니다.

≪동학농민군은≫초 6일 사시 경에 벽사역(碧沙驛)의 뒤쪽 고개로 이동하여 진을 치더니 미시 경에는 다시 장흥·강진 본영의 접경지인 사인점(舍人店) 앞 들로 이동하니 본영과 10여 리에 불과합니다. 저들의 흉칙한 말이 낭자하게 선전되어 동쪽에서 소리치고 서쪽을 공격하여 과연 예측하기가 어려우므로 미약한 군사로는 방어할 대책이 없어 위급한 화가 경각에 닥쳐옴에 어찌 황급하게 보고하지 않겠습니까? 장흥부사가 피살됨에 관인과 부절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알 수 없고 공형들도 함께 죽어 일을 집행할 사람이 없고 온 성 안은 텅 비어 공문이 계류되고 있는 것을 무어라 책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만일 한시라도 급히 저들과 상대할 군사가 없으면 본영을 잃는 환란도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 귀 군영에서는 특별히 속히 지원하여 한 영(營)을 보전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날 차례로 도착한 공문에, “저 무리들이 사인점 앞들로 이동하여 주둔한 사유는 벌써 급히 보고하였습니다. 저들은 오늘 사시 경에 강진현을 침범하여 인가를 분탕하고 총포를 쏘고 칼로 찔러 백성들이 울부짖고 도망쳐 숨는 사태를 보발(步撥)로 급하게 보고하니 ≪동학농민군이≫본영을 곧바로 도륙함은 지금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화가 곧 닥쳐올 것임에 이에 재차 급히 공문을 띄우니 귀 군영에서는 정예 병사를 촉발시켜 주야를 가리지 말고 달려와 지원하여 이 한 영(營)을 보전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초 8일에 발송하여 초 10일에 도착한 공문에, “비류들이 강진현을 침입한 사유는 어제 이미 발마(撥馬)로 달려가 공문으로 보고하였거니와, 비류가 어제 축시 경에 각처로 이동하여 주둔하고 현재 세 갈래 길로 본영을 침입하려 합니다. 그런데 장흥·강진의 관아는 함락되어 병사를 징발할 방도가 없으므로 영암군(靈巖郡)에 지시하여 포군(砲軍)을 징발하려 발마로 재촉하기를 이미 8·9차례나 하였는데도 거짓과 농락만을 일삼고 즉시 서둘러 보내지 않으니 희망을 잃는 걱정이 당장에 닥쳐왔습니다. 영암군수의 소행을 살펴보건대 어찌 놀랍고 한탄스럽지 않겠습니까? 바야흐로 장계로 아뢰어서 감처(勘處)할 것이거니와 만약 귀 군영에서 호응하여 주지 않으면 성이 함락되는 변고를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 특별히 굽어 살펴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초 10일에 발송하여 12일에 도착한 공문에는, “지금 여기에 비류 수천 명이 관군보다 먼저 성 아래에 당도하여 위급함이 눈앞에 있으니 주야를 가리지 말고 와서 지원해서 한 영(營)을 보전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연이어 도착한 강진현감의 보고에, “이달 초 7일 진시(辰時) 경에 동도 10,000여 명이 장흥부로부터 내려와 사방에서 쳐들어와 성을 함락하고 인가를 불태워버려 하나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장리(將吏)·별포수(別砲手)·수성군(守城軍)과 성에 가득했던 백성들을 포살하고 도륙하니 살아 도망친 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스스로 돌아보건대 직무를 이행하지 못하였으니 엎드려 황송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연달아 일본 진영에 통보하였고 대대장 미나미 쇼시로(南小四郞)의 통지에 따라 세 갈래로 병사를 조발(調發)하여 이시구로 고세이(石黑光正)는 그 휘하 1개 소대 및 2개 분대와 교도중대 2개 분대를 거느리고 영암 땅으로 출발하고 제 1중대 1소대 및 통위영 병사 30명은 능주(綾州) 땅으로 출발하고 히라기(白木) 중위는 그 휘하 병사 및 교도대의 남은 병사를 거느리고 장흥 땅으로 출발하니 군대의 수는 모두 일본 진영에서 총괄하여 통솔하였기 때문에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보고하오며 선봉진은 그 휘하의 남은 부대를 거느리고 진시 경에 60리를 행군하여 유시 경에 무안읍(務安邑)에 도착하여 별 탈 없이 묵고 음식을 공급할 연유의 일입니다.

제(題): 도착하였거니와 상황을 계속해서 급히 보고하라.

주석
감처(勘處) 죄를 심리하여 형벌에 처하는 것을 말한다.
이 페이지에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는 재단이 되겠습니다.

56149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 TEL. 063-530-9400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문화체육관광부 전라북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