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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선봉진상순무사서(부잡기)
  • 기사명
    3월 5일 보장(報狀)의 초록(抄錄)[三月 初五日 報抄]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음력 1894년 03월 05일
일러두기

3월 5일 보장(報狀)의 초록(抄錄)[三月 初五日 報抄]

지금 도착하여 받은 순무영 별군관 의병통령(巡撫營 別軍官 義兵統領) 윤영렬(尹英烈)의 첩보(牒報)에, “지난해 9월에 동비(東匪)가 창궐할 때에 순무영의 영칙(令飭, 지시)에 따라 의병을 모집하여 왕사(王師, 임금이 보낸 군대)를 도와 거괴(巨魁)를 잡고 군기(軍器)를 빼앗았는데, 그 연유를 적어 성책(成冊)해서 첩보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본진(本陣)이 천안군에 도착하였을 때에 본군(本郡)의 모산면(毛山面)에 사는 전 감찰(前 監察) 윤영렬이 비류(匪類)가 날뛰는 것을 목격하고 충애(忠愛)의 마음을 품어 먼저 의병을 일으켜서 600~700명을 모아 피를 마시며 맹서를 하고 적을 토벌할 것을 기약하였습니다. 본 읍에 와서 진을 치고 흉악한 《적의》 칼날을 막다가 의병을 인솔해서 《본진에》 합류하기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사로운 일이 아니고 뜻이 진실로 가상했기 때문에 별군관(別軍官)으로 임명하고 순무영에 《그 사실을》 들어 보고를 하였습니다. 지금 신례원(新禮院)에 모인 적들을 치러 가서 앞장서서 바로 나아가 힘껏 싸워 《적을》 크게 격파하였고, 그 뒤에 홍주(洪州)와 해미(海美) 등지의 읍들이 위급할 때에 장위영(壯衛營)의 진중과 함께 앞뒤에서 서로 호응하여 대비책을 세우거나 《적의》 선봉과 부딪혀서 거괴(巨魁)를 잡으면 대진(大陣, 본진)에 보냈고, 기계(器械, 무기)를 획득하면 소모관(召募官)에 옮겨 납부하였습니다. 전후에 《걸쳐》 분주하여 거의 금강 이북에 이르렀습니다. 그 공이 적지 않고 그 수고가 매우 많을 뿐만 아니라 소요되는 군량은 모두 스스로 감당하였습니다. 지나는 읍마다 조금도 침범하지 않아 마을이 안정되었고 소요가 진정되었습니다. 대개 윤영렬은 위로는 나라를 위해 공(功)을 세웠고, 아래로는 사람을 이끄는 데에 방도가 있어 실제로 경탄할 만합니다. 또한 그가 인솔한 의병으로 말한다면, 개개인이 100명을 감당할 수 있고 적과 함께 살려는 뜻이 없었습니다. 비록 두령의 지시가 있어 그러겠지만, 진실로 충심과 분노로 격발되는 것이 없었다면 어찌 저처럼 분발할 수가 있겠습니까? 단지 적을 토벌할 줄만을 알고 자신의 몸을 돌아보지 않은 것은 예전에도 장려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위의 의병을 일으킨 두령과 그 휘하의 사람들에게 격려하는 뜻을 보이지 않으면 아니 되기 때문에 이에 간략하게 그 전말을 거론하고 아울러 성명을 성책하여 사실에 근거해서 첩보를 합니다. 성책(成冊) 끝부분에 자체적으로 마련한 군량(軍糧)을 모두 적으니 헤아려서 처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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