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 [二十二日]
좌선봉진이 보고합니다. 20일에 작성하여 21일에 도착한 교도 중대장 이진호의 보고 내용에 ‘운운’이라 하였으며, 동시에 도착한 통위영 중우참령관 장용진의 보고에 ‘운운’이라 하였는바, 수령[命吏]을 죽이고 영(營)과 읍(邑)을 침범하고, 민가를 불태워 허물어뜨리고, 인명을 많이 죽였으니 이미 용서할 수 없는 죄안입니다. 그리고 감히 임금의 군대에 항거하여 방자하게 날뛰니 통탄함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다행히 일본 병사와 각 진영의 병사들이 노고를 다하였기 때문에 대략 징계하고 섬멸하였습니다.
하지만 거괴를 놓치고 나머지 무리가 흩어졌으니, 정황을 생각하면 지극히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각별히 각 부대와 각 읍에 타일러서 그들로 하여금 나누어 출동하여 뒤좇아 체포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장흥·강진의 두 읍은 우선 명령을 시행케 할 방법이 없고, 바닷가의 각 읍에 있는 비류는 대부분 각 섬으로 도망갔는데 정탐하는 일과 뒤좇아 체포하는 일에 아직도 수단과 방법이 없으니 안타까움과 절박함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각 진영의 병사들이 힘을 떨쳐 노고를 다하였으니 포상이 있는 것이 합당한바, 공손히 처분을 기다립니다.
제(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