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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순무선봉진등록 巡撫先鋒陣謄錄
일러두기

11월 15일 [同日]

남포현(藍浦縣) 방어중군(防禦中軍)이 보고합니다. 관문 1통과 공고문 2통이 이달 초 6일에 도착하였으며, 본 현이 유회소를 설치한 연유와 위급한 상황을 순영문에 하소연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회답의 내용에, “마땅히 순무영에 보고하라”라고 하였으니 이점은 생각건대 다 아실 것입니다. 본래 불초한 사람인데 여러 사람이 잘못 천거하여 우두머리가 되어서 과거의 잘못을 바야흐로 자책하며 보답을 못하는 것에 부끄러워했습니다. 이때에 비류의 창궐이 날마다 방자하여 유회소가 한때 고립을 면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본 현 도화담(桃花潭)의 동도의 접주 추용성(秋鏞聲)은 곧 호서(湖西)의 거괴로, 군기를 빼앗고 사람을 해친 것과 전곡(錢穀)을 빼앗고 집을 파괴한 것 따위 여러 가지 행패를 부린 일은 이루 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유회소를 손가락질하고 배척하며 창으로 찌르고 총을 쏘면서 곳곳마다 쫓아가 때리고 위협함에 다친 여러 사람들이 아직도 소생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때를 당하여 유회소 사람들은 목숨을 잃을 형편입니다. 여러 사람이 분격하여 일어나서 부득이 지난 달 21일에 무리를 거느리고 가서 체포하려 하였는데 용성은 본래 아전으로 막 읍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저 공형과 연락하여 잡아들이게 하였으니 바로, 저들의 수접주(首接主) 3명과 그들의 나머지 무리 2명을 체포하였습니다.

수접주 추성재(秋聲在)·이우삼(李友三)·이성구(李性九)는 나라의 기율을 범해서 법으로도 용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죄목을 갖추어 홍주초토영(洪州招討營)으로 압송하였습니다. 도당(徒黨) 김득운(金得云)·임금실(林今實)은 현재 죄를 크게 범한 일이 없고 진심으로 교화한다고 하기에 유회소로 넘겼습니다. 그 다음날 날이 밝을 무렵에 읍에 들어가 정탐하니, 용성이 과연 어제 밤에 관아에 들어와 관리를 보고 귀화했다고 말하였다지만 약탈한 무기를 아직 다 내놓지 않고 동도의 이름으로 된 표지도 또한 다 거둬들이지 않았으니 어찌 귀화한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으며,《그렇다고 해서》어찌《동학농민군에게》 들러붙은 자를 잡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가 마음대로 할 즈음에 잡지 못한 실수를 면치 못했는데, 그 뒤로 임천(林川) 칠산(七山) 등지에서 행패를 부려 잡아들였다는 소문이 있기에 사람을 보내어 가서 탐문하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용성과 그 무리 48명이 흉악한 행동을 하고 멋대로 혹독한 짓을 하다가 마침내 그곳 마을 사람에게 붙들렸다가 곧 석방되었다고 합니다. 그곳 읍의 공형의 문서에는, “벽을 뚫고 도망갔다”라고 하고, 그곳 마을의 보고문에는, “남포의 유회소 사람이라고 말해서 석방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읍과 마을에서 말이 다르니 무슨 곡절이 있을 것 같은데 뒤따라 전하여 오는 소문이 예측하기 어려우니 순무영에서 기찰하여 체포하지 않으면 악을 제거하기가 어렵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심정이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달 25일에 초토영으로부터 읍의 방어중군의 소임을 임시로 임명한다고 하니, 스스로 못난 자질을 보건대 지극히 송구하오나 이때의 방어는 한시라도 염려가 되기에 감히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개 남포와 비인(庇仁)·서천(舒川)·임천·한산(韓山)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형세입니다. 이 남쪽 적들이 강을 건너고 이웃 비류들이 경내를 침범하는 때를 당하여 고립되어서는 편안하게 지낼 수 없기 때문에 이웃 마을 유회소가 울타리가 되어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이달 초 3일 비인에 가서 사람들을 불러 깨우쳐서 유회소의 결성을 권유하고 약관을 정하니 여론이 기뻐하고 흡족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본 경내 동학의 수접주 김윤선(金允善)·서성보·구승천(具承天) 3놈은 여론에 따라 체포해서 죄목을 갖추어서 초토영으로 압송하였습니다. 이후로 비인의 온 경내가 조금씩 안정되었으나, 임천·한산·서천 3읍에는 남은 무리들이 아직 많습니다. 그러므로 각 해당 지방에 명령해 각별히 유회소를 설치하여 효과를 보기를 바랬습니다. 본 현이 유회소를 설치하고 방어소를 둔 이래로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 구호를 계속하기 어렵습니다. 비록 이미 백성들에게서 약간 거둬 나누어 사용하였으나 두 번 세 번 거둘 수가 없고, 또 방어한다고 말하였으니 허물어진 성첩을 어쩔 수 없이 보수해야 하기 때문에 먼저 조방장(助防將)에게 명하여 읍에 머물면서 성을 보수하게 하였습니다.

중군은 아직 양치(良峙)의 요충지에 머물러서 남쪽 적들을 살피고 있으나, 본 현감은 자리를 비워 둔 지가 오래되어 공무가 쌓여있어 민심이 이를 걱정하고 두려워하므로, 먼저 공고문을 가지고 각별히 베껴서 돌려 보도록 지시하고 곧 게시하여서 어둠을 버리고 밝은 길을 찾도록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비도 중에 사방으로 흩어져 엿보는 자들은 특별히 단련된 병졸을 출동시켜 기둥을 자르고 뿌리를 뽑아서 후환을 제거하겠습니다.

제(題): 이렇게 의거를 준비해 이웃 경내가 힘입어 안도하고, 비괴가 따라서 자취를 거두었다. 만약 여러 읍에서 이를 본받아 편안하게 하면 《동학농민군들의 소요가》진정되지 못함을 어찌 근심하겠는가? 마무리 짓는 것이 어려우니 더욱 단속할 것이며, 추가(秋哥)란 놈을 뒤쫓아 체포하는 일은 마땅히 각별히 지시하라. 아울러 이를 전달해 보고할 것이다.

주석
홍주초토영(洪州招討營) 본래 명칭은 호연초토영이나 홍주에 두어서 이렇게 불렀다. 잔여 농민군을 체포하면 일단 초토영으로 보내 판결을 받게 하였으나 현장에서 죽이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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