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同日]
출정한 친군경리청 계원 영관 구상조가 보고하는 일입니다. 이달 13일에 죽산부사가 거느린 부대와 진남영 부대가 합세하여 청주에서 출발하여 곧바로 보은으로 향하니 비류가 기미를 알아채고 청산·영동 등지로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접주 백학길(白學吉)을 붙잡아 효수(梟首)하고 경계한 뒤에 두 진영이 서로 상의하여 곧바로 영동으로 쫓아가 체포하려고 할 때에 금영에서 빨리 지원하라는 급한 공문이 도착하였습니다. 그래서 즉시 공주를 향하여 회인읍(懷仁邑)을 경유해 머물러 주둔하였습니다. 도집(都執) 유홍구(柳鴻九)·윤경선(尹敬善), 접사 이승일(李承一)·우범손(禹範孫)은 뒤를 밟아 붙잡아서 죄상을 조사하여보니 용서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즉시 효수하여 경계하였습니다. 18일에 모로원에 급히 도착하여 유숙하였고, 19일 금영에 도착하여 순무영의 명령에 의거하여 거느린 병사 2개 소대 중에서 1개 소대를 서산군수 성하영에게 주고 거기서 그대로 유숙하였습니다. 접응하는 일에 대해 다시 지휘하는 명령이 20일에 도착하였으며, 또 충청감영으로 가라는 명령이 21일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런 사정을 보고합니다.
제(題): 몇 사람을 죽여서 소굴을 소탕하였다니 매우 통쾌하다. 마땅히 보고를 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