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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갑오해영비요전말
일러두기

도내유생이 정부에 올린 장초를 부침 [附道內儒生呈政府狀草]

삼가 아룁니다. 먼 지방의 어리석은 백성으로 조정의 사체를 알지 못하고, 가벼이 먼저 호소하니 일을 전혀 분간하지 못하는 처사에 저촉되는 듯 하지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고하는 것이 백성들의 인지상정입니다. 오직 우리 순찰사께서 부임하신 초에 패영(浿營), 평양감영에서 이미 배포하여 빌려간 군량을 바로 환급받아, 일본사람들이 왕래할 적에 곡식을 운송하는 소요에도 백성들이 모두 옛날처럼 안도하였습니다. 당오전(當五錢)을 혁파한 뒤, 계미년 이후로 호(戶)와 결(結)을 기준으로 더 거둔 세금은 일체 혁감하고 엽전으로 상납하기를 원한다는 뜻으로 관문(關文)을 보내니 다른 폐단들이 역시 이를 따라 없어지고 차례로 정해졌으니, 도내의 백성들이 거의 소생할 희망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동도(東徒)는 어디로 나오는지 알지 못하지만 패거리를 불러 모아 겉으로는 도인(道人)의 이름을 빌리고, 속으로는 약탈할 마음을 품고 있는 자입니다. 비록 경영(京營), 순무영에서 명령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어린아이가 우물로 빠지려는 것을 어찌하지 못하는 심정으로 사랑으로 용서를 베풀었습니다. 여러 번 타일러 깨닫고 생각을 고쳐가져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바랐는데 흉악한 저 비류(匪類)들은 점차 더욱 번성하였고, ‘공전오배지설(公錢五倍之說)’을 거짓으로 칭하였습니다. 처음에 그들이 등소(等訴)할 적에 수 만명이 한꺼번에 갑자기 들어와 우리 순상(巡相)을 핍박하여 곤욕을 주었고, 선화당과 공해(公廨)를 남김없이 부수고 무기를 강제로 빼앗았으며, 또한 서류를 불태웠습니다. 칼과 창이 하늘을 뒤덮었으며 총소리가 땅을 흔들어 아전과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관청은 텅 비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오직 순상께서 감영밖에 앉아 성난 목소리로 크게 꾸짖어 죽음을 맹세하고 굴하지 않으니, 적도(賊徒)중에 오히려 감응한자가 도리어 사과를 하고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공사(公私) 모두 도탄에 빠져 허덕여 다른 여지가 없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을 불러 들여 안주시키고 군사를 많이 동원하여 일본병사와 같이 동학군을 쫓아 체포하였고, 강령에 도착한 후에 사로잡은 수십명을 효수하여 뭇사람들을 경계하였습니다. 그밖에 수 만명에게도 의리로 유시하니 한꺼번에 귀화하였습니다.
그 우두머리와 무리들 몇 천명이 옹진, 강령땅에 모여 있어서 잡을 계획이었는데, 그 때를 만나서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눈물을 머금지 않을 수 없고 탄식하여 말을 할 수가 없었으니 감화의 지극함이 아닌 것이 어찌 이와 같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견책하여 파직하는 법은 생각해 보니 이와 같이 지키지 못한 책임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그 날 변란은 예로부터 없던 일이니 비록 옛날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자라도 막을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또 도내의 일로 말하자면 1년에 3차례의 영송(迎送)하는 많은 비용이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전후의 사건 전말이 이와 같이 명백하여 병폐를 가지고 말을 청하니 세심하게 살펴주십시오.

병이 여러 해 계속되어 고질이 되고 시간이 흘러 증세가 변한 것은 진실로 용한 의사도 치료하기 어려운 것인데 단지 효험이 없다고 책망하여 자주 의사를 바꾸어 병의 근원이 어느 곳에 있는지 살피지 못하고 쓴약, 단약을 섞어서 사용하니, 병도 낫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증세를 진단한 의사에게 맡겨 성심껏 치료하게 하여 만에 하나라도 잃을 염려가 없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까닭에 저희들은 눈길에 발을 싸매고 나아가 외람됨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감히 일제히 호소하니 바라건대 헤아리신 후, 백성들을 이 치료하기 어려운 병상을 아뢴 것과 같이 여겨 우리 순상을 특별히 잉임(仍任)하여 오래된 병폐를 잘 조리하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니 기도하고 간구함이 그지 없습니다.

주석
당오전(當五錢)을 혁파 당오전은 계미년(1883)년에 주조되어 상평통보의 5배 가치로 교환되었다. 1894년 7월부터 당오전의 주조를 중지하고 엽전을 통용케 하였다.
공전오배지설(公錢五倍之說) 공적으로 살 돈을 정액보다 오배를 거두었다는 의미인 듯하다.
영송(迎送) 중국사행이 드나드는 황해도 평안도에는 진주사 등 중국사신의 경비를 염출하였다. 1년에 3차례 사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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