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12월 21일 남북의 각 읍에 보내는 관문 [開國百三年十二月二十一日 關南北各邑]
행 강릉대도호부사 겸 관동소모사(行江陵大都護府使兼關東召募使)가 상고하는 일이다. 지금 평창공형의 보고를 보니, “양호(兩湖)의 비류 가운데 나머지 무리 수천 명이 배를 타고 바다 위에 떠있다”고 하였다. 지금 수상한 배 2척이 연해(沿海)에 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청나라 군대가 처음부터 육지에 내려오지 않고 군량과 군병을 요구한 말이 퍼진 것이거나 흩어진 비도가 청나라 배를 빌려 타고 갔다는 말이 생겨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되어 은밀히 각 진(津)과 포(浦)의 요충지에 탐문을 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그런 흔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각 읍에 있는 비류는 이미 차례대로 제거되어 다시는 기도(企圖)할 폐단이 없다고 하였다. 지금 이런 소문은 매우 허황된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생각하지 못한데서 일어나고, 재앙의 시작은 재앙이 일어난 날에 생기지 않고 반드시 조짐이 있다. 그것을 미리 대비하는 방법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이에 관문을 보내니 각 읍마다 각 진과 포 및 요충지에 명령하여 만약 수상한 기미가 있으면 방수(防守) 등의 일을 갑절이나 단속한 뒤에 그 형편을 빨리 보고하도록 하라.
1894년 12월 21일 남북의 각 읍에 관문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