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11월 13일 양양관아에 보내는 관문 [甲午十一月十三日 關襄陽府]
상고할 일이다. 본 관아에 있는 별군관 50명과 차출한 군정을 종사관 이석범으로 하여금 인솔하게 하여 구룡령·신배령·응봉령 3곳으로 떠나도록 이미 관문을 보냈는데, 그 사이에 군정을 이끌고 떠났는지 모르겠다. 지금 본 관아의 종사관 박동의의 수본을 보니, “내면의 비도 정창호(丁昌浩) 등 10여 명을 우선 체포하여 머리를 베었다”라고 하였고, 이어서 도착하여 받은 양양 부종사관(副從事官) 장혁주의 수본에 의하면, “비도 500여 명이 약수포(藥水泡)로 도망하였다고 하여 홍천(洪川)의 의병 3진(三陣)과 합세하여 함께 토벌한다”라고 하였다. 저들의 형세가 장차 쫓겨서 양양의 통행로로 흘러 내려올 것이니 즉시 갑절이나 되는 속도로 3 곳의 고개 아래로 달려가 양쪽에서 도망가는 비도를 협공하고 남김없이 찾아서 토벌하여 뿌리를 뽑아버려라. 만약 잠시라도 지체하면 이런 폐단이 먼저 본 관아와 영동에 미칠 것이니 급속히 거행하도록 하라.
1894년 11월 13일 양양관아에 관문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