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읍에서 10일에 순중군 겸 도토사가 보낸 글 [在平昌邑 初十日]
순영 중군 겸 도토사(巡中軍兼都討使)가 상고하는 일이다. 순영문(巡營門)의 분부를 받들어 직접 포군을 이끌고 일본군과 함께 동도를 토벌한 연유는 이미 관문을 보내어 알렸다. 이 달 5일에 평창·후평 등지에서 동학 10,000여 명과 싸움을 하여 비도 100여 명을 쏘아 죽였고, 연이어 접주 이문보(李文甫) 등 5명을 잡아서 목을 베어 사람들을 경계하였으며 정선 등지로 추격하여 들어갔다고 한다. 지금 각처로 흩어진 10,000여 명은 쫓기는 대로 흩어졌다가 모이니 훗날의 걱정이 없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군대가 만약 정선을 나가면 강릉의 요충지에 방략을 많이 마련하여 엄중히 지키고, 수상한 자가 경내를 지나가면 보이는 대로 체포하여 소홀히 해서 나중에 후환이 되지 않도록 하라.
평창읍에서 10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