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종사관 박동의와 진부면 도집강 김윤희에게 보내는 전령 [傳令 召募從事官朴東儀珍富面都執綱金允熙]
잘 알아서 거행할 일이다. 지금 집강의 보고에 의하면, “봉평의 포수대장(砲手隊長) 강위서가 해당 면에 돌아왔는데, 창촌에서 부상을 당한 군정은 3명이고, 내면의 비도 수백 명이 민가 10여 호를 불태웠으며 찔러 죽인 민인도 10여 명이 된다”고 하였다. 비류의 행위가 갈수록 통탄스럽고 사람의 목숨까지 해쳤다는 소식을 들으니 매우 놀랍고 참담하다. 이들을 섬멸하는 것은 잠시도 늦춰서는 안된다. 2개 면의 포수 20명을 봉평에 보낼 때에 이미 장교(將校)를 보내었고, 연이어 포수들과 2개 면의 민정들을 엄중히 타일러 뒤에서 호응하여 성원하게 하였으며, 양양에 사는 종사관 이석범으로 하여금 포병(砲兵) 50여 명을 인솔하게 하여 지금 그들을 토벌하려고 출동하였다. 2개 면의 군정을 징발하여 각처의 요충지를 지키고 양양의 이종사관(李從事官), 이석범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각별히 영접하여 대접하라. 진부와 도암 2개 면의 포군은 출사한 장교를 시켜 우선 인솔하여 봉평으로 따라가도록 하였다. 군무를 거행하는 것은 매우 시급하니 그 형편을 계속해서 빨리 보고하여 그것에 의거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1894년 11월 9일 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