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11월 5일 유시에 간성군에 보낸 관문 [甲午十一月初五日 酉時 關杆城郡]
행 강릉대도호부사 겸 관동소모사 (行江陵大都護府使兼關東召募使)가 상고하는 일이다. 본부의 봉평 내면의 비도가 창궐하여 폐단을 일으켰기 때문에 본 관아에서 병사를 징집하여 섬멸하고 적의 괴수 9명을 잡아 목을 베어 사람들을 경계하였다. 도망간 남은 무리들은 해당 면에서 포수가 한편으로 모두 잡아 죽였고 중군 이진석이 이끌던 군병은 대화로 바로 향하여 순영 중군의 행진을 맞이하고 일본병사와 힘을 합쳐 평창과 정선 2개 읍의 비도를 토벌하였다. 그리고 삼척과 양양에서 병정을 소집하여 동서로 나누어 보내어 토벌하게 한 것에 대하여 봉평면 영군대장(領軍隊長) 강우서(姜羽西)의 수본에 의하면, “내면의 괴수 차기석이 몰래 기린(麒獜), 인제·양양(襄陽)·간성(杆城) 등에 통문을 보내고 군호(軍號)로 비도를 모아 봉평을 도륙하려 한다고 해서 특별히 병정을 징집하여 우선 방비한다고 하므로 이에 관문을 보냅니다”라고 하였다. 본 군에 있는 비류는 군포(軍砲)를 많이 보내어 한꺼번에 토벌하라. 일이 시급하고 긴밀하니 잠시도 지체하지 말고 성화같이 거행하여 내면의 비류와 호응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 거행한 형편을 바로 빨리 보고하라.
1894년 11월 5일 유시(酉時)에 간성군에 관문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