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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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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1894년 11월 3일 겸관에 첩보하는 글 [甲午十一月初三日 牒兼]

첩보하는 일입니다. 본부 봉평과 내면(內面) 등지의 비도 7명은 총을 쏴서 죽였고 남은 무리들을 차례대로 몰아낼 일과 정선과 평창 2개 읍의 비도가 창궐하여 진영(鎭營)에 관문을 보내 힘을 합쳐 지켜야 하는 이유는 이미 첩보하였습니다.

이 달 2일에 중군 이진석의 첩보에 의하면, “봉평의 비도 정창해(鄭昌海)는 뒤를 밟아 잡아서 총을 쏘아 죽인 뒤에 동도 안영보(安永甫)와 김순복(金順卜) 2명도 잡았다고 하기에 엄중히 조사하여 심문을 하였더니, 안영보가 말한 것에 의하면, ‘그 자신의 동생인 영달(永達)이 동도에 참여하여 저 무리 속에 왕래하다가 관군이 토벌하는 날에 먼저 도망하여 그 자신이 대신 잡혀왔다’고 하였습니다. 김순복이 말한 것에 의하면, ‘그 자신의 아들 성칠(成七)이 동학에 참가하여 난류(亂類)와 결탁해서 저 무리 속에 나타나다가 관군이 토벌할 때에 먼저 도망하여 향방을 알지 못해 그 자신이 대신 잡혀 와서 다른 변명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날 김상연 4부자를 잡아서 산채로 묻어 죽인 것은 안영보와 안영달 형제가 중간에서 조종하지 않은 것이 없고, 영서 등의 지역에서 평민을 위협하여 비도의 명단에 들어가게 한 것은 김순복 부자(父子)가 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소문이 무성하니 그들이 말한 것을 실제로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회제(回題)를 기다려서 거행하려고 관아의 옥에 엄중히 가두었습니다. 정선과 평창에 정탐(偵探)을 따로 파견했는데, 그 보고에 의하면, ‘정선읍에 모인 비도는 3,000여 명이고, 평창의 후평(後坪)에 모인 비도는 1,000여 명으로 기세가 대단하여 근심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장차 본 관아로 향하려 한다’고 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읍을 방어하는데 날로 고심하여 군정을 각처의 요충지에 보내어 순찰하며 엄중히 지키게 하였고, 영서의 진부(珍富) 등의 지역은 중군 이진석으로 하여금 포군(砲軍)을 이끌고 가서 민정(民丁)과 함께 내면의 비도를 박멸한 뒤에 주둔하여 지키게 하였습니다. 대화(大和)는 본면의 포수와 민정을 징발하여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 연유를 먼저 첩보합니다.

1894년 11월 3일 겸관에 첩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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