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서[日記序]
나의 당초 생각에는 과거(科擧)를 보는 글이 단지 오언(五言)과 칠언(七言)만으로 작문을 하는 까닭에, 장문(長文, ① 줄글, ② 매우 긴 글)에 있어서는 ≪나는≫ 일찍이 한 줄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였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이것은 헛된 일인데, 어떻게 이에 한 초시(初試)라도 합격하여 얻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 소위 시구(詩句)라는 것은 과거의 합격을 요하는데, 하물며 새 법률로 과거제도를 폐지하였으니 다시 무엇을 위하여 부(賦)와 시(詩)를 지으려고 노력하겠는가? 지금 이른바 이 일기(日記)는 바로 젖먹이 아이가 말을 배우는 수준과 같다. 체제가 없고 이치도 없이 횡설수설(橫說竪說)하여 하나도 적실(的實)하고 마땅함이 없어 펼쳐볼 만한 내용이 없다. 그렇지만 어느 물인들 바다로 흐르지 아니하고 어느 곡식인들 영글지 않을 것이며, 높은 데 오르려면 낮은 데서부터 올라가야 하고 먼 곳에 가려면 가까운 데로부터 가야 한다. 비록 날마다 사용하는 속되고 평범한 말이라도 다만 문장을 지어 익힌다면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잠(箴)과 명(銘)과 서(序)와 기(記)와 소(疏)와 격(檄)의 문장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물에서 관찰해 보면, 바깥의 길바닥에 괸 물이 되거나 바위 구멍을 솟아나와 실낱같이 졸졸 흐르지 않는다면, 어느 때에 강회(江淮)와 하한(河漢)으로 흘러들어가 그 파도의 장엄하고 기이한 모양을 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 논밭 물고에 흘러들어 질흙이 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바다로 돌아가고야 말 것이다. 이를 곡식에서 관찰해 보면 스스로 바깥에서 썩은 나무로 꺾이거나 새싹이 땅 밖으로 뚫고 나와 지방(脂肪)이나 연한 가죽처럼 똑바로 서지 못하지만, 어느 날 밤과 낮, 비 · 이슬의 혜택을 입고 그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자람을 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 소나 양의 먹이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반드시 잘 영글고야 말 것이다. 이 때문에 천하(天下)의 이치가 하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일단 한다면 이루지 못할 리가 없으리라. 자벌레[蠖蟲]가 땅을 자질하며 그만두지 않고 간다면 역시 만 리 길(매우 먼 거리)도 갈 것이요, 우직한 사람이 산(山) 옮기는 일을 작파(作破)하지 않고 꾸준히 한다면, 또한 아홉 길 높이의 산도 능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미 저술하였던 글은 고풍(古風) 운(韻)을 따른 시 몇 수에 불과하므로, 매양 말을 배열하여 문장을 작성하는 데 그 흥과 맛이 쓸쓸하고 건조(乾燥)하며 깔끄러워, 도무지 노천(老泉, 소순[蘇洵]의 호)이 이른바 ‘마음을 집중하여 성취한 생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만일 혹 그것을 일으켜 마음에 들어 종이에 쓰거나, 혹 도와주는 묘미가 있었다면 어찌 감탄해 마지 않겠는가. 한(韓, 韓退之) · 유(柳, 柳宗元) · 구(歐, 歐陽脩) · 소(蘇, 蘇軾)
갑오년 7월 17일[甲午七月十七日] 주인(主人) 자서(自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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