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1일 을사[八月 初一日 乙巳]
맑고 시원함. 주령이 용천부사에게 편지를 부쳤다. 오 생원이 농어 10마리를 보냈다고 하였다. 의주에서 선박을 수령하여 갔다. 별견(別遣) 김득정(金得正)이 와서 선박을 아무 탈 없이 잘 내어주었다고 하였다. 저녁에 술을 마셨다.
초2일[初二日]
맑고 서늘함. 고 함종이 왔다가 갔다. 금년 정월에 와서 머물렀던 필사(筆士) 김아(金雅)가 왔다. 참으로 뜻밖이어서 반갑게 맞이하였다. 용천부사의 답장이 왔는데, 민영준(閔泳駿)이 석방되었다고 하였고, 원 대인(袁大人)이 4만의 군대를 이끌고 가까운 시일에 온다고 하였으며, 마 통령(馬統領)이 황주(黃州)로 가서 진을 쳤다고 하였다.
초3일[初三日]
맑고 서늘함. 주령이 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가서 전해 달라고 김아(金雅)에게 부탁하여 그가 수락하였다. 다행이었다. 서울로 보내는 편지와 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작성하였다. 광주(廣州)와 충주(忠州)로 가는 도로가 막혀서 산길로 갈 계획을 세웠다.
초4일[初四日]
맑고 서늘함. 김아(金雅)가 출발하여 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부쳤으나 언제 도착할지 모르니 답답하였다. 이런 난리 통에 천여 리를 왕복하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가슴이 답답하였다. 황 참봉이 왔다가 갔다. 청군의 군량선 10척이 본 포구에 와서 정박하였다. 청국인들이 진(鎭)에 들어와서 토색질을 하므로, 동헌(東軒)으로 불러들여 관에서 잘 타일러서 보냈다. 저녁에 술을 마셨다.
초5일[初五日]
서늘함. 청국인들의 작폐를 금지하도록 해달라고 만영(灣營)에 보고를 하고 만윤(灣尹)에게 편지를 부쳤다. 또 호방(戶房) 향소(鄕所) 김약순(金若淳)에게 편지를 부쳤다. 황 단천과 이 정언이 왔다가 갔다. 밤이 깊은 뒤에 각 방(房)의 하인들을 점고하였다.
초6일[初六日]
맑고 시원함. 청군들의 토색질을 금지하여 달라는 일로 청군 진영의 마 대인(馬大人)에게 보고하도록 글을 작성해 두었다. 청군의 군량을 실은 선박이 지나가면서 토색질을 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중군(中軍)을 파견하여 탈 없이 보내었으며, (중군이) 청국인 풍국장(馮國璋)의 명함을 받아 왔다. 저녁에 술을 마셨다.
초7일[初七日]
맑고 시원함. 김제원과 고 함종이 와서 소를 잡고 술을 마련하였다. 남동(南垌)의 갈대밭을 관아에 소속시키라는 뜻으로 본 동(洞)에 전령을 보냈다. 저녁에 이방에게서 술 1사발(값 1냥)을 가져왔다.
초8일[初八日]
맑고 시원함. 김봉린(金奉獜)이 의주에서 돌아왔으며, 만윤(灣尹)의 답장이 왔다. 보고한 문서에 대한 엄한 제사(題辭)와 관문(關文)에, 통사(通事)와 뱃사람들이 폐단을 일으키는 일을 엄금한다고 하였다. 또 청군 진영의 고시(告示) 1통도 구하여 보내었는데, 청군들이 작간을 부리는 일을 금한다는 내용이었다. 요청한 일들이 일일이 시행되어 감사하였다. 호방(戶房) 향소(鄕所) 김약순(金若淳)의 편지가 왔다. 용천부사의 편지가 왔다.
초9일[初九日]
오늘은 백로(白露)이다. 맑고 시원함. 중국어를 잘하는 김여항(金呂恒)이라는 자를 불러서 진(鎭) 내에 머물도록 하였다. 주령을 대신하여 다시 김제원에게 주는 서문을 지었다. 또 율시 1수를 지었다.
平生幽趣愛幽居 평생 고요한 정취를 가지고 고요한 거처를 좋아하여 十載關西處士廬 십 년을 관서(關西)에서 처사의 오두막에 살았네 白首不談今世事 허옇게 쇤 머리는 오늘날 세상사를 말하지 않고 靑燈長對古人書 푸른 등잔에서 옛 사람의 책을 오래도록 대하네 俟時蟋蟀秋吟意 때를 기다리는 귀뚜라미는 가을에 울고 棲老梧桐月向初 봉황이 깃든 벽오동 늙은 가지는 애초부터 달을 향하네 先問夫君常設榻 我非陳也子眞徐
초10일[初十日]
아침에 우레가 치고 비가 내렸으며 낮에는 흐림. 섬의 관재장(官齋長)으로 이시권(李時權) 군을 차출하였다고 하였다. 남동(南垌)의 갈대밭은 오학민(吳學民) 집안의 장토(庄土)이나 관아로 소속시키라는 뜻으로 전령을 보냈다. 저녁에 술을 마셨다.
11일[十一日]
맑고 시원함. 고 함종과 황 단천이 왔다가 갔다. 중국어 책 2권을 얻어 왔다. 중흥(中興)과 신흥(新興)의 도보장(都堡長)으로 황 단천을 선발하였으며, 돌성(乭城)과 모전(毛全)의 보장(堡長)으로 황재록(黃才祿)을 임명하였다고 한다.
12일[十二日]
맑고 서늘함. 황재록이 와서 만났다. 오위장 김경달이 왔다가 갔다. 관아에서 순해군관(巡海軍官) 2명을 추가로 늘렸다고 하였다. 저녁에 술을 마셨다.
13일[十三日]
맑고 시원함. 주령이 대군물(大軍物)로 나가서 오가작통군(五家作統軍)을 점고하고, 또 시험 사격을 하고 저물 무렵 관아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제삿날이다. 평상시라도 천리 먼 변방에서 2년이나 객지 생활을 하였다면 슬픈 감정을 감당할 수 없을 터인데 이러한 난세를 만나 집안 소식이 아득하다. 또 오늘 밤을 당하니 길러 주신 어머니의 괴로움이 하늘처럼 끝이 없으니, 형제와 처자들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가 나도 모르게 통곡이 나왔다. 불을 밝히고 밤을 지새웠다.
14일[十四日]
맑고 시원함. 황 참봉이 술 1주발을 보내 왔다. 장청(將廳)에서 소를 잡았다. 내일은 명절이다. 오늘 저녁은 달이 밝아 맑은 하늘 아래서 집 생각을 하니 어찌 나그네의 수심을 견딜 수 있겠는가? 술 몇 잔을 마셨다.
15일[十五日]
맑고 시원함. 이인건(李仁鍵)이 와서 만났다. 오늘은 명절이어서 고향 생각이 갑절이나 간절하였다. 저녁에 술을 마셨다.
16일[十六日]
맑고 시원함. 용천 관아에서 보내 온 서울 소식에 정사축(政事軸)이 왔는데, 6월 22일부터 그믐까지의 정목(政目)이었다. 관제와 의복제도 및 기타 장정(章程)은 한결같이 왜제(倭制)를 따랐으며, 대관(大官)은 모두 개화(開和, 開化의 오기) 신료들로 임명하였다. 세상일이 지극히 한심하였다. 감영에서 감결(甘結, 하급 관청에 보낸 공문)이 왔는데, 주령은 이미 체직(遞職)되었다. 그러나 청군 진영[天陣]에서는 황제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도백(道伯)과 수령(守令)을 개체(改遞)하지 못하도록 하고, 천조(天朝, 청국 조정)에서 결정하기 전에는 마음대로 임지를 이탈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신정(新政)을 일체 발송하지 말도록 하였다고 한다. 주령의 거취가 기한이 없다고 할 수 있으니 한탄스러웠다. 돈 5냥을 김여항(金呂恒)에게 빌려 주었다.
17일[十七日]
밤에 우레가 치고 비가 내렸으며 낮에는 맑음. 황 단천과 황 참봉, 김대경(金大敬)이 왔다가 갔다. 감영의 감결이 도착하였는데, 성향미(城餉米, 성에 비축한 공적인 쌀) 창고를 열어 이달 20일로 정하여 보내라고 하였다. 이시권 군이 섬의 관재(官齋)로 옮겨 갔다고 하였다.
18일[十八日]
맑고 시원함. 주령이 김례항(金禮恒, 金呂恒의 오기로 보임)으로 하여금 학당(學堂)을 개설하고 진(鎭) 내의 소년들을 뽑아서 중국어를 가르치도록 하였다. 이때 청군 진영에서 소용이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였다. 김아 제원(金雅濟元)과 그의 족인(族人)이 왔다가 갔다. 신발 값 3전을 용천 노파에게 빌려 주었으며, 또 10냥을 빌려 주었다.
19일[十九日]
맑고 시원함. 지난밤에 패전한 청국인 군함이 와서 정박하고 있다고 하였다. 통사로 하여금 가서 살펴보게 하였더니, 전에 보낸 본 진(鎭)의 군량운반선이 돌아왔는데, 그동안 왜군과 청군이 강서(江西) 땅에서 접전을 하여 청군이 패하여 달아나 패성(浿城)으로 들어가자 왜군들이 성 밖을 에워싸고 군량선을 가져갔으며, 청군 수십 명은 도망쳐 왔다고 하였다. 듣기에 가슴이 몹시 한심하였다. 의주의 상인(喪人) 이(李)씨가 와서 유숙하였다. 섬의 장리(將吏)들이 나왔다.
20일[二十日]
맑고 시원함. 김아(金雅)와 황 소년(黃少年)이 왔다가 갔다. 감사가 11일에 보낸 편지가 도착하였는데, 본 진(鎭)에 군수전(軍需錢)으로 500냥을 배정한다고 하였다. 내아(內衙)에서 매일 한기가 심하게 들고 몹시 아프다고 하여 걱정스러웠다.
21일[二十一日]
맑고 시원함. 성향곡(城餉穀)의 창고를 열어서 직접 거두었다고 하였다. 한어학당(漢語學堂, 중국어 학습소)에 가서 술값으로 5전을 썼다. 청군의 패잔병이 모두 도망와서 폐단을 일으키고 있으며, 용천부사는 촌가에 피신하였다고 하니 한탄스럽다. 민영준(閔泳駿)을 의주의 청군 진영으로 잡아 갔다고 하였다.
22일[二十二日]
맑고 시원함. 김제원이 왔다가 갔다. 용천과 의주 두 고을의 많은 백성이 난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 진(鎭)으로 옮겨 와서 인심이 소란스러웠다. 흰 종이 1묶음으로 책을 만들어 들여왔다.
23일[二十三日]
맑고 시원함. 지난밤부터 곽란(癨亂)으로 몸이 불편하여 걱정스러웠다. 의원 이재명(李在明)이 (결락) 2첩을 지어 왔다. 고 함종이 왔다가 갔다. 주령이 용천부사에게 편지를 보내어서 답장이 왔는데, 패성(浿城)에 주둔하고 있는 청군이 모두 내려와서 무수히 폐단을 일으키고 있다고 하였다. 민영준이 18일에 역참을 지나갔다고 하였다. 담배 5전어치를 샀다.
24일[二十四日]
오늘은 추분(秋分)이다. 맑고 시원함. 병이 조금 나았다. 황 단천이 왔다가 갔다. 저녁에 술을 마셨다.
25일[二十五日]
종일 가는 비가 내림. 오늘 비로소 머리를 빗고 얼굴을 씻었다. 고 함종의 편지가 왔다. 이방에게서 술 1사발을 들여왔다. 값은 1냥이다.
26일[二十六日]
지난밤에 큰 비가 내리고 낮에는 맑고 시원함. 원 대인(袁大人) 진중의 번역관인 첨사(僉使) 김의순(金宜淳)이 탄 배가 서울에서 7월 27일에 출발하여 두포(豆浦)에 정박하였다. 그가 오늘 들어와서 만나 서울 소식을 들으니, 민영달(閔泳達) 대감은 그 사이 이미 유배에 처해졌다고 하였다. 또 삼전(三殿)과 대원위(大院位) 대감은 궁중에 포위되어 왜인들의 지시만을 따르고 있으며, 여러 신하는 한 사람도 입조(入朝)하지 않고 모두 낙향하였다고 하였다. 듣기에 심히 통탄스러웠다. 삼남(三南)에서 동도(東徒)가 크게 일어나서 왜인을 토멸하는 것을 명분으로 삼고 있다고 하였다. 듣기에는 다행스럽지만 어찌 믿을 수가 있겠는가? 나랏일을 생각하면 통곡만 나올 뿐이다. 황 참봉이 왔다가 갔다.
27일[二十七日]
맑고 시원함. 김아 제원(金雅濟元)의 편지가 왔는데, 감사가 마 대인(馬大人)을 쫓아오느라 배를 타고 철주(鐵州, 鐵山) 고을에 와서 정박하고 있으면서 편지를 보내 용천부사를 불러갔다고 하였다. 그리고 곽산군수(郭山郡守) 한치유(韓致兪)는 걸어서 만부(灣府)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즉시 용천 관아에 편지를 부쳤다. 시국이 이렇게 한심하였다. 동남창(東南倉)이 파괴되어 곡식을 들여 놓기가 힘들어 동헌(東軒)에 곡식을 받아 두었다. 오늘은 형님의 생신이어서 형제와 아들, 조카들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서로 알 길이 막연하니 어느 날이나 지탱하며 살아가겠는가? 단지 통곡할 뿐이다. 저녁에 술을 마셨다.
28일[二十八日]
맑고 시원함. 용천 오 생원의 답장이 왔는데, 감사가 과연 철산 고을에 머물고 있다고 하였다. 가마꾼 4명도 왔다. 주령은 즉시 철산으로 출발하였다. 황 단천과 황 참봉, 김대경(金大京)이 왔다가 갔다. 청군 진영의 패잔병 몇 명이 육지에 내려 잠시 머물면서 폐단을 일삼고 갔다고 하여 한탄스러웠다.
29일[二十九日]
맑고 시원함. 학당(學堂)에 가서 술값으로 3전을 썼다. 또 김 중군(金中軍)의 집에서 술을 마셨다. 주령의 편지가 왔는데, 감사가 용천부로 와 어제 중도에 함께 용천 관아로 갔다고 하였다. 감사는 몸을 빼어 도망 나와 의복이 전혀 없으니 이곳에서 옷을 보내라고 하였다. 그래서 만들어 둔 의복 몇 벌을 편지와 함께 싸서 보냈다. 고 함종에게 편지를 부쳐, 여름에 사가지고 온 안경 값 7냥을 보냈다. 저녁에 술을 마셨다.